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는 무럭무럭 커서 함께 걷고 뛰고 같이 장도 보는 아직은 세상(이 아니고 즈그 엄마?) 무서운지 모르는 꼬맹이로 성장했다. 그런데 요놈이 똥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길바닥 드러눕기 시전을 시시때때로 하는데 아주 미치고 환장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 술수에 말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슈퍼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슈퍼 바닥에 몸을 내던지는 1호.
3.
2.
1...
으아아아아앙. 저 장난감 사줘!
우리 동네 색목인들이 우리가 있는 코너에 와서 쳐다보기 시작한다.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질 수는 없다.
달래지 않는다. 근엄한 얼굴로 1호의 양손을 잡고 눈을 부릅뜨고 말한다.
네가 지금 이런다고 해서 엄마가 사줄 일은 없어. 계속 울 거야? 엄마 슈퍼 나가는 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 다 울면 거기로 나와.
그리고는 저벅저벅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슈퍼 출입문으로 걸어간다.
1호는 당황했다. 그리고 더 크게 운다.
마치 내가 데리러 올 걸 안다는 듯.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 발은 끈끈이에 붙은 파리처럼 꿈적도 하지 않는다.
30초 뒤.
30초의 짧은 악어의 눈물을 뒤로하고, 1호가 달려온다.
엄마, 같이 가!!!!!!
상황종료.
네가 엄마를 이기려면 아직 멀었다, 아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에 가려면 7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1호는 유독 자주 걷다가 손을 내쪽으로 뻗으며 "엄마, 안아줘. "를 시전 해댔다. 이제 잘 걷는데도 말이다. 이제 이런 습관은 끝을 내야 한다. 많이 무거워진 아이를 안고 7분을 걸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호야, 너는 다리가 있지? 걸을 수 있지? 네가 많이 크고 무거워져서 엄마는 이제 못 안아. 그러니까 걸어가야 해.
분명히 알아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런데 이것이 또 나를 시험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또 자기 몸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운다.
으아아아앙.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
엄마는 저기 파란 차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다 울면 와라.
길 한복판에서 서럽게 운다. 여기서 말리면 안 된다. 그럼 다시 도루묵이다.
색목인들도 저런 상황에서는 한국과 똑같이 엄마를 눈으로 스캔한다. 과연 저 엄마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며 방청객 알바하듯 우리를 시청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눈으로 질책하는 것 같다.
거, 애가 우는데 좀 안아주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 시계를 본다.
정확히 1분 걸렸다. 1분 뒤, 1호는 야무지게 손바닥을 털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달려온다.
감히 이것이 에미를 시험해?
1호야, 이제 이렇게 길바닥에서 울면 안 돼. 또 울면 엄마는 또 좀 떨어진 곳에서 너 그만 울 때까지 기다릴 거야. 운다고 엄마는 안 안아 줄 거야. 걸어갈 수 있지?
응!
상황종료.
걷는 것이 싫은건 나도 이해 한다만, 유모차 없이 안고 걷는건 나도 못하겠다.
오밤중에 우유 달라고 울기
2년이나 살았으면 이제 좀 쭉 자줄 때도 되지 않았니?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1호는 만 2살이 지나서도 새벽 3시가 되면 울면서 깨어 꼭 따듯한 우유를 먹어야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다시 나가서 일을 해야 했는데, 2세가 넘어서도 매일같이 새벽 3시에 깨는 것은 정말이지 자양강장제 100개를 때려 넣어도 수습이 되지 않을 극강의 피로를 선물했다.
그래 결심했어! 오늘은 울어도 절대 들여다보지 않을 거야.
이미 몇 차례 밤에 깨도 우유를 먹지 말고 다시 자야 한다고 설명을 해 놓았었지만,여김 없이 새벽 3시가 되니 귀신같이 알고 깨서 운다.(누가 드러머의 자식새끼 아니랄까 봐, 시간감각 정확한 거 보소)
여러 번의 길바닥 똥고집 배틀로 내가 깨달은 것은 애들도 쪽팔림을 안다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쳐다보면 애들도 쪽팔려서 뚝 그친다. 단, 엄마가 가까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말이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애들은 영악하게 엄마의 쪽팔림을 역으로 이용하려 든다. 그래서 항상 길바닥 똥고집 배틀이 시작하면, 나는 저기에 가 있을 테니 끝나면 와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보는 사람이 없으니 더 악을 써대며 운다.
3시 10분. 여전히 울고 있다.
3시 30분 잠시 잠잠했다 다시 악을 쓰며 운다.
마음을 다 잡는다. 이번 똥고집 배틀에서 지면 또 얼마나 더 좀비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3시 40분. 이노무 쉐끼, 아직도 운다.
옆집 아줌마가 마음에 걸린다. 방음도 잘 안되는데 혹시 이 소리를 듣고 혹시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하는 거 아니야? 나 이러다 쇠고랑 차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이 든다. 그래도 포기는 못한다.
3시 50분. 진짜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내 새끼 맞나 보네? 똥고집이 아주 그냥 장난이 아니네
4시. 1호가 조용하다. 그리고 아침까지 그 조용함은 이어졌다.
상황종료.
그 이후로 1호는 다시는 새벽에 일어나 우유를 찾지 않았다. 저녁에 자기 전에 따듯한 우유 한잔을 마시고 아침까지 잤다.
다음날, 옆집 아줌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줌마는 웃으며, 아이구 나도 애를 둘을 키워봤는데 그걸 모를 것 같아? 걱정 마~라고 했다. 아줌마는 아이 두 명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소아과병동 간호사이기도 해서 이런 상황에는 도가 텄다. 나의 상황을 100프로 이해해 주는 아줌마가 고마웠다.
엄마와의 똥고집 배틀이 몇 차례 이어지고, 똑똑한 1호는 배웠다.
엄마를 띄엄띄엄 보면 본인만 손해라는 것을.
그 이후로 1호의 결투신청은 더 이상 없었다. (10세까지)
현재는 사춘기 앓이 중인 관계로 닌텐도 꺼라 배틀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엄마를 띄엄띄엄 봐서 그런 게 아니라, 두꺼비집 내려간 1호의 사춘기 뇌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 이후 2호도 딱 한 차례 길바닥 똥고집 배틀을 시전 했으나, 2호는 1호보다 세상을 더 빨리 깨달았다. 한 차례 시도 후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랬다 저랬다 흔들리면, 아이들도 같이 흔들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사랑을 주고,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선을 넘는 아이에게는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게 부모의 책임이다.
사랑을 주는 것과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부모의 양육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허용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