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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칼라새 Dec 09. 2024

3-3. 거울과 부메랑은 주는 만큼 돌려준다

- Chap 3. 너는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다 -


가을의 단풍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데 쌀쌀한 바람은 겨울을 재촉하는 듯하다. 계절 속에도 이런 부조리가 있는데 삶에는 왜 없으랴. 


작년 이맘때쯤,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나에게는 소중한 후배가 장군 진급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통화를 하며 덕담을 주고받으니, 나는 어느새 20년 전의 추억 속에 있었다.  



대학원에서 리더십을 공부하고 있을 때, 집단 심리상담 수업을 2박 3일 동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은 앞으로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실 마음건강한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태를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해 공부하러 오신 분들이었다.     


그중 한 분은 10년의 공부를 마무리하고, 몇 달 뒤에 서품식이 있는 예비 신부님이었다. 본인을 '흔들리는 나침반'이라고 하시며, 10년을 공부해도 늘 마음이 흔들리니 걱정이라며 마음공부를 하러 왔다고 겸손히 말씀하신다.


또 다른 한 분은 병도 잘 진단하고 수술도 잘하는 의사이신데, 사람의 눈을 따뜻하게 보며 말을 잘 못한다고 했다. 부모님을 위해서 혼자 책 보고 공부만 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하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한 명이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인 대학원 후배 장교였는데, 과거 전방에서 수색 중, 지뢰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고로 자신은 영웅이 되었지만, 그 후 모든 일이 힘겨웠다고 말한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 중에 그 후배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비무장 지대에서 수색과 정찰 임무를 책임지는 중대장이었다. 수색과 정찰 임무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위험한 임무였기에 그는 항상 가장 선두에서 수색견, 수색병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비무장지대의 봄은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가 가득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수색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쾅’하는 굉음과 함께 수색견, 수색병, 그리고 그가 자리에 쓰러졌다. 뒤에 있던 병사들은 몸을 숙였고, 그는 지뢰 파편이 몸속에 박혀 정신이 혼미했지만 병사들을 멀리 피하라고 했다. 수색견이 건드린 지뢰의 신관이 작동되면서 땅 속에 묻혔던 지뢰가 위로 솟구치며 폭발하여 파편들이 흩어진 것이었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쓰러져 있는 수색병과 수색견을 업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 정신을 잃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척추와 팔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는 대수술이 끝났을 때였다. 척추와 팔에 박힌 파편들은 비교적 쉽게 제거했다. 그러나 머리에 박힌 파편은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었기에, 위험해서 제거 수술을 할 수 없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수색병과 수색견은 괜찮습니까?”

그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수색견은 살지 못했지만, 병사는 무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군의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 후 머리에 박힌 파편 조각으로 인해 그의 안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3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지만, 그의 한쪽 눈과 한쪽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가끔씩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수색중대로 돌아가 사랑하는 부하들과 임무수행을 가고 싶었지만, 완전한 몸상태가 아니었기에 훈련교관으로 남기로 했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부하들과 수색견을 더 빨리 구할 것이라고 그는 아쉬워했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책임이라고 떨리는 얼굴로 결연히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의지와 책임감이 강했고, 순수하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몸은 서서히 좋아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아프게 했던 것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파편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었다. 군, 언론, 방송 등에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훈장까지 받았으니 승승장구하겠네.”

경쟁자였던 동료들은 그를 시샘했고,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훈장도, 살신성인의 표상이라는 말도 삶의 무게로 느끼고 있을 즈음에 그는 석사공부 기회를 얻고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 한쪽이 머릿속에 있는 지뢰파편으로 인해 찌그러져 보였다.


“차라리 이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는 자책하듯 우리에게 말했다.     


"거울을 한 번 보세요.”

심리상담을 진행하시던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고, 인생은 부메랑과 같아요. 내가 먼저 웃을 때 거울은 따라 웃고, 인생에서 내가 베푼 사랑만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대위님께서 보여준 희생과, 사랑과, 배려는 거울이고 부메랑입니다. 보여주신 희생과 사랑과 배려는 흉내를 내거나, 감히 시기하고 이용할 수 없는 거울이고 부메랑입니다. 겸손하되 자랑스러워하세요. 그리고 더 베푸세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교수님의 격려에 불편한 얼굴 근육이었지만 그는 수줍은 듯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더 많이 웃고, 사랑과 친절을 베풀면 더 행복한 인생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교수님의 격려에 그의 마음은 가벼워졌고, 얼굴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후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말에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환하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사랑과 배려에 대한 그의 습관은 더욱 강해져서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지뢰로 인한 상처보다 자신을 더욱 아프게 했던 주변의 참견과 시기로 인한 역경에서 그는 더 많을 것을 배우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를 만나 식사하면서 장군 진급을 축하했다.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 비록 일그러진 모습 그대로였지만, 환한 미소가 가득한 모습이 더욱 멋져 보였고, 그의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이 함께 자리한 모든 사람들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잘못된 사고를 가진 정치군인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요즘에, 그의 삶은 그들에게 귀감이 되는 고귀한 희생과 배려를 일깨워준다. 군인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그 군인을 국민이 믿어주는 이유가 이런 희생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의 진급이 권력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는 안다. 그가 가진 리더의 자리는 희생과 책임에 대한 부메랑 인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울은 멋저 웃지 않고, 인생은 부메랑과 같다. 선의는 선의로 돌아오고, 악의는 악의로 돌아온다. 그가 내게 소중한 이유이다.

 



그때 만났던 신부님은 서품식을 잘 끝내시고 지금은 꽤 높으신 자리에 계신다는데, 아직도 흔들리는 나침반이라고 하신다.


공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사람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하셨던 의사분은 이제 원장님이 되셔서 따뜻한 눈으로 환자를 돌보며 치료와 강의도 열심히 하신다.     


거울과 부메랑은 주는 만큼 돌려준다.


많이 웃고, 다정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며 더 많은 행복으로 채워지는 부메랑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랑스러운 내 인생! 소중한  인생도 자랑스럽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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