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엄마를 따라가던 아이가 넘어졌다. 아이는 울었고 엄마는 아이를 안아 준다. 곧이어 아이는 손바닥을 보이며 엄마를 쳐다본다. 넘어지며 손바닥을 짚어서 손이 아프다는 말이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만져주며 “여기가 아팠어? 호~”하고 입김을 불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추고 이내 웃음을 되찾는다. 나도 웃음이 절로 났다. 엄마의 ‘호~’라는 소리가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받고, 비록 아직 아플지라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 맞다. 사랑하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소리로도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다. 결코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베지 않는다.
한 친구가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던 그 친구는 오랜 기다림 끝에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꿈만 같았다. 취업 후에 힘겨웠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이 늘 그렇듯 업무를 익히는 데는 지금까지의 공부가 모두 허사였다. 작은 지시도 이해를 못 하거나 매번 실수를 하여 싫은 소리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회의시간에 챙겨야 하는 자료를 잘못 챙기거나, 중요한 보고사항을 빼먹거나, 전화 온 사람을 구분 못하는 것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야! 신입, 넌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냐?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냐. 넌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야? 백 있어? 또 그러면 퇴사시킨다. 알았어?”
과장님에게 너무 혼이 난 후 과장님만 보면 수족이 굳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의 엄마와 아빠는 명문대 출신이었고, 첫째 형과 둘째 누나도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재수를 하여 원하지 않는 과였지만 서울에 있는 Y대학교에 입학했었다. 나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집안에서 그는 늘 루저였다. 그가 20년 인생에서 제일 잘했던 것이 공부였는데, 그 마저도 집에서는 꼴등이라는 생각에 늘 자신감 없고 소심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난 까다로운 상사와 대화하면 늘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고 늘 모자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악순환의 삶이었다.
그는 대학 동창의 부고소식을 듣고 그의 빈소를 찾았다.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는 놀라웠다. 흠잡을 데 없을 것 같던 그의 암울한 집안 이야기였다. 그날 그는 평생 처음으로 그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간 집안은 여전히 외부에서 봤을 때는 행복해 보였지만 그에게는 지옥이었다. 그에게 가족은 남보다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가족에게 위로받기보다 상처를 더 받은 그였다.
“너는 일찍 다니라는 말도 이해 못 하니? 빨리 씻고 자라.”
늘 듣던 차가운 말이었다. 그는 차라리 웃음이 났다.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자신 있는 말로 인사를 했다. 그것이 그가 부모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그는 무심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잘 배운 부모님들에 의해 잘 다스려지는 가정일수록 말의 온도가 차가운 것이 아쉽다. 말로 베인 상처는 치유할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준다. 비록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만약에 넘어진 아이의 엄마처럼 ‘호~’라는 소리로라도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그가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지난날 내가 상처 주는 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많이 반성도 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늙고 병들고 결국 죽는다. 사는 동안 함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다독여 주어야 한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해 주어야 한다. 자랑스럽게 살진 못해도 부끄럽게 살진 말아야 한다. 말로 베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이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아프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다정한 말이 없는 곳에 사랑이 있다는 것은 억지이다. 따뜻한 마음을 다정한 말로 주고받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너는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