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행복할까?
조건 좋은 남자 A
서울대학교 졸업
한국에서 손꼽는 대기업 근무 중
수입 상위 10%
높은 연봉, 결혼 후 집과 자동차 구입 어렵지 않을 듯
공부를 꽤 잘해서, 대학교 때부터 과외로만 생활함
가난한 농촌 출신이라 엄청난 자린고비
고집 세며 자존심 강함
성격 좋은 남자 B
지방대학교 졸업
컴퓨터 수리 업무
수입 하위 10%
결혼하면 전세는 커녕, 월셋집도 내가 구해야 할 판
고등학교 때부터 식당 서빙, 전단지, 컴퓨터 수리 등 안 해본 알바가 없음
가난한 농촌 출신이라 생활력 강함
주위사람 행복=나의 행복, 성격 세상 좋음
A는 나의 아빠이고,
B는 나의 남편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6남매의 막내로 자란 엄마는 남존여비가 강한 그 시대에도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조건 보고 아빠와 결혼했다.
조건만 보고 결혼한 여자때문에, 나는 20년 동안 악몽같이 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끼는 아빠와
하나부터 열까지 막 쓰는 엄마는 결혼하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을 유모가 다해주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엄마는
6남매 먹여 살리느라 길거리에서 뭐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하신
할머니의 아들인 아빠와 결혼하면 안 되었다.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요리를 해 본 적 없었던 엄마는
맏며느리가 지내야 할 제사가 1년에 20번도 넘는
농촌 집안의 맏아들인 아빠와 결혼하면 안 되었다.
엄마는 아빠의 조건을 보고 결혼했고,
나는 아빠의 조건을 보고 결혼한 엄마 때문에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그 어린 나이부터 아빠와 엄마의 부부 싸움을 줄곧 봐야 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은 상사와의 불화에 때려치우고,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해서도 내가 제일 똑똑한 것 같다며,
아빠는 사업을 시작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 센 아빠 사업이 꼬꾸라지면서
엄마 아빠의 부부 싸움은 극에 달했다.
돈 잘 벌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던 엄마이기에
돈 벌기 싫어서 이혼하지 않고 꾹 참다가,
외동딸이 돈을 벌 수 있는 20살이 되던 해에 이혼했다.
그리고 조건 좋은 아빠에서 20살인 딸로 "환승 물주"를 했다.
20년이 지나 아나운서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8살 외손녀에게,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여자직업이라고 엄마는 설명했다.
조건과 돈은 변하는데,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결국 나는,
조건 보고 결혼한 여자를 30년 보아왔기에,
사랑 보고 결혼한 여자로 70년 살으리라 결심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 집안에서 자란 남자
고등학교 진학조차 탐탁지 않아 했던 집안 환경
대학교를 가기 위해 안 해본 알바가 없는 남자
대학교를 졸업해도 월 20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그 남자
그러나 이 남자 내가 만난 어느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었기에, 모든 주위의 반대에도 결혼했다.
천호동 월세 13만원 단칸방부터 시작하여 9번의 이사를 했다.
화장실은 너무 추워서 한겨울에는 입김이 나왔고,
반지하 신림동 집에서는 곰팡이가 그득했다.
그럼에도 이 남자, 20년동안 악몽같이 살아온 나에게 하늘에서 주신 선물같았다.
사랑만 보고 결혼했기에,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환경과 상황은 변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