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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Dec 01. 2024

출산지옥: 캥거루케어가 사람 잡겠네

산후조리원 따위의 호사는 없다. 개고생만 있을 뿐이다.

주의: 남성분들에겐 좀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출산과정이 무서우신 분들,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진짜 싸나이라면 이 정도가 무서울리는 없지 않을까요?


때는 바야흐로 앤트워프의 외국인 관리청에서 이민자들에게 추방명령을 고지해 주는 일을 하고 있을 때로 거슬로 올라간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6


누군들 남 쫓아내는 일이 좋았겠는가. 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서 드러워도 해야 했다. 뱃속의 아기는 점점 커 오고, 출산일이 다가오는데 일이 어렵고 싫다고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힘들어도 태어날 아기를 위해 엄마는 열심히 그렇게 삽질을 했더랬다.


다 쓰러져져 가는 집을 샀다. 이사는 했지만 달랑 벽만 있었고 심지어 주방도 없었다. 하지만 아직 몇 주의 시간이 있기에 사람을 사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나와 베짱이는 바보였던가? 우리 집 1호는 성격도 즈그 애미 닮아 급하다. 보일러를 달아서 온수만 겨우겨우 나오는데 3주나 일찍 양수가 터져버렸다.

첫째 나왔을 때 우리 집 상황


자다가 일어났는데 바지가 다 젖었다. 나는 내가 오줌을 쌌는 줄 알았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


화장실까지 가려고 하는데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계속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그제야 깨달았다. 양수가 터졌다는 것을... 베짱이를 깨워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벨기에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아기를 낳는다. 양수가 터지면 매달 진료받던 의사가 소속된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가야 한다.


응급실에서 바로 산부인과의 분만실로 휠체어에 탄 채 이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너무 괜찮아서 휠체어에 탄 것이 간호사에게 미안했다.


분만실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집에서 가져온 빵을 좀 먹었다. 간호사가 흘낏 지나가며 보더니, 빵이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애 낳으려면 아직 멀었구먼. 쯧쯧. 하며 지나간다.


진통은커녕 아무 느낌도 없다. 그냥 베짱이와 함께 농담 따먹기나 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 10시간이 지났다. 양수가 터질 땐 또 언제고 진통은 또 감감무소식이다. 간호사가 오더니 분만촉진제를 놓겠다고 했다.


15시간쯤 지났을까. 간호사가 나보고 일어나서 좀 걷고 움직이고 그네도 타고 짐볼 위에도 올라 타 점프를 하라 한다.

분만실은 한쪽에는 침대가, 다른 한쪽에는 이렇게 체육관 같이 되어있다.

분만실에서 이게 무슨 체육대회 같은 시츄에이션?


어떻게 나는 뚱이조차 똥고집인지, 약빨이 안 듣는다. 촉진제를 맞았는데도 아직 아무 느낌이 없다.


이제 24시간이 지났다. 꽉 채운 하루가 지났다. 여기가 호텔인가 분만실인가. 호텔 피트니스에서 운동한 느낌이다.


그러다 배에 조금씩 무슨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아파온다. 이젠 진짜로 아프다. 겁나게 아프다. 이렇게 아픈 것은 난생처음이다. 아파 죽을 것 같은데 나보고 욕조에 물 받아 줄 테니 들어가랜다. 오래전 뮤지컬배우 최정원이 수중분만을 한 것이 한창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가정 선생님이 녹화를 해 와서 수업시간에 보여주셨다.

나는 물에 들어가면 마법처럼 안 아파지는 줄 알았다. 물 들어갔는데, 안 아프기는 개뿔, 그냥 똑같다. 너무너무 아프다. 누가 수중분만 하면 덜 아프댔냐.


원래 촉진제를 맞으면, 자연스러운 진통보다 더 아프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이라 더 씨게 진통이 온다 하는데, 나는 무통주사를 맞을 생각이 처음에는 없었다. 무통 주사를 놓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가 빵을 먹을 때 혀를 쯧쯧 차며 아기 나오려면 멀었구먼 이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인데, 먹을 것이고 마실 것이고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출산 전에 출산요가도 몇 번 나가서 배웠지만, 눈앞이 깜깜하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때는 마치 이런 수업을 받으면 힘 한번 주고 애기가 뽝 나오는 줄 알았지만,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무통주사도  자궁경부가 아직 충분히 열리지 않아 놓아줄 수 없다고 했다. 진짜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33시간이 지났다.


여기 호텔 맞다. 어떻게 하루 반을 이곳에서 보내지?


양수가 터지고 병원에 들어와 33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무통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아플 거 다 아파 놓고 무통 맞으니 억울하기도 하다.


베짱이도 나와 함께 33시간을 분만실 안에만 있었더니 죽을 맛이었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온다고 했다. 아기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 그러라고 했는데 이 인간이 40분이 지나도록 안 들어온다. 벨기에에서는 의사, 간호사와 조산사 셋이 같이 분만실에서 출산을 돕는다. 조산사가 오더니 곧 아기가 나올 것 같고 힘을 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야이 베짱아, 어디 있냐고!


전화를 했다.


어디냐, 베짱이!

아, 나 잠깐 바람 쐬러 애플스토어에 왔는데...

애플스토어? 아니 진짜 이 인간이 돌았나. 지금 아기 거의 나올 것 같다니까 빨리 튀어와!

애플이냐, 니 새끼냐 선택해라 베짱이

한 번도 뛰는 모습을 본 적 없는 베짱이, 이 사람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딱 한번 뛰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 처음이자 마지막, 헐레벌떡 베짱이는 뛰어왔다.


35시간째,

마지막까지도 쉬운 것이 없다. 베짱이가 도착하고도 아기는 나오지 않았고, 나도 너무 지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갑자기 조산사가 내가 누운 침대 위로 올라오더니 내 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호사는 힘을 더 줘 봐요.라고 했다.


아오 씨, 나도 주고 싶은데 안되는 걸 어쩌라고.

이게 내 맘대로 되었으면 내가 여기서 35시간을 이러고 있었겠냐고.


간호사까지 침대 위로 올라와, 두 명이서 내 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36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뚫어뻥 같은 압착기를 머리에 사용하고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태어난 아기는 옥수수 같은 머리를 하고 태어났다. 뚫어뻥 덕에 머리 모양이 옥수수처럼 변했다.(천만다행으로 지금은 정상이다. )

탯줄은 베짱이가 끊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내 품속에서 울었다.

예쁘다. 근데 이제 좀 쉬고 싶다.


아기는 언제 데려가지? 오랫동안 먹지 않고 힘을 써서 배도 고프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기는 언제 데려가나요?

엥? 데려가다니요? 어디로요?

신생아실로 아기 데려가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없는데? 아니, 아기가 엄마가 필요한 데 가긴 어딜 갑니까? 그리고 유교녀씨 아기는 3주 일찍 태어나서 캥거루케어를 해야 해요. 몸에 딱 붙이고 떨어트리지 말고 피부접촉을 최대한 많이 해야 합니다. 아기 침대에 되도록 넣지 말고, 계속 안고 있으세요. 아기의 원래 출산 예정일까지 그렇게 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여기서 잠깐! 캥거루 케어란 무엇인가.
캥거루 케어란 갓 나온 태아가 온갖 반사신경으로 예민해져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엄마의 자궁 안으로 다시 들어온 것처럼 부모의 맨몸, 즉 심장 가까이 품고 캥거루의 주머니처럼 어둡게 담요로 덮어 주는 것 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난이도 극악의 신생아실 없는 캥거루케어

그렇다... 나에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 서구권에는 신생아실이 없다. 태어나는 순간, 아기를 닦은 후에 엄마에게 건네주면 출산이 5시간이 걸렸던, 50시간이 걸렸던 그 순간부터 아기는 엄마와 함께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36시간 동안 분만실에서 잠도 못 자고 이제야 좀 눈 좀 붙이겠다 했는데 아기를 던져주고 간다.


출산 관련 책도 출산 전 몇 권을 읽었지만, 그 책들은 다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라, 벨기에는 아기가 아프거나 이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엄마와 함께 모자동실에 있는다.라는 설명은 없었다. 이들에겐 당연하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자.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기를 안고 간호사에게 혹시 먹을 것 좀 있냐고 물었다. 그때는 이미 새벽이어서, 병원 밥 배식도 한참 전에 다 끝났다. 간호사는 말라비틀어진 빵 두 조각을 나에게 가져다주고 갔다. 쨈이라도 좀 주고 가던가, 그냥 빵 딱 두 조각이다.


서러웠다. 36시간 동안 분만실에 쳐 박혀 있었던 대가가 말라비틀어진 빵이라니.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아기를 보내놓고 좀 쉴 수도 있었고, 이런 잘 씹히지도 않는 빵이 아니라 따듯한 미역국을 먹고 있었을 텐데.


아기를 안고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 모든 게 낯설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기를 아기침대에 넣지 말라 하여, 아기를 내 위에 올리고 잠깐 눈을 붙였다. 정말 극강으로 피곤하다. 신생아실이 없는 것을 알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좀 했을 텐데... 아기는 수시로 끙끙대고 수시로 운다.


다행히도, 몇 주 전에 베짱이를 조련시켜 미역국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다음 날 베짱이를 닦달하여 미역국을 조달받았다. 미역국을 안 끓여다 주면 평생 아기가 나오는 와중에 애플스토어 갔던 것을 잊지 않겠다 했더니 나름 최선을 다해 미역국을 끓여 왔다. 베짱이의 미역국이 맛이 끝내주지는 않았어도,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병원의 말라비틀어진 빵보다는 훨씬 나았다.

눈물의 미역국

스킨 투 스킨, 캥거루 캐어 하다가 엄마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출산한 병원은 자연주의적 사상이 강한 병원이다. 벨기에는 병원마다 병원만의 철학이 있다. 이곳은 아주 고지식하면서도 자연주의를 고수하는 병원이었는데, 다시 출산을 하게 되면 절대 이곳에서 낳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기 관리부터 모유수유까지 나를 쥐 잡듯 잡아 족 쳤다. 하도 나를 군대식으로 잡아, 베짱이가 유독 엄격한 간호사 한 명에게는 우리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까지 경고를 했다. 베짱이는 좋은 게 좋은 사람이다. 베짱이가 이렇게 까지 할 정도면 얼마나 나를 잡았겠는가.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난 후에 눈물 콧물 다 뺐다.


벨기에에서는 아기를 낳고 보통 이틀 뒤에 퇴원이다. 산후조리원 이런 호사스러운 시설은 없다. 알아서 잘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집에는 주방도 없다. 집으로 돌아가면 밥이라도 해 먹고살 수 있을까.


벨기에 사람들은 은근히 가족애가 강하다. 우리나라에만 가족모임이 잦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기도 장난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 어머니 아버지 생신, 조카들의 생일 이럴 때에도 가족끼리 모여 함께 축하한다.


독수리 오 형제 중 넷째인 베짱이는 형들에게 긴급 SOS를 쳤고, 그렇게 5형제와 시아버지가 모여 이틀 동안 미친 듯이 주방을 뚝딱뚝딱 고친 결과, 내가 아기와 함께 병원에서 나왔을 때  예쁜 주방을 서프라이즈 선물로 나와 아기에게 보여 수 있었다.


주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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