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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냐 Jan 27. 2024

네 눈이 엄마를 꿈꾸게 하거든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 책 요약

자신이 어머니의 전부였던 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 감상(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읽는 내내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소설이라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으로 만들어진 아들의 삶을 일인칭으로 겪어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경이를 동반한 짙은 감동이 몰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고집스럽고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가스라이팅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불쌍한 아들의 이야기’로 일축하기에는 내가 느낀 감동이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 내 안의 일치되지 않는 감상을 정돈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Q: 로맹(주인공)을 향한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출처:시사상식사전). 소설을 읽어보면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한 어머니의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어 자신을 보호하도록 만든 것. 어머니는 로맹(아들)이 본인을 지켜주는 남성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로맹이 그 기대를 저버리면 싸늘해지는 식이다.      

“내 말 잘 들어.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군가 네 에미를 네 앞에서 모욕하면, 다음번엔, 사람들이 너를 들것에 실어 집으로 데려오기를 나는 바란다. 알겠니?”     
“내가 한 말을 명심해 두어라. 지금부터 너는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저들이 주먹으로 너를 어떻게 하건 나한텐 상관없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필요하다면 넌 죽기라도 해야 해.”     

이러한 반응은 로맹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로맹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는 일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여겨지는(실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웃에게 찾아가 주먹을 먹여 주변에서 깡패라는 평판을 얻는다.           


둘째,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 세뇌한 것. 아들에게 너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 말하는 건 아들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맹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임을 말함으로써 아들이 본인의 과도한 기대에 따라 살아갈 것을 강요한다.     

“넌 단눈치오가 될 걸 뭐! 빅토르 위고가 될 거고, 노벨상을 받을 거야!”
“니진스키다! 니진스키야! 넌 니진스키가 될 거야! 분명해!”
어머니는 줄곧 나를 바이런 경과 가리발디, 단눈치오, 달타냥, 로빈 후드, 사자왕 리처드 들의 혼합물로만 보려 하였으므로, …     

로맹은 어머니의 이런 기대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는 어머니의 힘든 삶을 보상하기 위해 살아간다. 스스로를 대리인으로서 존재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왜냐하면 나는 내가 그 이외에 다른 어떤 사명도 갖고 있지 않음을, 내가 어떤 점에선 대리인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알 수 없지만 공정한 힘이, 희생과 헌신의 삶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천칭의 이 편 접시 위에 나를 던졌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으므로.          


로맹은 어머니가 가스라이팅으로 심은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가치에 따라 살아간다. 그 가치란 앞서 말한 어머니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심어졌든 이러한 가치들은 로맹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게 만들어주었으며, 그의 인생은 이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한 인생이었다. 로맹은 어머니의 삶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쟁 중에도 소설을 쓰며,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으로 프랑스의 휴전 선언 후에도 영국으로 넘어가 투쟁을 계속한다.

어서 빨리 불후의 명작을 써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전무후무한 최연소 톨스토이로 만들어, 즉시 어머니의 고생을 보상해주고, 어머니 일생에 왕관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할 걸작을.     
비상한 흥미를 느끼고 모여든 한 무리의 상사들 앞에서, 어머니가 ‘불멸의 조국’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프랑스, 프랑스’에 생명을 바치라고 말할 때에는 목소리까지 바뀌었고, 강한 러시아 악센트가 분명히 들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스라이팅이 한 인간에게 죄책감과 무력감만을 심어주지 않고, 삶의 의미를 불어넣었다면, 우리는 그 가스라이팅이 무조건 악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가스라이팅 그 자체는 잘못되었지만, 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로맹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겠다. 네이버 어학사전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그런데 여기엔 사랑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빠져 있다. 바로 ‘조건 없이’이다.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상태에 처해 있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라 생각한다.     


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로맹의 엄마는 로맹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 점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로맹의 엄마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은 로맹, 외교관이 되지 않은 로맹,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연약한 로맹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로맹의 엄마는 자신의 지치고 비참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아들이 필요한 것일 뿐.     


모든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품는다. 그 기대가 무너지더라도 자식을 똑같이 소중히 여길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하지 못한 자식을 경멸과 실망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사랑받지 못함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자녀들이 가슴 한편에 무조건적인 애정을 평생 갈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죽음 후 로맹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갈증은 어머니가 준 사랑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향한 것이다. 로맹 스스로는 알지 못하겠지만…     




Q: 앞으로의 로맹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나는 어머니가 죽고 로맹이 어머니가 기대한 모든 것을 이뤄낸 이 시점 이후 로맹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영토 해방 훈장의 초록과 검정 리본을 레지옹 도뇌르와 무공 훈장과 더불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대여섯 개의 다른 메달들을 눈에 잘 띄도록 가슴에 달고, 검은 전투복 위 어깨에는 대위 장식줄을 늘어뜨리고, 모자는 눈까지 눌러쓰고, 안면 마비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굳은 표정을 띠고, 신문 기사를 오려 꼭꼭 채운 잡낭 속에는 내 소설의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담고, 호주머니에 외교관 생애의 문을 열어준 편지를 찔러 넣고, 몸에는 무게를 잡는 데 필요한 만큼의 납덩이를 넣고, 희망과 젊음과 확신과 지중해에 취하여 선 나,     


로맹은 무엇을 기대며 살아갈까.


나는 로맹이 어머니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다가도, 이미 그의 사고 전체를 지배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면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로맹의 삶은 어머니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가 강력하게 심어놓은 애국심과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다.


예측컨대 그는 위대한 작품을 쓸 것이다. 어머니가 그에게 준 모든 정신적인 유산들을 가득 담은 자전적인 소설을. 그의 문학 세계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머니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나약해질 때면 어머니를 떠올리겠지. 그의 문학은, 아니 그의 삶은 어머니로 환원될 것이다. 안타깝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한 생애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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