"그만두니 홀가분하던가"
"천직인 줄로 알았던 일인데, 어찌 홀가분하겠나.
꿈꿨던 일에 가슴이 뛰지 않고 버티는 삶이 되어 버리다니."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고 생각했나?>(브로드컬리, 2018) 中
아직까지 오래 기억에 남는 문구입니다. 서울의 3년 이하의 서점들... 이 아니라, '서울의 3년 이하의 신입들'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 만큼 가슴 아린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또 이 문구가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제가 회사를 그만두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탓도 있겠지요.
그만두니 홀가분하던가.
사실은 어떤 정신으로 퇴사 통보를 하고 마무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9월 초 지하철에서 쓰러지고 정신 질환을 진단받은 후, 약을 몸에 맞게 조절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하물며 진단 두 달 동안은, 정말인지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아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라곤 일하면서 계속 구역질을 하는 제 모습, 그리고 10월 퇴사자들과 함께 합동 송별회를 열어주면서 처음으로 제게 수고했다고 말했던 윗분의 말 뿐입니다.
행복한 직장 생활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늘 이야기하고 취재할 수 있는데, 급여까지 받고 좋아하는 글쓰기도 할 수 있다니. 콘텐츠를 만들고 반응을 받는 것도 매번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동료들의 인정, 청중의 반응, 취미와 일의 일치. 꿈같은 환경이었습니다. 정말인지, 행복할 수 있었던 직장 생활이었고 몇 년 간은 즐거웠지요. 취재, 인터뷰, 글쓰기, 반응형 콘텐츠 제작, 리뷰... 모두 정말 즐거웠어요.
그 모든 것이 조회수로 뒤집히기 전까지는요. 업계에 겨울이 오면서 회사 또한 수익을 더 강력하게 추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 분위기가 지나쳐 조회수가 나지 않는 다른 것은 모두 쓰레기 취급을 당하면서 저는 많이 위태로워졌습니다. 몇 번이나 윗분에게 불려 가 혼이 났고, "왜 지금까지 퇴사 안 했는지 궁금하다"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오전 아이템 회의, 매주 금요일 성과 평가회와 자기 평가 보고서는 정신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동료들이 웃음을 잃고 퇴사를 이어갔고, 어느새 퇴사자 단톡방 참가자가 회사 인원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그만두니 홀가분했을까요.
공황이 출근길을 덮치고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대로 가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위기에서 온, 기묘한 평안감이었어요. 이대로 회사에 맨 정신으로 있다가 차에 치여 죽으나, 회사 잘못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으나, 우울증 치료 중간 과정에서 약을 견디지 못하고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를 1주일, 회사에서 제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다시 생각해 보니 못 채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구역질을 하고 의식이 없는 듯한 모습도 보였으니), 제 자리를 사무실 가장 끝, 구석진 자리로 옮겨놓았더군요.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줄 사람이, 이제는 이 회사에서 아무도 남아있지 않구나. 꿈꾸는 듯한 죽은 듯한 절망감 속에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회사에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떠나는 것뿐이라고. 대놓고 나가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안 나간 내가 바보였다고. 정신병까지 견디면서 사랑과 충성을 바칠 대상이 아니었을 뿐이라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은 감정을 홀가분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렇습니다. 저는 그만두니 홀가분해졌고, 사무치게 외로워졌습니다.
퇴사한 후 다시 일기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퇴사는 2018년 10월,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은 2019년 9월. 그 사이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그때의 기억도 감정도 공황의 공포와 우울증 약의 쓴맛에 엉켜 있어서, 이렇게 풀어내기까지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제야, 그만두니 홀가분하면서도 슬펐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