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를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산후조리 문화가 전무하다. 덩치도 크니 아기도 힘 한번 주면 쑥 나오는지, 내가 36시간 분만실에 있는 와중에 옆방에서는 산모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힘 좋고 덩치 좋은 벨기에 산모들은 아기가 나오면 하루나 이틀 뒤 보통 바로 퇴원을 한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 나의 1호아기, 강하게 커라 내 아들! 얼음바닥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아기를 낳으면 찬바람을 쐬지 않고, 몸을 따듯하게 해야 한다.
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 서구권의 거의 대부분의 가정집은 바닥난방이 아니고 라디에이터로 공기를 달구어 그 따듯해진 공기가 집안을 돌며 난방을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은 중앙난방으로 집안 곳곳에 이러한 라디에이터가 있다. 하지만 라디에이터는 창문가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창틈으로 따듯한 공기가 나가버려, 찬 바람이 훙훙 들어온다. 게다가 바닥은 아무런 난방장치가 되어있지 않아 차디차다.
주로 창문 앞에 붙어있는 라디에이터, 이런 걸 생각해 낸 바보는 누구냐
그런데 우리는 쓰러져 가던 집을 사서 집에는 이 마저도 없었다. 라디에이터 대신 1층에만 가스난로 단 두 개. 그걸로 1층과 2층을 다 덥히려니 2층에 올라가면 머리가 빳빳이 설 정도로 춥다. 침실은 2층에 있었는데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코끝이 시려 잠을 잘 수가 없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야 한다. 집안에서 김 나올 기세다.
그나마 출산 일주일 전에 주문해 둔 이중창이 도착해, 이중창을 끼워 넣어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얼어 죽을 뻔했다.
이것도 사연이 깊다. 벨기에는 뭔가를 주문하면 세월아 네월아 언제 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베짱이씨는 자기랑 맞는 나라를 잘 골라 태어났다. 창문을 주문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게다가 벨기에인 베짱이씨는 제품의 출고가 감감무소식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올 때 되면 오겠지, 이러고 있다.
나는 아기와 같이 얼어 죽을 수는 없으니, 특단의 조치를 쓰기로 했다. 주문을 넣어 놓은 창문가게로 남산만 한 배를 부여잡고 갔다.
이거 보셔유. 아줘씨! 이 배를 좀 봐봐유. 인자 아기가 나올라고 하는디, 이러다 내일 나오겄슈. 제대로 된 창문도 없는 집에서 애기랑 나랑 얼어죽게 생겼는디, 아저씨같으면 워쩔규?
아니, 우리도 빨리 해 주고 싶은데 공급처에서 소식이 없어서.
아저씨, 제 눈을 보고 얘기혀유!!!! 아저씨밖에 이거를 해결할 사람이 없으니께, 공급처를 쥐어 짜던지, 달달 볶던지 해서 빨리 창문 좀 해 줘유.
아아아알았어요. 내가 한번 최선을 다해 보리다.
(눈 부릅) 아저씨, 만약 2주 내로 창문 안 오면, 나 아저씨 가게에 이 남산만 한 배를 하고 다시 찾아올 거유.아저씨 가게에서 애 나올지도 몰러유.
*지는유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청도에서 초, 중, 고 시절을 다 보낸 충청도 사람이유
아줘씨, 진짜 이럴 거요?
충청도 장첸이 납셨다. 하지만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아저씨를 닦달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아저씨의 죄책감에 기름을 부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일주일 뒤에 창문은 도착했고 가스난로만 있는 집에 이중창이 설치되어 그나마 북극 같은 추위는 피할 수 있었다.
양말은 두 개씩 신고, 내복, 티셔츠, 스웨터 기본으로 3겹씩 입었다. 한국에서는 겨울에도 집에서 반팔 입고 계시는 분들도 많지만, 벨기에에서는 택도 없는 이야기다.
추위만 문제가 아니다. 추운데 집에는 귀신이 나올 것 같다.
벽도 안 발라진 상태인지라, 석고를 집 내벽에 발라서 더이상 모래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다. 인부를 고용했다. 폴란드 사람 두 명이 와서 벽을 석고로 바르는데, 폴란드사람들이 은근히 근성이 있다. 아침 8시에 와서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빵 조가리 몇 개만 먹고 죽어라고 일만 해 댔다.
벽 바르는 일꾼
내가 누구인가. 유교녀아닌가. 일꾼들이 일을 하는데 새참도 못 먹고 일하는 건 한국인은 못 본다. 빵쪼가리 먹고 그 힘든 일을 그렇게 오래 한다고?
아기를 등 뒤에 업고 이들도 잘 먹을 수 있는 토마토 미트볼을 요리해서 가져다주었다.
그라췌,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이줴!
안 먹는다고는 안 한다. 가져다 주니 게눈 감추듯 흡입을 하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한다. 이 추운 날, 빵 말고 따듯한 음식을 갖다 주니 그나마 마음이 좀 덜 불편하다.
이들도 내가 해준 따듯한 밥을 먹고 더 힘이 났는지 벨기에 사람이 일하는 속도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게 마무리를 했다.
벽을 바르고 나니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다. 그전에는 컨저링에 나오는 집 같았는데 이젠 좀 아늑한 느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