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도서관은 벨기에의 7개의 학술도서관 중 하나로, 앤트워프 대학의 대학 도서관이다. 총 지하 3층과 지상 3층의 총 6층으로 된 거대한 도서관이기도 하며, 디지털 컬렉션을 제외한 장서수를 일렬로 놓으면 총 42km에 이른다.
그! 런! 데!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우리 도서관의 카탈로그에서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찾아보았더니 충격적인 결과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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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큰 도서관인 관계로, 업무가 분업화되어 있는데 내가 속한 부서는 책을 구입하고 컬렉션을 관리하는 일을 하지는 않아, 나의 일은 아니지만
(나의 일은 주로 대학학생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워크숍 신청을 하면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는 학술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어와 쿼리를 통해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수업을 하거나 장서들을 대학의 과학 관련 이벤트를 위해 추려내는 일이다. )
도서관 컬렉션에 작가님의 작품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 크다. 물론 아직까지 벨기에에서 한국문학의 입지는 작은 편이다. 우리 도서관에서 일본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치면 꽤 많은 작품이 검색된다. 그러나 한국문학의 인지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번에는 노벨상 수상까지 하셨으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직원찬스 서적구매를 제안하였다. 단번에 결재가 났는데, 구매부서의 동료가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채식주의자는 구매완료, 그런데 소년이 온다는 웬만한 대형서점에서는 다 완판이어서 전자책만 구매가능.
소년이온다, 네덜란드어판/ 전자책 말고 종이책을 주시라고요
그래서 나는 중고서적이라도 구해 보기로 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당근마켓에서 소년이 온다를 찾아봤는데, 이미 다 판매완료이거나 구매 중이어서 누가 찜을 해 놓았다.
지구반대편의 유럽에서도 한강작가님의 수상소식에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래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인터넷을 다 뒤지고 뒤져 결국 소년이 온다가 재고가 딱 3권 남아있다는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주문을 했다.
벨기에의 유일한 한국인 사서로서 할 일을 했구나 싶어 뿌듯하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아시아 문학을 어둠에서 탈출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 도서관은 공립 도서관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서적의 구매는 학술연구가 기본목적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시아 문학서적은 구입되면 바로 지하서고로 들어간다. 빛도 한번 보지 못하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진열을 하거나, 독자를 만날 기회가 바로 사라지는데 이것을 개선해 보고자 한다.
왜! 미국문학, 영국문학, 네덜란드어 문학, 호주문학은 열람실에 있는데 아시아문학은 지하서고에서 빛도 못 받고 있는 것인가! 물론 서구 문학이니 본인들 연구에서 중요하시기도 하겠지만, 동양언어전공도 있는 곳에서 아시아 문학을 구입하자마자 지하실로 보내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작년즈음 내가 구매제안을 한 박상영작가님의 대도시의 사랑도, 모두 다 빛도 들지 않는 지하실에 있다.
3시간 뒤 회의가 있다. 아시아문학의 지하서고 탈출을 건의할 것이다. 열람실을 찾아보니 책장의 빈자리도 무지하게 많구먼...
그렇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냥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내 직속 상사에게 먼저 제안을 하고, 그러면 그 안건이 또 컬렉션을 총괄하는 더 높으신 분에게 가고, 또 거기서 해당 학과의 도서관 컬렉션을 조언하는 어드바이저 a.k.a 교수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 지구반대편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있지 않는 한 힘없는 것은 매 한 가지이다. 그러나, 배운자들에게도 노벨문학상은 무시할 수 없는 썸띵이니, 이번이 기회다. 이렇게 아시아 문학작품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한강작가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언제가 된다고 장담은 못하겠으나, 나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하고 마는 성격이다. 한강작가님의 책은 지하서고로 보내고 싶지 않다. 이번에 반려가 된다면, 교수 허락이고 나발이고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아시아문학 열람실 배치 제안을 계속할 것이다.
곧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소식 들려 드리길 바라며, 이상 광기발랄사서, 고추장와플 유교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