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남편이 내 이야기에 등장한 적이 별로 없다. 가족이야기를 쓰려면, 일단 베짱이선비에 대해 먼저 써야 할 것 같다.
내 남편은 고고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조선 선비 같은 아버지를 피해, 벨기에로 사랑의 도피를 했더니 그 결과는 벨기에 뮤지션선비다. 아버지처럼 숨을 콱콱 막 하게 하는 것이 싫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베짱이를 택했는데, 종착지는 그저 음악밖에 모르는 다른 종류의 선비다. 어찌하여 유교녀는 항상 조선선비, 아니면 색목인 선비, 쭉 선비옆인가!
돈을 많이 준다는 콘서트가 들어와도 본인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벨기에의 인순이급이 되는 어느 듀오의 투어에 함께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1회가 아니라, 투어라서 콘서트가 적어도 10회 이상일테니 벌이가 짭짭할 터였으나, 베짱이선비는 단칼에 거절하였다. 음악 취향이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음악학교에서 앙상블을 가르치고 있어, 많지는 않아도 꾸준하고 안정적인 파이브라인이 있다는 것이다. 베짱이선비는 돈을 버는 것에 있어서 크게 욕심은 없으나, 돈을 못 버는 것, 돈을 잃는 것에 있어서는 아주 질색팔색을 한다. 어릴 적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돈 없음의 뜨거운 맛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행이긴 한데, 본전을 잃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고, 투자 같은 세속적인 것은 담을 쌓고 산다. 그래서 억지로 올가미라도 걸고 질질 끌고 가는 것은 내 몫이다.
벨기에도 사람들이 집을 못 사 안달이다. 월세 아니면 자가인데, 이 분을 질질 끌고 가서 집 매매 계약서에 싸인을 하게 한 것도 나이다. 집값은 그 사이 우리가 산 시점보다 대략 두 배 이상이 올랐다. 코로나 이후로 벨기에도 자가주택에 대한 붐이 일어서, 정원 딸린 개인주택은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 (월세 살면 되지, 뭔 집을 사냐고 하던 인간이 집값 시세는 매년 체크하신다. 정원 넓고 으리으리한 저택이 아니고, 벨기에의 전통적인 일렬로 들어선 작은 일반 주택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
대략 이런 느낌의 집이다. 은마아파트도 우리 집 앞에서는 응애응애 베이비가 된다. 올해로 101년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감수성도 풍부하셔서 디즈니 영화 보다가 눈물을 흘린다. 그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은 나는 정말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베짱이선비는 화초 같은 남자다. 화초처럼 자리 잡고 앉아, 그 자리에 쭉 있다. 일을 하지 않을 때면 넷플릭스를 켜고 쇼파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음악학교는 일반학교와 다르게, 본인이 가르치는 시간에만 가면 된다. 그럼 집에서 하루종일 비비고 계시다 본인이 가르치는 시간에 슥~하고 나가서 수업 몇 시간 하고 오는데, 어쩌면 그리 쌓여있는 빨랫감과 설거짓감이 눈에 안 보이는지 미스테리다.
뭐 하나 부탁을 하면, 언제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시간은 혼자 다 가졌나 보다. 이틀, 삼일은 기본이다. 참다 참다 결국 내가 한다. 그럼 자기가 딱 하려고 했는데, 왜 시켰으면 기다리지 직접 하냐고 한다. 아 놔, 미치겠다.
본인에게 무지하게 관대하고, 남에게도 관대하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가 더 정확할지도). 세상이 망해도 자기 드럼연습실과 넷플릭스, 쇼파와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할 인간이다. 그냥 다 좋단다. 항상 행복하고 항상 만족스럽다.
이효리가 이상순의 음악적 취향과 베짱이성향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벌어놓은 돈이 많아서일 것이다. 게다가 이상순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돌아온, 집안이 좀 사는 사람인 것으로 추측된다. (암스테르담의 월세는 살인적이다. 학비도 그다지 싸지 않다. 그곳에서 외국인학생이 공부를 했다고 하면, 돈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벌어둔 돈도 없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시댁도 없다. 친정에도 조선선비 아버지가 계시는데 아버지도 투자라면 질색하신다. 그러니 뭐 부모의 경제적 여유는 꽝, 다음기회에!
아무리 봐도 이효리와 나는 뮤지션을 배우자로 둔 것 이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게다가 나는 육아레벨 극한의 아들이 둘이나 있다. 이 두 머스마들은 목소리도 크고, 집안을 체육관으로 사용한다. 넓지도 않은 집안에서 공놀이를 하시고, 칼싸움을 하신다. 진짜 미치겠다. 주말에 화초 같은 뮤지션선비 베짱이는 고고하게 앉아계시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콘서트를 하러 간다. 나는 주중에는 일터의 개미로, 주말엔 집개미로, 빨래 돌리고, 밥하고, 청소하고, 험하게 노는 아들 둘의 바지 무릎에 천을 대느라 시간이 다 간다.
그냥 바지에 구멍 나면, 사면된다? 그럼 이놈들이 워낙 험하게 노는 탓에 5일에 바지 한벌 꼴로 사야 하는데, 알다시피 공무원 월급은 아무리 많아도 넉넉하진 않다.
이것들이 다, 이효리는 여전히 쿨 할 수 있지만 나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효리는 여유롭게 받아 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이 말을 하고 싶다.
그래도 고고하고 취향이 소나무인 베짱이선비가 줏대 없이 이것저것 아무거나 하는 놈이었으면, 내가 벨기에까지 온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베짱이선비는 적어도 내가 힘들 때, 어디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고 다른 여자가 좋다고 나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화초에는 발이 안 달려 있다.
나의 고향말, 딱 네 자로 표현 가능하다.
애는 착햐~!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지랄 같은 성격에도 허허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끌고 가면 질질 끌려가주는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나랑 카리스뫄가 넘쳐 흐르는 마초적인 남성이랑은 좋은 결말이 아닐 것이라는것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이런 애는 착한 사람을 고른것일지도 모른다. 개미가 베짱이와 만나게 된 것도 다 순리일지도? (그래도 일 좀 덜 하게 해 주면 안 될까, 베짱이?)
그래 베짱이, 너는 화초 같은 남자 해라.
상여자가 말하노니,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나를 믿고 따라와! 내 어깨에 우리 집 남자 셋의 행복이 달렸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가 베짱이일지라도 그의 드럼실력은 아주아주 높이 평가한다. 베짱이의 절친개미로 여러 콘서트 다녔지만, 이 인간 드럼 하나는 참 잘 친다!
베짱이선비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보나쓰로 베짱이선비가 활동하는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방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u6AmU5E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