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나오면 자동으로 애착이 생기고 자동으로 뭘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줄 알았다. 내 새끼니 당연히 예쁘기야 하지만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고 무한 반복하는데 이것이 벌레인지 사람인지... 솔직히 이 아이가 어떤 아인지 잘 모르겠다. 먹고 자고 싸고만 반복하는데 이 아이의 성격이 벌써 파악되면 나는 내림굿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세상의 아기들은 다 예쁘다. 사자도, 고양이도, 강아지도 새끼들은 하나같이 다 예쁘다. 예쁜 것은 생존 전략이다. 예쁘지 않으면 얘들은 밥도 못 얻어먹을 테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예쁘기라도 해야 한다.
엄마는 자동으로 되는 줄 알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유 주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고, 재우고 하는 엄마의 일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본능이 아니네?
아기가 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데, "누가 제발 좀 통역 좀 해 주세요! 도저히 모르겠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남들 다 있는 엄마는 없어서,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아 진짜, 신세한번 처량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친엄마와는 연락이 끊긴 지 십몇년이 지났다. 친정에는 나를 도와주러 올 수 있는 엄마도 없고 (나의 친구 같은 새엄마는 정말 좋은 분이지만, 아기를 낳아본 적이 없다), 나는 아기 울음을 알아듣는 재주도 없고, 산 넘어 산이다.
배움에 있어 최고의 방법은 줘 터지면서 배우는 것인데, 잠 못 자며 아기가 토한 우유로 티셔츠를 다 적셔가며 육아에 쥐어 터져 가며 초보 엄마는 그래도 천천히 하나씩 배워갔다.
언젠가 꿩대신 닭이면 어때요 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내 인생경험을 통해 배운 것인데, 꿩 없다고 울 시간에, 닭이라도 잡아서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엄마가 없으면 출산 후 가정방문하는 midwife(조산사. 아기전문가라고 하면 되겠다)를 통해 배우면 되는 거지. 엄마 없다고 징징 댈 시간에 midwife를 불러서 하나라도 더 빨리 배워야 아기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 나는 평소에도 징징대는 거 정말 싫어한다. 우리 집 베짱이씨가 예민한 감수성으로 징징대는데 귀마개를 하고 싶다.
벨기에에서 조산사/midwife는 두 종류이다. 병원에서 출산을 돕는 조산사와 출산 후 가정방문을 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주는 신생아 가정방문 조산사(아기전문가). 개인이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보험회사에서 부분적으로 되돌려 준다. 조산사의 방문 시. 모유수유, 수면패턴, 몸무게 증량 관련 여러 가지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잠을 언제 6시간 내리 자 봤는지 모르겠고, 울 까봐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안아서 재운 뒤 조심스레 내려놓으려 하면 자다가도 등센서가 작동해 깨고, 진짜 이것이 사람이 맞단 말인가.
이렇게 힘든 시간을 뒤로하고, 삼 개월이 지나니 아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대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뜯어보니, 이 노무 쉐끼가 엄마 성격을 빼다 박았다. 유모차 타고 바깥바람 쐬는 것을 좋아하고, 아직 아기인데도 똥고집인 게 벌써 확연하게 느껴진다.
아기 성격을 파악하고 고만고만 익숙해 지려하니, 이제 다시 출근이다.
출근이라... 아, 이제 좀 살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3개월짜리를 어린이집에 맡기려 하니, 이 양가감정이 내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한다.
좋은데 너무 슬프다. 그리고 미안하다. 출근해서 해방감이 드는데, 아기를 못 봐서 너무 슬프다.
그래도 출근을 해야 벌어먹고 살 테니 엄마를 용서해라. 강하게 커라, 아들!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기는 혼자 앉고, 이유식도 먹고,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엄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엄마라기보다는 뫄에 가까웠지만 뫄뫄뫄뫄뫄를 듣고 엄마는 울컥했다.
첫걸음마쇼를 엄마 앞에서 보여줘 얼마나 다행인지. 워킹어멈으로 이런 순간들을 놓치는 것이 걱정되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이런 역사적인(?) 순간들을 엄마가 있을 때 보여주였다.짜식들이 참 효자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것들,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아기에게 해 주었다. 내 불행한 유년기를 한탄하는 것보다, 내가 아기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해 주고 싶었다. 아기에게 적어도 책을 500권쯤 읽어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이곳에 한국동화책은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어 그림책을 빌려 내가 먼저 읽고, 그것을 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여러 번 읽어 주었다.
밀가루를 물과 뭉쳐서 같이 반죽놀이도 하고, 물감으로 칠하고 같이 놀았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하며, 나는 오히려 나의 상처가 아무는 느낌을 받았다.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로부터 날개가 돋아나 나비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빨리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도 아직 나비가 아니었고, 함께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