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로 보이는 키 큰 친구가 여자 친구보다 한 계단 아래에서 계단을 올라간다. 둘의 키는 똑같아졌다.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의 손을 잡아 준다.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라는 미소가 한 움큼 자리한다. 남자 친구의 배려가 부러웠다. 내가 아내와 연애할 때는 계단을 먼저 올라가며 잡아끌었던 것 같은 기억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연인의 다정한 모습에서 남자가 한 계단 내려가니 여자가 한 계단 높아지는 것을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살면서 우리는 당당함과 거만함, 겸손과 비굴의 파도타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하는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감이 생기고, 어느덧 경험이 쌓이면 자기만족이 도를 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만한 마음이 자라게 된다. 그리고 결국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에, 겸손해야 한다는 굴레에 빠져 하지 안하도 되는 일을 하고 불편한 관계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비굴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반복된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과 인생 전부를 바쳤는데 돌아오는 것은 허망함이네."라고 한탄하곤 한다. 이것은 어쩌면 마음과 인생을 바친 게 아니라 돌아올 게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당당함이 거만함이 되고, 겸손이 비굴함이 되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면 좋을 텐데, 신은 인간에게 자기만족이라는 능력을 주어서 그 생활에 익숙하게 만들어 알아채지 못하게 한 듯하다.
나는 나이 50이 넘은 지금까지 시험에 떨어져 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어찌 보면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거만하게 살았다. 그러나 공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어설프다. 원하는 대학에 가고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부모님께 얼마나 거만했던가.친구들에게는 또 얼마나 자랑했던가.
사회생활에서 힘 있는 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약한 사람에게는 험한 말을 하며 끝없는 위로 올라가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돌아보면 꽃 하나의 이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어색하고 사회에서 많은 실패를 한 것은 이런 거만함의 댓가였다. 거만한 삶이 만든 사회적 부조화다. 세상은 시험 잘 보는 사람에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오히려 경험이 많고 겸손한 사람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 살아보니 당당한 겸손이 필요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50이 넘은 지금에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인간의 성품에는 수많은 미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겸손과 자신감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인격을 완성시킨다.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남에게 배우고 베풀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안다. 그러나 겸손함이 비굴함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비굴함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남의 의견에 무조건 굴복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겸손함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되,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반면에, 당당함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확신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이다. 당당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알며,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당당함이 거만함으로 치닫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거만함은 자신을 남보다 높게 평가하고, 타인을 무시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능력을 과시하는 태도이다. 당당함은 올바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되,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겸손함과 당당함 사이에서 방향을 잃곤 한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찾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데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성공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당당한 겸손'은 계단에서 만난 연인의 모습이다.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바라는 것 없이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일이다. 내가 한 계단 내려가 키와 눈을 맞추고 내 능력으로 배려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우월한 키를 자랑하지 않는 마음이다.
일과 관계에서도 당당함과 겸손의 균형은 그 사람의 능력과 품격이 된다. 일상 속에서 당당한 겸손을 잊지 않고, 거만과 비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