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종갓집 장남 조선멘탈 아버지 밑에 빡세게 자라 독립에 성공한 후, 우연히 한국에 온 와플국 드러머 와플이와 만나 사랑에 빠져 학교와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버지 몰래 와플국에 갔다가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어 모든 것을 이실직고해야 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메일은 다 썼지만 직접 보낼 용기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나름 머리를 짜 낸 것이 남동생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제발 내 메일을 인쇄해서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리고 전해 달라는 특명을 전달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가 있었으니... 나도 무서운데 나의동생은 안 무서웠겠는가...
그렇게 그는 아침 밥상에서 인쇄한 종이를 놓고는, "누나가 이거 아버지 읽어보시래요."라고 하고는 부연 설명 없이 빛의 속도로 자리를 피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왔다.
아버지는 인쇄된 종이를 읽으시며 점점 얼굴을 일그러 뜨리시다가, 젓가락을 던져 장판 위에 꽂히게하는 신기를 보여 주셨고, 젓가락이 장판을 뚫었다고...
바닥에 꽂혔을 젓가락 상상도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와플이에게 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장판을 뚫게 한 이야기와 한국으로 돌아가 일단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다는 계획을 말해 주었다. 병원 입원으로 귀국날짜를 조정했고, 이틀 뒤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방금 자고 일어난 나를 와플이는 그렁그렁한 소눈으로 한참 내 얼굴을 쳐다봤다.
" 결혼하자. 너 이대로 가면 우리 다시 못 볼 지도 몰라. 결혼할 사이라고 얘기라도 해야 네가 여기까지 온 걸 너희 아빠도 이해 비슷하게나마 하시겠지. 어차피 우리가 계속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어. 이 참에 결혼해서 한국이던, 벨기에던 같이 함께 있자."
수 없이 들어온 우리 아버지의 조선멘탈을 이해 한 모양이다. 혼자 힘으로 우리 아버지 정신세계를 이해 한 와플이가 기특하다. 결혼할 사이라고 하면 아빠가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으실까?
자, 이제 한국으로 가서 엄청나게 깨질 일 만 남았다.
와플이와 다시 작별이다. 와플이는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는 앞으로 꼭 함께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주말... 나는 천안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한 20분은 문 앞에 서서 하늘을 봤다 땅을 봤다가 하기를 무한 반복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고, 그냥 부딪혀야 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결국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분노의 사자후를 날리셨다. "어디라고 네가 지금 여길 와! 나는 자식하나 없는 셈 치려니 여기 앞으로 오지 마! 나는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예상은 했었지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가 화를 내실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초지종도 안 듣고 나를 내 쫒으 실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뒤에서 손짓하신다.
" 지금은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으니 오늘은 그냥 가. 내가 아버지랑 얘기해 볼게."
그렇게 나의 5분도 안 되는 부모님 방문은 끝이 났다.
며칠 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니? 아버지가 와서 얘기 좀 하자고 하신다. 언제 올 수 있니?"
나는 어차피 회사도 그만두고, 대학원도 때려친 백수였으므로 바로 부모님 댁에 내려갔다.
아버지는 오자마자 나에게 물으셨다.
" 그 남자는 어떻게 만났냐?"
" 도른자랑 같이 술 한잔 하다 우연히 만났어요. 도른자 통역해 주다가 만나서, 그 후에 몇번이나 절 보러 한국에 왔어요. 그래서 저도 이번에 벨기에에 갔어요. 저희는 결혼할 사이예요. 이미 청혼받았어요."라고 아버지가 혹시라도 안 들으실까봐 숨도 쉬지 않고 말씀드렸다.
" 뭐 하는 놈인데?"
" 드러머예요."
( 아버지 이미 뒷목 잡으심)
아버지의 상상 속 드러머ㅡ 사진은 미국의 드러머ㅡ토미 리 (사진출처: 나무위키)
아버지의 머릿속 드러머의 이미지는 토미 리 같은 문신이 가득하고 귀걸이와 코걸이가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와플이는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문신도 없었고 머리고 길지 않았고, 소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러머였지만 학교에서 재즈 앙상블을 가르치는 재즈 드러머였다.
그리하여 급히 정정했다.
"드러머이긴 한데, 학교 선생님이에요."
( 교육자를 최고로 치시는 조선멘탈 아버지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간 어머니의 아버지 설득작전, 미션 임파서블이 그녀의 엄청난 노력을 통해 미션 파서블이 되어가고 있었다.
"걔가 좋은 이유가 뭐냐?" 아버지가 물으셨다.
늦바람 확실하게 들은 유교걸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결심한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하지 못했었던 그 말을 결국엔 하고야 말았다.
"아버지랑 달라서요. 아버지같이 콱콱 막힌 사람이 아니라 좋아요."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 내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시고 술도 엄청 드셨다고 한다.
다음날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와 다시 대면했다.
"걔는 다음에 한국에 언제 오는데? 그때 한번 데려와 봐!"
아버지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드디어 와플이가 그렇게다 바라던, 부모님을 만나 뵙고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서양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닐 것임에 9000프로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