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변호사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재판이 있는데, 마침 끝나면 저녁이라 식사를 하자는 말이었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었고, 몸도 시차에 어느 정도 적응된 때라 흔쾌히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그동안 안부를 묻는 말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요즘같이 다사다난하고 빨리 변하는 시대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별일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사회 초년 시절에 일이 잘 풀리는 일만큼 좋은 일일지 모른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건넨 말이 못내 서운하고 오래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넌 학교 다닐 때부터 반목이었잖아?”
동창친구가무심히 던진 한 마디는 이 말이었다.
“형, 아시다시피 전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긍정하지도 않고요. 잘못된 말을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남들은 분위기 깬다고 하지만, 옳은 일에는 칭찬을 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후배의 얼굴에 자조 반, 억울함 반이었다. 그 어린아이 같은 표정에 웃음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넌 내게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야.”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욕망은 내리고, 미련은 버리고, 과거는 잊으면서 사는 일을 너는 여전히 하고 있잖아.”
후배의 얼굴이 이번에는 쑥스러움으로 번지는 듯했다.
“에이, 아니에요. 전 그렇게 훌륭하지 않아요.”
그러더니 괜한 생맥주를 들이켰다.
후배가 뱀의 혀 같은 달콤한욕망은 끌어내리고, 못내 아쉬운미련은 후회와 반성을 통한 깊은 성찰로 버리면서, 아프고 슬픈 과거는애써잊으며살아온 것을 내가 어찌 모를까? 그러나 그는 욕망과 미련과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참으로 단단하게 살고 있다. 그 모습이 늘아름답다.
지난 6개월 동안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짧았다.
헤어지며 늘 그렇듯 오래전 혼자가 되셨지만 후배를 올곧게 키우신 어머니에게 과일을 사드리려는데, 그날은 우리의 수다가 너무 길었던 탓에 농수산물 마트가 문을 닫았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얼른 집으로 가서 스페인에 갔을 때 사놓았던 알로에 크림을 주었다. 가격이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마음이니까. 후배는 어머니를 마음으로 모시는 착한 효자이니까.
인생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서,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며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바로 "너는 내게 있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분명 내 삶의 깊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내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에게 이 말을 해 주었던 사람은 한 손의손가락만으로 셀 수 있다. 어쩌면 이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눈으로 말하는 사람이 부모를 포함해서 몇 명 더 있을 수도 있겠다.
삶에 빛을 더해주고, 성장을 돕고, 직면하는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사람.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소중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낸다거나, 일상의 작은 대화를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중한 사람은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고,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그들은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실패에 대해 위로를 건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누군가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룬 성취, 그들의 성품, 또는 관계에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성공을 나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낀다면 기울어진 관계일 것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감을 주고 마음의 위로가 된다. 서로의 멘토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서로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나침반 역할을 하며, 서로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 만난 후배가 그렇다.
늘 삶을 고민하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후배가 고맙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네가 나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만남이 설레고 행복한 날이었다.
"너는 내게 있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을 나누는 깊은 연결의 표현이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단한 사람만 있다 하더라도 삶의 축복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버지가 아프시다. 중환자실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실 아버지가 내게는 많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분이다.부디 희망이 이기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