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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Mar 03. 2024

유교걸의 늦바람은 무서웠다.

어떻게 천안여자는 와플국, 벨기에까지 오게 되었나 EP.3

지난 이야기: 종갓집 장남 조선멘탈 아버지 밑에 빡세게 자라 독립에 성공한 후, 우연히 한국에 공연하러 온 와플국 드러머 와플와 만나, 공연에 초대받고, 함께 낙산공원을 걷다가 메일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이후 채팅과 메일을 주고받아 친해졌고 와플는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알려왔다.  




어쩌면 김홍도는 아버지 몰래 마실 가는 유교걸을 그렸을지도...

종갓집 장남인 조선멘탈 아버지덕에 초. 중. 고. 대학 4년 포함하여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대학 4년 내내 통금시간은 오후 8시. 강의가 끝나면 아버지는 대학 건물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셨다. 이런 상황에 연애를 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하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연애의 시그널을 해석하기엔 나의 연애경험은 너무나 부족했었다. 연애 등신인 나에게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다는 것은 연애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이제 와플씨에서 와플이로 표기하겠다. 무려 지구반대편에서 날아왔는데 아직도 씨라고 하기엔 너무 하지 않은가!)


와플이는 결국 나를 보러 왔다. 와플이는 의외의 사실을 고백하였다.

"사실 여자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한국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고 헤어졌어."

왓????그렇다. 나는 와플이의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유교걸은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도 와플이를 자기 자취방에 재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어딜 내 자취방에서 잔단 말인가! 8000킬로 떨어진 곳에서 나를 보러  온 와플이를 유교걸은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 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온 사람을,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재우는 게 참 어이없지만, 그때의 나는 남자를 집에 들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 같은 고구마를 참아주고 내 결정에 따라 준 와플이가 고마웠다.


잠은 따로 잤어도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남이섬도 가고, 남산타워도 가고, 한옥마을도 구경했다.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고구마 천 개를 물 없이 먹는 느낌이었다면( 나도 고구마, 아버지도 고구마, 고구마 대환장 파티다), 와플이와 함께 있으면 새가 되어 훨훨 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의 느낌을 잘 표현한 사진                                ( 저작권자 채지형, 공유마당)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우리의 첫 만남처럼  와플이는 다시 돌아가야 했고, 다시 헤어졌다. 공항에서 와플이와 유교걸은 많이도 울었다. 그냥 함께 했던 시간이 꿈같았다. 와플이와 함께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는데,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또 헤어지다니...


와플이가 말했다. "나 빨리 돈 모아서 곧 돌아올게. "


다음에는 정숙함이고 뭐고 따로 재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와플이는 다시 갔다. 와플국으로.... 그리고 연락이 왔다. 비행기표를 또 샀다고...


그 이후, 나의 삶은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와플이가 왔다가 다시 가고, 왔다가 다시 가고, 2-3개월에 한 번씩 와플이는 거의 전 재산을 털어 한국에 왔다.


와플이의 세 번째 방문이 끝나가던 즈음에 와플이는 물었다. "왜 너희 부모님을 나한테 소개해 주지 않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조선멘탈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일단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버지 알게 되셨을 때의 그 후가 너무 두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계속 숨기자... 이게 나의 결론이었다.


나는 당시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와플이와 함께하면 할수록 와플국이 궁금해졌다. 그래, 어차피 자취하니까 아빠는 모르겠지.라고 생각하며 와플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회사에 미친척하고 3주 휴가를 신청했다(아니면 정말 미쳤었던지). 당연히 회사에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시원하게 그만뒀다. 


예의 바르고 아버지말씀 잘 듣던 유교걸은 어디 가고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로 일관하고 있었다. 대학원도 이 참에 휴학했다. 어차피 이 순간 대학원은 아무 의미 없었다.


'

와플이의 네 번째 방문 후, 나는 한 달 계획으로 와플국을 방문했다. 와플이를 게스트하우스에서 재웠던 때를 생각하면 늦바람이 들은 유교걸은 많이 변해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와플이와 함께 지냈다.


그러고 있던 찰나, 그만둔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유교걸씨를 찾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모른다고 했는데 더 이상 회사로 전화 오지 않도록 잘 해결하십시오.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월세를 안 냈다고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깜빡했다고, 내일 내겠다고,  그리고 이번 주말에  부모님 댁에 내려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월세는 깜빡했지만 온라인 계좌이체를 하면 그만이었고, 다시 한국에 가서 이번주말에 찾아뵈러 가면  모님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 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사다 먹었는데도 열은 계속 올랐다. 39.8도까지 오르자 와플이는 나를 둘러업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신장염이라고 한다. 머리는 깨질 것 같이 아프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는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4일 뒤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의사에게 4일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더니, "나는 의사로서 당신이 비행기를 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에라, 모르겠다'로 일관하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병원에서  모든 것을 이실직고하는 메일을 써 내려갔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로 시작하여,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교육대학원( 여자직업으로 교사가 최고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그만뒀고, 월급  따박따박 주던 회사도 그만뒀고, 지금 한국이 아니고, 거짓말하고 벨기에란  나라에서 해외여행 중이며, 이 모든 것은 와플국 남자친구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며, 지금 신장염에 걸려서 일주일째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한국에 못 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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