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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eo Aug 30. 2024

호머 헐버트 박사 75주기에

Man of Vision, Friend of Korea

합정동에 살던 시절엔 집 근처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산책삼아 들르곤 했었다. 묘비에 새겨진 몇 글자를 통해 다양한 인생들을 만나다 보면 이어령 선생님께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홀트... 이 땅에 뼈를 묻은 많은 선각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발길을 끈 이름은 언제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였다.

양화진 선교사묘지에 있는 호머 헐버트 박사의 묘비©EuroKor Travel

호머 헐버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묘비 Man of Vision, Friend of Korea

이보다 더 멋진 묘비가 또 있을까?

1886년 여름, 망해가는 조선 땅에 들어온 23세의 청년으로 들어와 1949년 여름에 그토록 염원하던 땅에다시 돌아와 영면하기까지 평생을 이 땅의 독립과 가치를 발굴하고 알리는데 헌신한 은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를 늘 빚진 마음으로 간직하고 산다.

주시경 마당에 세워져 있는 호머 헐버트 박사님의 한글 사랑 기념 조형물©EuroKor Travel

우리도 몰랐던 아니 인정해주지 않았던 한글의 가치를 먼저 발견하고 온세상에 알려준 헐버트 박사님은 "한글과 견줄 수 있는 문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정확하게 원문으로 옮기면 "Korean alphabet scarcely has its equal in the world for simplicity and phonetic power." 즉 "음운학적인 능력과 단순성에 있어서 한글과 견줄 수 있는 문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뜻으로 헐버트 박사는 이미 19세기말에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선도할 한글의 가치를 인정한 선각자였던 것이다.

1891년에 순한글로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출판한 호머 헐버트©EuroKor Travel

오늘은 헐버트 박사님께서 1891년에 펴내신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다시 읽으며 그 뜻을 기려본다. 몇년 전 내 손에 들어온 '사민필지'의 영인본 사본이 헤어질 정도로 들고 다니며 틈틈이 읽어 왔으나 어떻게 한글을 깨친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대 청년이 그렇게 완벽하게 한글의 원리를 이해하고 음운학적으로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

나의 와이셔츠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헐버트 박사님을 추모하는 리본을 떼어 책꽂이에 둔다. 외국인도 이렇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건만 어쩌자고 스스로 일제의 식민지 노예가 되고싶어서 안달이 난 친일파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큰 소리치는 시대로 역행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과 광복을 위해 또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역사청소년합창단이 헐버트박사 75주기 추모식에서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EuroKor Travel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인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의 음계에 맞게 채보한 사람도 호머 헐버트 박사였다고 한다. 오늘 추모식에서는 특별히 역사청소년합창단이 '홀로 아리랑'을 완창하여 그 뜻을 기렸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격스러웠던 공연실황을 담아 현장에서 올려보았다.

https://youtu.be/7kVHMQWF1gc?si=vapEKK8uBXscuh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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