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명예를 쥐기 위해 이겨야 했고, 남들보다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부를 축척해야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거래적인 관계였고,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이었다. 나는 승승장구했고, 나의 노력의 결과라고 자만하며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늘 건강하게 웃던 아내가 응급실이라니.나의 생각은 갈피를 못 잡고 정처 없이 흘러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배는 임산부만큼 부풀어 있었다. 급성 장폐색으로 조금만 늦었어도 소장을 자르는 수술을 할 뻔했단다. 다행히 가스를 빼고 며칠 뒤 꼬이고 막혔던 장은 풀어졌다. 그러나 그 후 지금까지 그녀는 매 년 서너 번은 응급실을 찾는다. 수년간 애기가 안 생겼을 때 자궁에 나쁜 혹이 있는데도 애를 낳겠다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했던 그녀였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방해가 될까 봐 한 마디 안 하고 아픔을 참았던 사실을 장모님께 들었다. 아내가 퇴원한 그날 밤, 나는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 후 10년이 흘렀지만 아내는 아직도 응급실을 간다. 다행인 것은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오래전에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회에서 만나는 관계에서 거래적인 만남은 거의 안 만들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심만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간관계는 산길과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주 산을 오르고 길을 내야 익숙해지고 길을 잃지 않듯, 인간관계도 좋은 만남을 지속해야 마음으로 낸 길이 생겨난다. 사람이 많이 낸 길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좋은 마음이 낸 길은 소중한 인연의 길을 만든다는 것을 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홀로 지낸 후 그의 저서 <월든>에서 1853년 1월 3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구속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자유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소망하지만 자연 속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도 만족한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사랑하는 이의 솔직한 말을 들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같다.’
소로우는 자연에서 참다운 인간의 길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나는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답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소박하고 간소하고 검소한 삶,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간소하게 살며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으로 낸 길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사계절이 주는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치게 되는 것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깊은 대화, 뜻깊은 경험,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놀라운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순간들은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에 풍부한 색채를 더한다.
아내가 어젯밤 한잠도 못 잔 모양이다. 조금만 무리하고 피곤하면 배가 아파 잠을 못 잔다.여차하면 10분 거리에 있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기 위해 우리는 지금 사는 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서 부재중일 때 아내를 케어하기 위해서 우리 윗집에는 장모님이 사신다. 물론 장모님도 지난 10년간 위급한 상황이면 아내나 내가 급히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삶이라는 산길에 마음으로 길을 내며 산다.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