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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패배의 기록: 일본, 졌는데 왜 안 진 척할까?

[방구석5분혁신.사회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일본은 전쟁에서 졌다. 완전히 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 이후 일본 사회는 그 ‘패배’를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말은 했지만, 뭔가를 슬쩍 감췄다. 이 책은 그 감춰진 치부를 들춰낸다. 김항 교수의 『어떤 패배의 기록』은 일본이 전쟁 이후 만든 '민주주의', '평화', '비평', '혁명'이라는 말들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듣기엔 다 좋아 보이는 단어들이다. 왠지 정의롭고 멋져 보인다. 하지만, 비평은 무뎌졌고, 민주주의는 탈정치화되었으며, 혁명은 범죄가 되었다. 책은 캐낸다. 그 안에 숨어있던 식민주의를. 


1. 비평 – 날카롭지 못한 비평


먼저 고바야시 히데오. 1930~40년대 일본 문예비평계를 대표하는 거물이다. 전쟁 중에도 글을 쓰며 일본인의 정체성을 ‘일상의 실천’ 속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생활자’ 속에서 ‘궁극의 일본인’을 발견했다지만, 그 죽음이 강요된 것이었다는 점은 끝내 외면했다. 불편한 진실은 비껴간 거다. 가라타니 고진도 나온다. 현대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하나다. 1970년대에 마르크스를 새롭게 읽자는 글을 연재하며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경직된 교조성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식민주의가 어떻게 일본의 보편주의 속에 숨어 있는지는 파고들지 못했다. 겉만 살짝 긁고 지나간 셈이다.


2. 민주주의 – 겉만 번지르르한 평화


전쟁 후, 일본은 헌법에 “전쟁 안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대신 천황은 평화의 상징으로 남겨뒀다. 책은 말한다. 그게 이상하다고. 전쟁의 책임자가 살아남고, 그걸 덮은 채 평화를 말한다? 평화주의자 난바라 시게루, 사회운동가 와다 하루키. 하지만 '식민주의'에 대해서는 그들이 놓친 것이 있다. 전후 일본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온 것이 아니라, 기획된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착한 나라야”라는 허상 위에 민주주의 탑을 올린 거다. 식민주의적 폭력은 그대로 남았고, 그 위에 헛헛한 말의 성찬만 얹힌 거였다.


3. 혁명 – 사라진 정치, 남은 스펙터클


요도호 납치 사건. 1970년, 신좌파 젊은 운동가들이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한다.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혁명은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퍼졌다. ‘혁명 = 범죄’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이후, 혁명과 혁명가는 사라졌다. 뉴스 속 ‘수배자’만 남았다. 정치적 열망은 사라지고 남은 건 조작된 이미지, 정보전, 그리고 구경거리뿐이었다. 일본 사회가 혁명의 언어를 고의로 제거한 결과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에필로그는 오늘의 일본으로 시선을 돌린다. 3·11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은 ‘하나의 일본’을 말한다. 그러나 통합의 언어는 곧 배제의 언어다.  ‘하나됨’은 다름을 지우는 방식이었다. 야쿠자 같은 주변부 사회가 사라지고, 다양성 역시 위협 받는다. 모두가 ‘표준 일본인’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균질화된 일본. 그곳엔 이견도, 경계도, 다름도 설 자리가 없다.



이 책은 일본을 말하지만, 실은 우리를 향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식민주의의 잔재를 완전히 넘었는가? 우리의 평화는 누구를 침묵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비평은, 아직 살아 있는가? 질문은 날카롭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책이다. 천천히, 꼭꼭 씹어 읽어야 할 책이다. ‘패배’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회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패배를 직면하는 용기가 혁신의 출발점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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