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쫄딱 젖어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꼭 우산을 잊지 않고 챙겨 갈 거다. 가져왔으면 한 번이라도 써 봐야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제 맥주 세병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벨루치 언니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해장이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매콤한 국물음식이 아닌 기름진 음식으로 해장을 한다. 난 원래 아무거나 먹을 거면 다 잘 먹는 사람이기에 기름진 것이던, 콩나물 해장국이던 없어서 못 먹는다.
우리는 해장을 하기 위해 호텔 근처의 고딕지구(Barri Gòtic: 바르셀로나의 가장 오래된 역사적인 지구로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의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고 각종 먹을거리, 볼거리로 가득한 지구이다)로 향한다. 우산은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챙긴다.
호텔뷔페조식은 둘 다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근처에 벨루치언니가 아는 곳에 간다. 호텔조식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불필요하게 과하게 먹게 되기 때문이다. 내 접시 위에 있는 것만 딱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이 과식을 방지하는 길이다.
호텔이 시내에 있을 경우 호텔 근처의 괜찮은 브런치집을 알아 둔다면, 호텔 조식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분위기에서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다.
가다가 언니가 여기 서봐. 내가 사진 찍어 줄게라고 한다.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벨루치 언니.
나보고 한번 뛰어 보란다. 시키는 대로 했다.
사진을 봤더니....

언니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언니니까 용서한다.
식사를 하고 바르셀로나의 해운대인 바르셀로네타 해변가로 간다. 언니는 오래전에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언니가 살았던 아파트도 보여주고 자주 갔던 시장도 보여줬는데 언니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해 보인다.
난 정말 바르셀로나를 좋아했어.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지내셔서 로마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은 항상 바르셀로나에 있어.
유럽인들이 어찌 보면 효사상 충만한 한국 사람보다 가족과 부모를 더 챙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언니의 주말은 언니의 어머니와 함께 점심 먹고 같이 장 보러 가는 등, 어머니를 챙기며 보낸다. 언니뿐만이 아니라 언니의 갓 성인이 된 아들도 주말마다 할머니를 뵈러 간다.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있기 위해 그렇게도 좋아하던 도시를 떠났으니 많이 그리울 듯하다.
언니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르셀로나에 나를 데려와 줘서 참 고맙다.
아침인데 조깅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내일은 우리도 함께 조깅을 하기로 약속한다.
거짓말처럼 해가 반짝반짝한다. 기껏 우산 가져왔더니 해가 반짝반짝하는 건 무슨 시추에이션??
벨루치언니는 아무래도 네가 우산을 가져와야 날씨가 계속 좋을 것 같다며 계속 가지고 다니라 한다.

지나가는데 과일가게가 보인다. 사실 어제 하루종일, 과일과 채소는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귤나무의 썩은 귤을 먹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귤과 오렌지를 좀 샀다. 그렇췌. 귤과 오렌지는 스페인이지!
벤치에 앉아 귤과 오렌지를 까먹는다. 달고 시원하고 맛있다.
언니에게 묻는다.
언니, 근데 스페인에서 과일, 채소 한 조각도 못 먹었어. 이 사람들은 과일이랑 채소를 안 먹어??
타파스로 식사하면 거기에 과일과 채소는 없어. 과일과 채소를 먹으려면 집에서 밥 먹어야지.
음... 그렇군. 계속 외식을 하는 이상 채소 먹기는 글렀군.
이탈리아는 식사할 때 우리나라의 반찬 개념처럼 꼰또리니(Contorini)로 채소를 주문할 수 있는데 인접국이라도 스페인은 그런 문화는 없나 보다. 채소와 김치가 그리워 지려 한다. (결국 가는 날까지 채소 한점 구경 못했다. 이렇게 살다 고지혈증 걸리겠다 생각을 했다.)
바르셀로네타 해안가를 걷는데 누가 어깨를 탁탁 친다.
앙헬이 본 디아!라고 인사를 한다. 앙헬이 조인을 했다. 그래서 오늘의 계획은 무엇인가?
아 놔, 바르셀로나 토박이 한 명과 7년 거주자가 있는데 계획이 없다. 일단 셋이 무작정 걷는다.
이 날 걸은 총거리는 23.8km였고 총 33,700보였다. 바르셀로나 사람처럼 여행하고 싶다 했는데 바르셀로나 군인처럼 행군을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시내를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내가 중간중간에 커피 좀 마시자고 우기지 않았으면 이 열정 넘치는 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30킬로를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30킬로를 걷게 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다리 아프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집에 가기 전, 앙헬이 "이 신발 사고 나서 두 번째 신는 건데 뒤꿈치가 다 까졌네." 쿨하게 이 말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셋다 독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토박이 한 명과 전거주자 한 명과 함께 한 여행인데 아무것도 안 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너무 많은 것을 해서 한 에피소드에 담기도 힘들다. 걸은 거리만 23.8킬로인데 얼마나 보고 느낀 것들이 많았겠는가.
그런데 에피소드 길이가 너무 길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더 써보도록 하겠다. 아, 그리고 하루종일 비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이 다 끝나도록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꿀팁과 정보가 느무느무 많으니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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