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경남 사천까지 4시간이나 걸렸다. 가을 단풍이 멋들어지게 물들어 있었고 가을꽃들도 아름다웠다. 중간중간 단풍산을 구경하느라 차를 세우고 한껏 가을 정취에 빠져들었다. 가을의 바람이 볼에 스칠 때 문득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을 지나 봄을 알리던 봄꽃은 항상 피어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 그 꽃들은 모두 지고 가을꽃들로 바뀌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이 다하면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로 대체가 되겠구나 싶었다. 잠시의 생각을 내려놓고 도착한 사천의 가을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천은 내 인생의 한 고비가 숨어있는 곳이다. 25살 나의 방황과 실패가 이곳에 있었다.
내 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생텍쥐 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하늘의 비행기를 보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를 닮고 싶었고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생텍쥐 페리는 나를 조종사로 만들었고, 어린 왕자는 나를 동화를 배우고 쓰게 했다. 딸을 위해 쓴 나의 첫 동화가 <오로라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조종사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이곳 사천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제트기를 조종하여 하늘을 날았다. 나는 몸이 꽤나 건강한 편이었지만 하늘에서 마스크를 쓰고 숨 쉬는 것은 너무나 곤혹스러웠다. 또한 3차원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며 이루어지는 비행 기술을 배우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가장 힘든 것은 자꾸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는 것이었다. 마스크가 분비물로 가득 차서 숨을 쉴 수도 없었고 높은 고도에서 마스크를 벗으면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담당 교관은 조금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고 말하며 격려했지만 횟수를 거듭해도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술을 먹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패배감은 더욱 커졌다. 마치 어린 왕자의 술꾼이 잊기 위해서 술을 먹는다는 변명처럼 나는 실패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평가의 순간이 왔다. 만일 이틀 뒤 비행에서 또다시 토를 하면 나는 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두려웠다.
저녁을 먹고 비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작별인사였다. 그 친구는 이제 짐을 다 챙겨서 오늘 나간다고 했다. “나는 3차원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져서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해. 그런데 너는 단지 토하는 문제만 있잖니. 난 네가 그것을 극복하고 멋진 전투기 조종사가 될 거라고 믿어. 결국 마음의 문제이니까.” 그렇게 그 친구는 내게 희망을 주고 떠났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가 떠나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꿈을 다시 생각했다. 그날 다시 처음의 꿈을 생각하며 어린 왕자를 읽었다.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비행기를 위해 보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책임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단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하고 실패할 거라는 염세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 사실이 나의 꿈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타오르게 했다.
다음 날 나는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돌보듯 비행기를 만져보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책임을 다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결국 나는 평가비행에서 처음으로 토하는 일없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먼저 떠난 그 친구의 말대로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그 후로 지금껏 비행기에 대한 책임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내 꿈이 고스란히 길들여진 것이기에.
세 친구들의 25살의 방황과 실패가 남겨 놓은 추억을 소환하는 사천에서의 가을밤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두친구는조종사의 꿈은 접었지만 결국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항공공학과 암호학 교수가 되었다. 또다른 꿈을 꾸었고 이룬것이다. 그 당시 방황과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으로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순간순간 하는 일이 내 인생의 구체적인 내용이 되고 역사가 된다. 내 인생은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방황과 실패를 통해 배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