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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Aug 18. 2024

완벽의 실패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기

                                    김초엽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리뷰


저자인 김초엽은 1993년생,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테드 창처럼 과학을 공부한 sf 소설가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단편 7개 중 첫 번째 실린 소설이다.


내용은 주인공인 내(데이지)가 마을을 떠나며, 친구인 소피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로 시작한다.

데이지가 사는 마을은 행복하고 평화롭다. 아이들이 커서 성년이 되면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지구)로 떠나는데, 일 년 후에 반 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온 아이들은 그 전과를 달리 부쩍 어른이 된 느낌이다. 데이지는 성년식에서 돌아온 한 명이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이유를 묻자, '순례지에 두고 떠나온 것' 때문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생긴 데이지는 성년이 되지 않았지만 지구로  떠난다. 

떠나기 전, 데이지는 역사가 담긴 도서관에서 올리브가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읽게 된다.


  릴리는 마을의 설립자다. 그녀는 딸인 올리브를 너무 사랑해서 이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에 살던 올리브는 이 마을 행복의 근원인 릴리에 대해 알고 싶어 지구로 떠난다. 지구는 개조받은 사람들인 완벽한 신인류와 개조받지 못한 비(非) 개조인이 살았다. 비 개조인은 차별받았고 사는 곳도 분리되어 있었다. 지구에서 사람들은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는 올리브를 유전적 결함을 고치지 않은 비개조인으로 차별한다. 올리브는 델피를 만나 릴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릴리는 얼굴에 선천적 결함인 커다란 점이 있었다. 지성이 뛰어난 릴리는 태아를 디자인하여 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이는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릴리는 딸을 원해 갖게 되지만 딸(올리브)도 릴리처럼 얼굴애 큰 점이 있었다. 릴리는 태아를 제거할까 고민하지만 폐기처분하지 않는다. 딸을 폐기처분한다는 것은 같은 결함을 갖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치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릴리는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차별이 없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를 알게 된, 올리브는 마을에 돌아와 기록을 남기고 다시 지구로 떠나는데 그녀의 묘비에 "델피의 올리브"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델피 때문에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이상적인 사회에서 차별과 비난, 좌절, 어둠, 절망이 있는 지구로 떠난 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은 추측하기를 "자신이 사는 마을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랑과 의미를 찾기 위해 돌아오지 않는다."  혹은 "분리주의적 사회를 없애려고 돌아오지 않는가"

  데이지는 생각한다."우리가 그곳(지구)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 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 왜 이곳이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유토피아에 살 수 있지만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택한 사람들. 데이지는 자신이 지금 왜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부분이다. 완벽해서 차별이 없는 세상보다, 불완전해서 서로를 의지하는 세상이 더 낫지 않을까?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김초엽 작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 남들과 다른 것이 어떤 건지. 또 사회에서 뛰어나다고 분류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보는 다양한 시선도 경험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혹은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다, 못하다고 하는  문제는 자아상에 영향을 미쳐 사람을 괴롭힌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자아와 환경을 완벽하고 질서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다. 완벽은 반대로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그림자가 생기게 되고, 질서란 다시 혼돈으로 가게 마련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을 수도 없고, 같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사람이 완벽하거나 다른 사람과 똑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으로 차별을 한다면 불행은 없어질 수 없다.

 

릴리는 두 번 완벽한 것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첫 번째는 태아를 완벽하게 만들어 신인류를 만들었다. 그러자 세상은 분리되었고 차별이 심해졌다. 릴리는 딸을 가지려고 했는데 태아에게 자신과 같은 유전적 결함이 있었다. 딸은 결함이 있으니 폐기해야 할 존재인가? 그럼 릴리 자신도 폐기되어야 할 존재였나? 

릴리는 두 번째 완벽한 것을 만든다. 딸(올리브)을 위해 차별이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든다. 갈등, 고난, 전쟁을 모르는 그저 평온한 마을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릴리가 자신을 닮은 딸에게 주고 싶었던 세상이다. 하지만 딸(올리브)을 비롯한 행복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왜 불완전한 지구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고통과 불완전을 감수하고 서로가 의지하며 사랑을 하는 것을 택한다. 

릴리가 만들려는 완벽한 두 가지는 모두 실패했다. 완벽한 사람을 디자인하는 윤리적 문제와 완벽이 외부적인 요인이라는 문제가 있다.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 주어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불완전해도 사랑을 찾고 싶어 했다. 올리브와 델리처럼,  같이 역경을 이겨나가며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같이 고생한다고 반드시 서로가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는 이분법적 원리가 작용하는 차원이 있고, 본질적인 차원이 있다. 릴리가 추구한 것은 에고(ego, 겉 자아)적 완벽이다.  에고는 외부적 조건이다. 조건에 의한 행복은 일시적이다. 에고는 이분법적 세계다. 이분법적 세계에서 완벽이란 없다.  이원론적(이분법적) 차원에서는 좋은 것을 추구하면 그만큼 반작용이 일어난다.

이 소설에서는 평온한 세상보다 차별을 받더라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불완전하고 괴로운 세상에서도 본질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완벽이 아닌 완전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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