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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경 Feb 22. 2024

사랑이 가득한 날

엄마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올게

아이를 재우다 나도 같이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자정이 넘었느니 어제로 기록해야 할까.

남겨두고 싶어 기억이 흐려지기 전 본다.


D+866

어린이집 입소를 앞둔 아이는 요즘 떼가 늘었다. 말도 잘해서 너무 귀엽고 말도 안 듣는다. 제법 체계적으로 따박따박 반항한다.


시러. 안해. 노놉. 노노. 안 돼요.

손가락 엑스부터 두 팔 크로스로 쫙 뻗은 엑스까지 선보이며 강력하게 반한다. 내 컨디션이 견딜만할 때는 대 귀엽다. 어제는 갑자기 새로운 감탄사를 선보인다.

오, 오우(고개를 갸우뚱)

ㅋㅋㅋ뭔가 했다. 본인이 선택해서 보던 키즈 영상 중 외국오빠들 제스처와 감탄사를 따라 한다. 인상 깊었나 보다. 나는 아직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영상 허용 시간에 유튜브 키즈 영상 내에서는 자유로이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데 그 안에 외국 어린이들이 만든 영상도 제법 보는 것 같다. 표정, 제스처가 재미있어 동작을 주로 따라 한다. "어떻게 하나요?"라고 할 때는 어깨를 들썩이며 양손을 W로 만든다.  제법 많이 컸다. 언제 이리 컸지..


보던 영상을 끄자고 하니 한 번만을 외친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고 싶은데 밖에 비가 왔다. 차라리 어릴 때면 아기띠를 하고 버리고 오겠건만 쓰레기 하나 잠깐 버리자고 애 옷 입히고 신발신겨 우산 쓰고 나갈 자신이 없다. 아이는 분명 우산을 쓰고 놀이터로 향할 것이다.


이때다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다.


림아, 엄마 쓰레기 버리고 와도 돼?


응. 엄마. 그래그래. 갔다 와.
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녀와!!

어라.. 뭐지? 진짜 가능한 건가..? 28개월 아이를 혼자 두고 1분도 떨어진 적이 없다. 이 아빠가 있을 때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나는 항상 "엄마, 쓰레기 버리고 올게!"라고 말하고 왔다. 궁금했다. 아이가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울지는 않을까. 엄마 올 때까지만 영상 보고 있어. "엄마 오면 영상 끄는 거야~"라고 했다. 보고 싶은 영상을 보니 엄마가 천천히 오길 바랄까? 그래도 집에 혼자 있다고 느끼면 무섭진 않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환하게 다녀오라 배웅해 주니 일단 나가본다. 문을 닫고 현관 밖에 30초 정도 서있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울음소리, 엄마 찾는 소리가 안 들린다.


이때다 싶어 후다닥 쓰레기를 버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길. 집 앞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도 조용하다. 오묘하게 떨린다.


띠리 리리


엄마 아아아...~~!!

아이는 잘 있다. 잘 있는데 영상을 보고 있지 않다. 내가 집을 비운 3분. 아이는 평소 엄마가 있으면 잔소리하며 하지 마라던 것이 해보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영상에서 손 씻는 영상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싱크대에 식탁의자를 밀어 올라가서 손을 씻고 싶은데 안된다고 하소연한다. 식탁 의자는 싱크대에 찰싹 붙어있다. 옮기는 것까지는 성공한 모양이다. 싱크대 물은 발받침대로 잠가뒀으니 물이 나올 리가 없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건 스스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싱크대에서 해보고 싶단다. 잘 기다려줘서 너무 기특했다. 고마웠고 대견했다. 싱크대에서 함께 손을 씻었다.


밤 11시.

늦은 밤까지 침대에서 장난치고 놀다가 아이가 말한다.

엄마, 다음번에
쓰레기 버리고 오면, 림이 안아줘요

어머, 내가 안아주는 걸 깜박했나 보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 서운했나 보다. 아차 했다.


엄마, 림이 아기처럼 엄마한테
안겨서 우유 먹고 싶어요. 엄마가 먹여줘요

이제 제법 길어진 키에 옆으로 안아보니 아가야보다는 벌써 어린이에 가깝게 자랐나 싶다. 언제 우리 아기가 이렇게 컸지. 빨대컵에 우유를 안겨서 쪽쪽 먹는다. 아기 흉내를 내며 우유를 먹는 소람이에게 어릴 적 사진들을 보여줬다.

엄마, 별똥이가 우유 먹어요!!
우와, 별똥이 귀엽다.

벌써 흐릿해졌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웃는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핸드폰 사진첩 어린 별똥이도 귀엽지만 그 사진과 영상을 보며 웃고 있는 지금 내 곁에 이 길쭉한 아가야가 더더더 귀엽다. 하, 사랑한다.


얼굴에 뽀뽀를 수십 번 퍼부었다.


엄마, 그만!!ㅎㅎㅎㅎ

한참을 그렇게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서로 말하다가 어느 순간 잠들었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이 날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랑이 충만한 하루.


사랑이 가득한 날.


태어날때부터 두르던 겉싸개가 아직도 최애 애착이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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