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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Dec 15. 2023

옥례

빨간딱지

시장통에는 여러 형태의 계를 이용하여 활동을 한다. 친목계를 들어서 식사를 하든지 함께 여행을 가는 등 

평상시에 일정 금액을 모아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낙찰계는 계주가 처음과 마지막 계를 타고 매월 최저금액을 써내는 사람이 낙찰을 받는 방법으로 계원들은 부담금이 줄고 필요한 사람은 돈을 급하게 

사용하려고 할 때 용이하여 상인들은 현금이 돌아서 일정 금액 일수를 찍어 목돈을 만들거나  낙찰계를 

들어서 필요할 때에 사용을 한다. 그러나 낙찰계는 위험도가 높다. 가끔 계주(오야)가 곗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서 계원들이 낭패를 보기도 하고 먼저 낙찰받은 계원이 불입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기도 하여 

철저하게 신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시장내에서 이름보다 업종명을 많이 쓴다. 옥례는주변의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주어 <언니> 또는 아동복을 팔아서 <아동복>이라고 불린다.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고 똑부러져서 제안을 하면 거의 동의를 얻는다. 

맞은편 가게에 옥례와 친한 <이불>이라고 불리는 이불가게 사장이 있다. 집도 잘 살고 돈이 많아서 

<큰손>으로 믿을만하여 계주로 활동하고 있다. 마당발인 옥례는 주변 상인들에게 부탁하여 많은 계원들을 

모아 함께 낙찰계를 진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불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별일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고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도 문을 열지 않아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았다. 옥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장충동 집으로 찾아갔다. 집은 닫혀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알아보았더니 이민을 갔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늘이 무너졌다. 시장통은 전쟁터가 되었다. 낙찰계를 들었던 계원들이 모두 옥례에게로 와서 고함을 친다. <짜고 쳤다>고 하고 <한패>라고도 하며 심지어는 머리채를 잡고 <돈을 달라>고 한다.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막무가내로 옥례를 쥐어 짠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급하게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급한 것들을 해결했다. 

작은 돌 하나가 빠져나와 공든 탑이 무너진다. 시장의 소문은 빛보다 빨라서 그동안 원단을 외상으로 주던  

거래처들이 공급을 사절하여 운영하는 봉제공장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여인의 몸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해결하려고 애쓰지만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은 점점 악화되고 결국에는 은행에서 집행관을 통하여 압류하는  

<빨간 딱지>를 텔레비전, 장롱, 전축 가리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 사정없이 붙었다. 가족들은 집안에서 

얼음이 되어 숨도 못 쉬고 있는데 늦은 시간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돌아온 옥례는 집에 돌아와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해결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빨간 딱지를 떼고 텔레비전의 문을 열어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고 옥례의 자신감에 믿음이 갔다. 옥례는 항상 하듯이 새벽에 

일어나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고 어떤 어려운 순간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싸웠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은 정리가 되고 압류된 재산도 풀려서 일상을 되찾았다. 당연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옥례를 더 믿고 

따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어려서 잘 알 수 없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 하신 말이 생각난다. "선태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엄마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어도 너희를 먹이고 입히고 키웠지 않니?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다시 해. 넌 나보다 나아." 

만신창이가 되어 낙심하고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인가?  <옥례>는 66세까지 이 땅에서 살고 가셨다. 이제 내 나이도 66세, 나는 어떤 모습일까 되돌아보며  나의 멋진  어머니 <옥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기록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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