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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Oct 06. 2024

외국인 추방하는 벨기에의 검은 머리 공무원

그냥 바보인 척 할 걸 그랬다.

벨기에 말단 공무원 직책인 보안요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국적자격 미달이라며 나를 잘라 내려는 인사팀을 참교육 시켜준 뒤, 유럽국적이 필요 없는 다른 부서인 외국인관리청으로 옮겨갔다.


벨기에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앤트워프 외국인관리청은 이곳의 도시행정직 중에서도 한직 중의 한직이다. 모든 이들이 일하기를 꺼려하는 악명 높은 부서이다. 왜? 일단 일이 매우 빡세고 감정노동이 심하다.


본 브런치북의  벨기에 개론 2편인 아랍이 아니고 벨기에입니다. 를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벨기에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이민자가 많고 앤트워프라는 도시가 브뤼셀을 제외하고 벨기에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보니 외국인이 엄청나게 많다. 직업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문제없는 외국인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이곳에는 정말 별의별 외국인이 모여있다.


하레딤에 속한 유대인 (극도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유대인들)이 유럽 내 모든 도시를 통틀어 가장 이곳에 많이 있고, 유럽 곳곳에서 아기를 안고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집시들도 다수 있고, 거짓부렁으로 속여 결혼비자를 받은 후 도망가는 중동계열의 이민자, 아프리카에서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힘들게 이곳까지 와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에서 요러한 보수정교 유대인이 가장 많은 도시가 앤트워프이다.


처음 세 달은 이미 합법적으로 등록이 끝난 외국인들에게 거류증을 연장해 주고, 가족관계증명서 등등의 서류를 떼어주는 일을 했다. 참 편했고 쉬운 일이어서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 달이 지나고 일이 손에 익어 눈감고도 샥샥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부서의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유교녀씨, 이력서에서 대학졸업했다고 읽은 것 같은데, 맞나?

벨기에에서는 대학원과정 휴학 중에 있고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녔었습니다. (당시 아기의 출산이 임박하여, 적성에 잘 맞았던 미술과학대학원은 휴학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럼 어려운 지문을 읽고 그걸 이해하는 것도 잘하겠네?

흠... 잘한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지만,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 시험을 보려면 공부를 했어야 하니까 아예 못한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럼 이제 증명서 떼주고, 거류증 연장해 주는 거 말고 다른걸 한번 해봐.

다른 거요? 뭘요?

추방명령 떨어진 사람들에게 추방명령고지를 설명해 주고, 싸인받고, 필요에 따라서 소송을 걸면 변호사 하고 얘기해서 새로 약속도 잡아주고. 할 수 있겠어? 이건 아무나 시키는 게 아니야. 고등교육받은 사람만 시키는 거야. 꽤나 어려운 일이거든.

한번 해 보지요, 뭐.


이때는 몰랐다.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 차라리 대학졸업장 없다고 할걸. 그냥 멍청한 척하고 가만히 있을걸...


그 일을 시작 한 이후로 나는 매일매일 울면서 집에 왔고, 집에 와서도 울었다.


어떤 이는 결혼 비자를 신청했다가 배우자의 경제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신청이 거부되어 추방명령을 받았고, 어떤 이는 돈을 주고 거짓으로 커플인 척하다가 걸려서 추방을 받았다. 또는 기초생활보조금을 타려고 정부에서 정해준 면접을 일부러 가지 않고 버팅긴다던가, 아니면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체포되어 추방명령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인간세상의 삼라만상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다.


이유야 어떠하든 이미 벨기에에 온 사람들에게 이곳에 더 이상 있으면 안 된다고,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곳에서의 모든 권리들이 다 사라졌다고 써져 있는 법적인 조항을 명시한 통지서를 이해 시키고 싸인을 받아내는 것은 나 같은 잡초에게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문화경영대학원을 미끄러졌을 당시 공부했던 유럽연합상법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법이긴 해도 법에 관련된 단어를 많이 배우게 되었다.  개나 소나 다 들어가는 벨기에 대학 편 참조. 말했지 않는가. 미끄러지긴 했어도, 당장 결과가 있던 없던, 나중에 오는 결실도 결실인 것을! 그때 미끄러진 그 과목이 이렇게 쓰일 줄을 몰랐다.) 게다가 하루종일 이런 추방 문제만 처리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다.


추방명령을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공임대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대개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법을 악용하여 기초생활수급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지만, 한 순간에 집에서 나가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하고, 정부 지원도 끊기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키란 말인가.


추방명령고지서에 사인을 하면 벨기에 정부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비행기표를 전액 지원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곱게 본인들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서류상에서 사라지게 되면, 그들은 그대로 불법체류자가 되어 살아간다. 물론 추방명령에 동의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 수도 있지만, 그 결정이 뒤집어 질 확률은 거의 없다. 소송에서 패하면 처음에는 3달 안에 벨기에를 떠나야 한다는 조항이 1달로 바뀌고, 다시 소송을 하다 지면, 즉시 추방으로 조항이 바뀐다. 즉시 추방으로 바뀔 경우는 더 이상 소송을 할 수 없다.

내가 일했던 외국인 관리청 창구

세상만사 알다가도 모르겠다. 불과 2년 전, 나는 창구의 반대편에서 불친절한 행정서비스에 학을 떼면서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벨기에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반대편에서 사람들에게 추방명령에 인을 하라고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없는 말단공무원이며,  연방정부의 결정을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상사에게 한 번은 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가, 그러면 주소를 잘못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 그런 일을 하려거든 이곳이 아니라 구호단체야 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상사는 말했다.


추방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싸인하기를 당연히 거부했고 (싸인을 하는 것은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싸인을 하나 하지 않으나, 떨어진 추방명령이 다시 없어지지는 않는다. 추방명령공지를 들었다 라는 것에 싸인을 하는 것이다.)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나에게 윗사람 불러오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쳐서, 직속 상사를 불러왔는데 추방명령받은 사람에게 상사가 따귀를 맞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직은 한직인 이유가 있었다. 매일 받는 스트레스와 감정노동에 나는 녹초가 되었다. 심지어 월급은 이 직책의 급수보다 한 단계 낮게 받으면서 대학졸업장이 있다고 더더욱 빡센일을 싼 가격에 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조직이 상대해야 할 적이 강한 경우에는 조직 내의 팀워크는 강한 법이다. 서로가 똘똘 뭉쳐야, 살 수 있으니까. 처음으로 벨기에 사람들이 의리가 있다고 느낀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이었다.


한 외국인은 나에게, "너도 외국인인 주제에 누가 누구한테 추방이네 뭐네야. 난 벨기에사람이랑 말하고 싶으니까, 벨기에 사람 불러와."라고 했다. 나의 벨기에 동료는 그 사람에게 "이 동료가 당신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똑똑하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트집잡지 말아요."라고 내 편을 들어주었고


또 다른 동료는 "우리는 네가 한국사람이던, 중국사람이던, 일본사람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너는 그냥 우리의 유교녀야, 그게 중요하지."라고 말해 눈물이 핑돌게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벨기에에 이민 가서도 한국인임을 잊지 말고 한국인들과 교류하며 지내야 한다고. 이 나라에 정을 붙이려면 여기에 사는, 마음을 터놓고 잘 지낼 수 있는 한국인이 있어야 한다고. 물론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였으니, 한국인끼리 서로 공감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하겠지만 색목인도 사람이고 벨기에 사람도 사람이다. 인간의 정, 의리라는 감정을 나는 벨기에로 이민을 오고 난 뒤 처음으로 느꼈다.  따듯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좋은 동료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아기가 3주나 일찍 나와 버렸다. 다행히도 아기는 일찍 나왔음에도 건강했고, 이렇게 자동적으로 나는 3개월간의 출산휴가로 잠시나마 매일 집으로 울면서 돌아오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3개월 출산휴가는 빛의 속도로 끝났고 이제 다시 복귀를 해야 했다. 누군가는 "어라? 벨기에 복지국가 아니야? 왜 고작 3개월?"이라 하겠지만, 여기도 공식적인 출산휴가는 3개월이다.


나는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다시 출근을 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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