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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Sep 29. 2024

공무원 인사팀 참교육

억울하옵니다. 신문고를 울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지난 이야기 청청벽력같은 공무원 부적격 판정




벨기에의 앤트워프시 뮤지엄 보안요원으로 시험과 면접을 당당히 통과한 나는 임용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국가안전시험을 위해 교육을 받으러 왔고, 철밥통 획득의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철밥통을 획득할 수 있건만...


 교육 도중 유럽연합의 시민권자만이 해당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유럽연합 국적자가 아니라 보안요원임용은 물 건너간 듯했다. 시청 인사팀은 잘못을 덮기 위해 나에게 유럽국적이 필요 없는 다른 직책에 배정해 준다고 했다. 딱 1년만... 1년 쓰고 버리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종신고용으로 계약서에 사인도 하고 집도 샀는데 이제 대출금도 못 갚게 생겼다. 그럼에도 배속의 아기는 다행스럽게 엄마의 타는 속과는 다르게  잘도 커간다.


국적만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그렇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벨기에인은 되기 싫다. 내가 대단한 애국자라서 한국국적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갖고 있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내 잘못이 아닌데 국적을 바꿔야 한 다는 게 싫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인사팀의 잘못이었다. 그들이 내 국적을 확인 안 하고 뽑은 것이니까. 외국인도 자유롭게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는데 보안 관련 직책만은 예외였다. 그들이 확인을 안 했고, 나는 집세도 못 갚고 바닥에 나 앉을 일만 남았다. 인사팀은 1년이라도 일하는 게 낫지 않냐고, 그냥 수락하라고 어르고 달랜다.


처음에는 이걸 신문사와 방송국에 제보를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별 볼일도 없는 말단 공무원 외국인 노동자의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어 줄까. 일단 이 옵션은 탈락.


그럼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걸어볼까. 그런데 지금 당장 집세도 못 내서 나 앉게 생겼는데 무슨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변호사를 선임한단 말인가. 게다가 벨기에 행정은 뒷목 잡고 쓰러지도록 느려 터져서 판사가 결정을 내리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해서 이 옵션도 또한 탈락!


조선선비 멘탈 우리 아버지께도 이 사실을 고했고, 아버지는 시청 인사팀의 말도 안 되는 일처리 방식에 분개하셨다. 그러다 아버지와 전화통화 중 불현듯 머리에 무언가가 스쳐갔다. 조선시대에도 신문고가 있었는데 여기라고 그런 게 없겠어?  

출처: 한국민족대문화백과사전


머리를 굴리고 굴리고,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두들겨 찾았다. 이 일을 해결할 실마리를...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내 억울함을 들어줄 수 있는 더 높은 나으리에게 읍소를 하면 되는 것이다.

다 죽었어 너네들. 두고 봐라.



혹시 옴부즈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옴부즈만은 쉽게 말해 국민을 대신하여 행정기관을 감시하는 더 높은 나으리인 것이다. 부정한 행위나, 공정하지 못한 민원신고를 조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사는 도시 앤트워프는 옴부즈브라우(ombudsvrouw/ 여성을 표현하는 말/ 영어로 하면 옴부즈우먼이 되겠다)가 있었다. 쉬운 설명을 위해 이하 옴부즈만이라 통칭.


옴부즈만이 일을 잘 해결해 줄지, 잘은 모르겠지만 도박하는 셈 치고, 일단 나는 시청 인사팀에 1년 계약직이라도 하겠다고 말을 했다. 1년 동안 대출금을 못 낼 일은 없을 것이다. 1년이라는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제발 바라건대, 옴부즈만이 이 일을 해결해 주길를.... 인사팀은 좋은 선택을 했다며 반겼다. 1년 쓰고 버릴, 착하고 어리버리한 아시아여자라서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그 사이 나는 이 모든 사단이 인사팀의 잘못이라는 증거를 수집다. 유럽국적자여야 한다는 것이 쓰여 있지 않았던 구인공고 원본, 나를 구워삶아 1년 계약직을 주려고 했던 모든  들의 이름과, 언제 어디서 만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무슨 제안을 했는지도 다 써서 옴부즈만에게 민원을 넣었다. 이 옴부즈만이라는 게 권한이 엄청나다. 정부기관의 잘못을 지적하면 정부기관은 까라면 까야한다.



 인사팀의 1년 계약직 자리를 받아들여,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졸업장이 있어야 갈 수 있는 보안요원보다 한 단계 높은 급수인 외국인관리청으로 가게 되었다. 참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검은 머리 외노자가 외국인관리청 근무라니. 게다가 이곳은 처음 내가 벨기에에 이사 온 2주 차에 아이디카드를 신청하려고 왔다가 네덜란드어를 못한다고 무지막지한 모욕을 들은 곳이기도 하다. 아니, 이사 온 지 2주 됐는데 네덜란드어를 못하는 게 당연한 거지, 제정신 박힌 공무원은 아니었던 듯하다. 차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사람은 외국인 관리청 내에서도 4가지 없기로 유명한 자였다.


외국인관리청에서 일을 시작하고 몇 주 후에, 나는 옴부즈만에게서 무려 시의회 회의록을 메일로 송부받았다. 내가 쓴 민원 때문에 그야말로 인사팀과 시의회가 발칵 뒤집혔었던 것이다. 시의회가 소집되어 내가 겪은 문제에 대해 시의원들과 옴부즈만 입회하에 회의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옴부즈만은 '인사공고 시 요한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공고할 것'이라 권고했다.


그리고 '민원제기자는 시청 인사팀의 잘못으로 해당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현재 임용된 급수로 종신계약을 유지하고, 해당국적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부서에서 일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이겼다. 유교녀의 신문고 상소가  제 일을 해냈다.  그 회의록에는 아쉽게도 나를 구워삶으려 했던 인사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들의 안부를 알지 못해서 아쉽다. 공무원은 워낙 철밥통이니 짤리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윗선으로부터 엄청나게 깨졌을 것이다. 나를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동양여자로 본 자들, 쌤통이다.


잡초처럼 끝까지 버텨내 나는 이렇게 앤트워프시 공무원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옮겨간 앤트워프시의 외국인관리청일은 처음 세 달간은 할만했다. 그러나 나의 대학졸업장(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다)이 또다시 나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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