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도 내 친구, 네 친구도 내 친구
이제까지 내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벨루치언니는 이탈리아인이지만 바르셀로나에서 7년을 살았다. 언니의 못 볼꼴, 볼 꼴 다 본 언니의 찐친 레알 바르셀로나 토박이인 앙헬이란 친구도 오늘 저녁에 함께 만나기로 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앙헬이지만 벨루치언니의 친구면 뭐 내 친구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흐흐
이들이 사실 나의 믿는 구석이었다. 바르셀로나를 바르셀로나인처럼 여행하는 것이 이번여행의 목적이다.
거의 10시가 다 된 시각에 벨루치언니는 호텔에 도착했다. 스페인인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은 저녁 10시부터이다.
사실 너무 배가 고팠다. 12시에 아점을 먹고 10시 다 되어 가는 시간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가 고플만하다. 뭐라도 먹고 싶었는데, 먹자니 언니가 오면 배가 불러 많이 못 먹을 것 같아 꾹 참았다.
반가워 서로를 얼싸안고 인사를 나눈다. 그렇지만 나의 배고픔이 반가움을 이겼다. 언니가 밥으로 보인다.
언니!! 챠오, 꼬메 스타이??(Ciao, Come stai?/ 안녕, 잘 지냈어?), 너무 오랜만이야! 근데 나 진짜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챠오, 소렐리나(Ciao, Sorellina/ 안녕, 동생아!!)!! 진짜 오랜만이네. 나 기다리느라 배 많이 고팠지? 알았어, 내 친구 앙헬이 호텔 밑에 와 있대. 빨리 내려가자.
비가 많이는 아니고 살짝 이슬비처럼 오고 있다. 배가 너무 고픈지라 우산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우산은 놓고 몸만 간다.
밑에 내려가서 앙헬을 만났다.
지피티가 만들어준 스페인어 리스트에서 본 문장을 써 본다.
무초 구스토. (Mucho gusto/ 만나서 반가워요)
엥깐따다. (Encantada/반가워요)
앙헬은 Angel의 스페인어/카탈루냐어의 발음이다. 이름이 천사라니 특이하다. 근데 정말 천사같이 착한 친구였다. 주말 내내 우리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 다 해주고 설명해 주고 발에 물집이 생기도록 걷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벨루치언니가 말한다.
내가 오기 전부터 가고 싶던 타파스바가 있어. 거기 가자!
이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하리. 일단 배가 너무 고파 흙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타파스바에 도착했는데 자리가 없다.
앙헬은 바르셀로나 라이트 페스티벌(The Llum BCN 2025: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 얼반 랜드스케이프를 이용한 빛의 축제)에 가자고 제안했고 가는 길에 다른 타파스바가 있으면 들어가자고 했는데 가는 길에 빗발이 점점 굵어진다. 그러더니 장대비가 된다. 비를 피하는 게 우선이라 결국 아무 곳에나 들어간다.
언니, 근데 나 우산 있어.
아, 잘 됐네. 우산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근데 호텔방에 있어.
아니, 그럼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 맞네. 내일은 꼭 우산 가지고 나가야지. 호텔방에 있는 우산을 생각하니 쓰리다.
라이트 페스티벌은 무슨... 비가 너무 와서 꼼짝없이 이곳 bar에 갇혀있다. 결국 이날 라이트페스티벌 근처에도 못 가보고 호텔로 돌아갔지만 이날 만약 그곳에 갔었더라면 여행 내내 앓아누웠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잘 됐다. 처음 만난 앙헬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벨루치언니도 오늘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 한다. 분위기가 썩 우리가 생각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일단 먹을 것을 시킨다.
그냥 비를 피하기 위해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의외로 타파스 퀄리티가 생각보다 뛰어나다. 바르셀로나에 와서 처음 먹는 타파스이다.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맛있는지, 아니면 맛이 있어서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다.
배가 좀 차고 나니 그제야 언니가 보이고 앙헬이 보인다. 벨루치언니는 14년 전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서 고향인 로마로 이사를 했고 앙헬은 언니의 오랜 친구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지금도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찐 토박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했다. 앙헬은 영어를 못하고, 나는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를 못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카탈루냐어가 참 신기하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섞어놓은 것 같다. 맥주 한 병이 들어가니 앙헬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알코올이 부리는 마법인가?
오, 신기방기하네!
그리고 앙헬은 벨루치언니에게 이탈리아어를 조금 배워서 카탈루냐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그가 아는 영어 단어를 섞어서 나와 대화를 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앙헬이 하는 말의 50-60프로는 알아들은 것 같다.
앙헬은 또 내가 이탈리아어로 묻는 말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 이상한 언어의 조합은 바르셀로나 여행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바르셀로나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호텔에서 뭔가를 묻거나 할 때 영어로 묻지 않고 이탈리아어로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영어로 하면 무뚝뚝하고 꽁하게 대답하던 것이, 이탈리아어를 하면 갑자기 친절하고 도움을 주려 한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기쁘다. 아는 것도 많고 정말로 착한 친구이다. 내 친구는 아니지만 뭐 내 친구의 친구면 내 친구도 되는 것 아닌가.
첫 만남에서 함께 장대비를 뒤집어쓰고, 맥주를 세병이나 마시고 나보다 14살이나 많은 앙헬과 친구를 먹었다.
앙헬과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벨루치언니와 나는 비를 쫄딱 맞고 호텔방에 돌아왔다.
나... 우산 가져왔는데... 머리를 안 쓰면 몸이 고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