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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Mar 16. 2024

심사위원단의 감정가격은...

어떻게 천안여자는 와플국, 벨기에까지 오게 되었나 EP.5

지난 이야기: 종갓집 장남 조선멘탈 아버지 밑에 빡세게 자라 독립에 성공한 후, 우연히 한국에 온 와플국 드러머 와플이와 만나 사랑에 빠져 학교와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버지 몰래 와플국에 갔다가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어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고 극대노 하신 아버지는 집으로 온 유교걸을 내쫓으셨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버지는 와플이를 데려와 보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와플이를 데려와 보라고 하셨고 나는 와플이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와플이는 드디어 부모님을 만나보는 거냐며 너무 좋아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즐거운 분위기가 아닐 거라고 말해줬다. 기대치가 높으면 너무 정신적 충격이 클 터이니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켜둬야 했다. 일단 양복을 입고 가서, 매우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럴 때 부모님사용설명서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매일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던 와플이는 양복이 없었고, 부모님 대면을 위해 와플이는 양복도 맞추고 신발도 샀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양복과 비행기표를 샀고, 이번엔 내가 아닌 우리 부모님을 만나러 한국에 다시 왔다.

마치 티비쇼 진품명품처럼 와플이의 감정가를 매기기 위해 아버지는 감정단을 꾸리셨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와플이는 평생 입지도 않던 양복을 입고, 부모님 댁에 왔다.


"딩동". 소리와 함께 내 심장의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와플이는 준비가 되어있을까? 얼굴을 보니 세상의 모든 평안은  혼자 가진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감정단과 마주했다. 마치 티비쇼 진품명품처럼 집안 어른들이 일렬로 책상 뒤에 계셨다. 아버지는 그 사이 작은 아버지와, 고모부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을 꾸리셨다.

아버지가 나오신다. 곧이어 우르르 남자 친척 어르신들이 나오신다. 그리고 그 뒤에 여자 친척 어르신들이 다소곳이 인사를 하신다.


아버지가 와플이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신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서윗하잖아." 라 생각했지만!!!!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버지...


"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해 벨기에 군인들이 와서 도와줬기에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 수 있게 되어 감사하네. 그렇지만 내 딸이 자네와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순수한 혈통이  끊어지게 되어 매우 유감이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

6.25 당시 중공군에 뿌려졌던 UN군의 전쟁참여가 그려진 삐라. 태극기 오른쪽으로 네 번째가 벨기에 국기다.


유럽에서는 나치독일 이후에 순수한 혈통 따위를 언급하는 것은 쇠고랑감이다. 순수 아리아인들의 혈통을 우대하는 유제니즘(Eugenetica)으로 인하여 유럽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순수한 혈통 우대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이 모든 대화는 내가 중간에서 다 통역을 해야 했으므로 내가 겸열을 하여 첨삭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곧이곧대로 다 통역을 했다. 누가 그 아버지의 그 딸 아니랄까 봐 나도 아버지만큼이나  고지식하다.


와플이는 아버지의  첫 번째 발언에 이미 멘탈이 너덜너덜 해 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 남자 어른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이 돌아가며 질문을 던지셨다.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여 벨기에의 GDP는 얼마정도 되는가?

그리고 질문의 하이라이트는 벨기에의 GDP와 비교했을 때 너의 월급은 상. 혹은 하위 몇 프로에 해당하냐였다.  이 사람이 유교걸을 데리고 가서 굶기지는 않을 정도의 수입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술버릇 테스트에 들어가셨다.  주는 대로 곧이 받아 마시는 와플이보다 아버지가 먼저 취하셨다. 와플이는 아버지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항상 느긋하게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와플이었지만 아버지의 압박면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도 술 먹어도 개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렸기에 결국 통과!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드러머는 어둠의 존재였으므로 술 먹고 개가 되지는 않나 테스트해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


와플이는 이날의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한다. 세상의 평화와 여유는 혼자 다 가지고 있는 듯한 와플이는 이날 멘탈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나중에 딸을 낳으면 똑같이 돌려줄 것(다행히도 아들만 둘이다)이라고 그 이후 100번은 넘게 얘기했고, 이후 그날의 경험은 와플이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미트페어런츠 영화 같은 이야기로 종종 회자되곤 했다.


와플이는 이후 부모님과의 만남을 미트 패어런츠에 빗대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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