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논문이 알려주는 인간의 판단능력 - 2
지난 글에서는 행동경제학 논문인 '의사결정 정책을 준수 시의 행동 문제'(Behavioral problems of adhering to a decision policy)을 읽었습니다. 먼저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짧게 요약하면,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결정능력이 영향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의사결정을 다룬 책들을 여럿 읽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참고한 책은 "통섭과 투자", "판단의 버릇", "클리어 씽킹"이 있구요, 그 외에 lesswrong.com 과 fs.blog 의 글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배운 내용을 정리하니 의사결정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3단계 규칙 수립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소개해 드릴께요.
위에서 확인한 대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전략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전략을 미리 세워놓으면 실행 중에 전략을 멋대로 바꾸거나, 따르지 않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실행 전에 전략을 미리 세우고, 실행할 때에는 꿋꿋하게 전략을 따라야 합니다. 즉, 내가 따를 규칙을 명확히 정하고, 실제 상황에서는 마음이 흔들려도 규칙을 정확하게 따라야 합니다. 내킬 때만 따르는 규칙은 규칙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략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니까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오더라도 판단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순한 규칙대신, 의도를 활용하면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는 ‘의도 설정하기'입니다.
미군 작전계획에는 “지휘관의 의도”라는 짧은 문장이 있습니다. 지휘관의 의도는 짧게 표현한 지휘관의 목표입니다.
지휘관의 의도가 있으면, 부하들이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전체 목표를 따를 수 있습니다. 복잡한 상황에 걸맞은 형태의 규칙이죠.
예를 들어, 작전계획이 "도시 A를 확보"라면, 지휘관의 의도를 아래처럼 명시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의 의도: 도시 A를 확보
기본 방향: 방어선 정면돌파
이 경우, 적의 방어선이 너무 견고해서 돌파할 수 없다면 방어선을 우회하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도시 A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의 의도가 없다면 현장에서 이런 유연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겠죠.
법안에도 이런 식으로 입법 목적을 명시하고는 합니다.
세상은 아주 복잡합니다. 예상 밖의 상황에 대비하려면 섬세한 규칙보다는 포괄적인 지침이 적절합니다. 이는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설명한 책 '규칙 없음'에서도 잘 설명하는 내용이고요.
의도를 확정하면, 복잡한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계획대로 전략을 따를 수 있지요. 설정한 의도가 적절한지 고민하 하는 만큼 전략은 강건해집니다.
하지만, 전략을 따르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전략의 이점이 사라지고 부작용이 발생하는 예외상황이 있거든요. 전략을 세울 때 고려하지 못한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예외상황을 없앨 수는 없어요. 대신, 지금이 예외상황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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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황이 벌어질 때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심상치 않은 차트의 흐름을 보면,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황 같습니다. 그래서 손절가에서 손절하기 어렵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 거짓말한 사람은 손절한다."라는 규칙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뭔가 다를 것 같아" 내지는 "이 사람은 변할 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규칙을 언제 버려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우리의 판단은 쉽게 영향받으니까요. 따라서 규칙을 버리는 데에도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 규칙이 바로 전략의 가정과 예외입니다.
완벽한 전략은 없습니다. 모든 전략은 나름대로 상황이 어떠하리라는 가정에 기반하여 세웠기 때문에, 그 가정이 깨진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전략을 버려야 합니다. 문제는, 언제가 예외인지 우리가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예외상황인지 알아서 판단해야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판단오류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번 차트는 다르다", 혹은 "이 사람은 느낌이 달라"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우리의 판단기준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전략을 짤 때에는 가정과 예외를 명시해야 합니다. 가정이란, 이 전략이 작동할 이유입니다. 모든 전략은 "(세상이 어떠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어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의 형태입니다. 전략이 작동하려면, 세상이 어떠하다는 우리의 추측, 즉 전략의 가정이 옳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는다"라는 전략이 작동하려면,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라는 가정이 옳아야 합니다. (꼭 옳지는 않은 가정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떤 가정을 전제했는지 자주 잊어버리고는 합니다. 혹은 우리의 가정이 늘 옳다고 확신하거나요. 양쪽은 비슷하고, 모두 위험합니다. 2008년에는 "미국 주택 가격이 항상 오른다"는 가정이 당연시 되었었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집과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략의 취약성(=가정)을 인지하지 못할 때, 위험은 도사립니다. 나심 탈렙이 "블랙 스완"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 위에 서 있는지 알아야,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예외도 가정처럼 전략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두 번 거짓말 한 사람은 앞으로도 거짓말할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어야 "두 번 거짓말한 사람은 손절한다."라는 규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가정이 통하지 않는 예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선의의 거짓말을 의도했을 수 있지요. 그런 경우라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잘못 알고 한 말이 거짓말이 된 경우도 예외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예외상황을 명확히 판단하려면, 예외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전략의 한계를 명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의 한계는 가정과 예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 전략의 가정과 명확하게 이해해야 전략을 언제까지 따를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전략이 역효과를 내는 상황에서는 전략을 버릴 수 있습니다. 관성을 따르다보면 이런 판단에 약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써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필요 없어진 일을 하느라 시간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2주 후에 론칭하는 신제품의 사전 주문 홍보 계획을 짜는 마케팅 팀이 있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홍보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팀은 홍보계획을 계속 수정하다가 결국 준비과정에서 2주를 다 쓰고야 맙니다. 이미 신제품은 론칭되었고, 사전 주문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은 무의미해졌고, 게다가 홍보도 못한 상태죠. 이 사람들이 특별히 생각이 얕거나 게으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늘 하던 대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시간 압박 때문에 시야가 더 좁아졌을 수도 있고요.
'홍보계획 보완하기'라는 전략은 평소에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는 홍보계획을 보완할수록 결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고,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설명한 상황처럼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그 예시죠. 처음부터 전략의 가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더라면 이런 낭비는 피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이처럼 내 의견의 전제(=가정)를 고민하면 인간 판단력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멘탈 모델을 연구한 심리학자 존슨 레어드(Philip Johnson-Laird)의 의견을 인용할게요. (멘탈 모델은 지식 시리즈에서 조만간 다룰 예정입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일련의 전제들을 바탕으로 추론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전제들과 양립 가능한 것들만 고려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아예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J. 모부신의 '판단의 버릇'에서 인용) 우리는 우리가 틀릴 가능성을 무시합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데도 말이죠.
내가 왜 옳은지 이유를 많이 모은다고 내 결정이 정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틀릴 가능성을 깊게 탐구해서 언제 전략을 버려야 하는지 알아야 내가 나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찰리 멍거도 본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만큼 반대의견을 잘 알고 있어야지만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지요.
규칙의 한계를 모르면,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고, 부작용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내 규칙의 장점과 한계를 모두 이해했을 때 규칙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논문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강건한 규칙을 만들고, 활용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규칙에 기대야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지만, 우리가 깊이 고민해서 만든 규칙이 그나마 믿을만하니까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 세계적인 프로 도박사 데이비드 스클랜스키(David Sklansky)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책 '통섭과 투자'에서 인용)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가장 유리한 쪽에 돈을 걸었다면,
실제로 돈을 따든 잃든 이미 돈을 번 셈이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불리한 쪽에 돈을 걸었다면,
실제로 돈을 따든 잃든 이미 돈을 잃은 셈이다.
직감에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계획으로 이겨놓고 싸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P.S. 이렇게 2차 사고를 하더라도 계획은 완벽할 수 없고, 결국 예상 밖의 일은 벌어집니다. 여기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나심 탈렙이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나심 탈렙의 불확실성(Incerto) 4부작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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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Slovic, P. (1973). Behavioral problems of adhering to a decision policy.
- 통섭과 투자, 마이클 모부신
- 판단의 버릇, 마이클 모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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