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네 남녀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통한 삶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통찰
솔직히 말하자면 완독하기 힘든 책이었다. 중간에 포기할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 책이 고전인 이유가 있겠지, 읽다 보면 고전 작품이 가지는 보편적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꿋꿋하게 읽었는데 결론적으로 끝까지 읽길 잘한 것 같다.
초, 중반부를 읽으면서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가벼움)을 폭로하는 단순한 구조의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키치’라는 개념이 나옴으로써 인간과 사회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더 흥미로워졌다. 여기서 키치란 개인의 삶 또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더럽고 불쾌한 것, 더 나아가서는 거대한 구조적 어둠을 은폐하는 힘이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재한다.
삶과 사회의 악취를 은폐함으로써 개인과 사회는 가벼운 존재가 된다. 결국 인간은 원래부터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무거움(온갖 더럽고 부정적인 것들)’이 ‘가벼움’을 초래하는 꼴이다. 소설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이를 표현한다.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프란츠의 이야기이다. 프란츠는 기근이 돈 캄보디아를 돕기 위해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군에 의사의 입국을 주장하는 행진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선하고 숭고한 뜻으로 시작되었던 캄보디아 대장정의 실체는 정치적 선전의 의도로 참여한 사람들, 주목받기 위한 연예인들로 가득한 허울뿐인 선행이었다. 하지만 그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눈과 귀를 닫고 끝까지 ‘생명에 대한 배려’라는 키치를 내세우며 의사들의 출입을 요구하였다. 프란츠는 이 상황 속에서 허무를 느낀다.
다른 인물들에게도 프란츠와 대장정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처럼 저마다의 키치가 있다. 테레자는 영혼의 고결함에 대한 믿음이 키치가 되어 육체를 영혼에 종속된 한없이 가벼운 존재로 전락시켰고, 토마시는 “그래야만 한다”라는 필연성에 대한 강박이 키치가 되어 우연으로 이루어진 테레자와의 사랑에 의구심을 품고 다른 여인들과의 잠자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삶을 산다. 사바나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이미지가 키치가 되어 이러한 이미지로부터 벗어난 그녀의 모든 관계를 포기하고 배신을 거듭하며 가볍게 만들어나간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도 키치로 인해 가벼워진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모두 거대한 이상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은폐하여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키치는 혐오스럽고 가증스럽다. 하지만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너무 연약하기에 삶과 사회의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습성인 키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키치에 굴복해야 하는가? 이 책에 따르면 아니다. 인간은 키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한계를 넘기 위해 몸부림침으로써 삶은, 그리고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키치를 극복하는 방법을 ‘질문하는 것’이라 제시한다. 키치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키치가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들추어보아야 하고 이는 질문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전체주의적인 키치의 왕국에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으며 모든 새로운 질문은 배재된다. 따라서 전체주의 키치의 진정한 적대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셈이다. 질문이란 이면에 숨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무대장치의 화폭을 찢는 칼과 같은 것이다.
화폭의 이면에 숨어있던 모든 악취 나는 것들을 마주하겠지만 나의 삶과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건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는 것처럼, 마약 중독자가 약을 끊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