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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Sep 04. 2024

이룰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는 길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지금은 폐쇄된 우주 정거장 대합실, 100년 동안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 있다.

대합실 관리자인 남자는 170세인 안나를 설득해서 지구로 데려가고, 우주 정거장을 없애는 것이 임무다. 남자는 그곳에서 안나의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안나는 인체 냉동 수면 기술인  딥프리징(냉동 후 해동)을 개발하는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남편과 아들은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으로 이주했다. 그녀도 연구를 곧 성공시키고 가족에게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우주 공간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발견되자, 경제적인 이유로 슬랜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항로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는다. 안나는 연구 성공 발표 후 슬랜포니아 항로 우주선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기자회견을 하다가 마지막 우주선을 놓치고 만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딥프리징을 하며 가족이 있는 행성으로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렸지만, 갈 수 없었다. 안나는 슬랜포니아로 가는 오래된 티켓을 간직하며 대합실에서 우주선을 기다린 것이다.

남자는 그곳에 가는 우주선이 생길 가능성이 없으며, 가더라도 남편과 아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며, 지구로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안나는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내게 마지막 여행을 허락해 주면 안 되겠나?"(182)라고 한다. 하지만 안나의 낡고 작은 개인 우주선으로는 그곳에 갈 수 없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 년 걸리는 거리이고 그녀는 우주선 조종사도 아니다.

말을 마치고 안나는 작고 낡은 자신의 우주선을 타고 슬렌포니아로 떠난다.


                                                                                           *

다음은 안나가 하는 말이다. 

"....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한순간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중략...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181)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182)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187)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빠른 길을 찾아내서 먼 곳을 정복하고, 경제적 효용가치가 없는 것을 없앤다면, 외적 가치에 의한 동기이다. 빠르고 먼 길을 가는 과정은 통로 속일 뿐이다. 딥프리징 기술을 사용해도 죽어 있는 상태로 견디거나 사람이 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빛의 속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매 순간을 소모하는 것이고, 행복하지 않다. 

멀리 간다고 해도 큰 시각에서 보면 정지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또한 내적 가치는 무시되고 이별하는 것, 그리운 것만 늘어난다. 

경제적 효용이나 기록 경신, 남들의 인정 같은 것은 외적 동기다. 외적 결과 보다도 나에게 과정이 즐거운 것들은 내적 동기에 의한 욕망이다. 

사람마다 내적 동기는 달라서 가야 할 곳도 다르다. 모두가 외적 동기와 새 기술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목적지를 잃게 된다.      

잊어야 할 것은 잊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 안나에게도 “잊어라.”라고 해야 옳은 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은 외적 가치가 될 때가 많다. 

나도 안나처럼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서 소용도 없는 기다림, 우주처럼 끝도 없는 막막한 그리움을 해 본 적이 있다. 한 번 어긋나면 다시 만나기 힘들다. 안나도 스스로에게 “그만 잊어라”라는 말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다면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라고 하고 싶다. 내적 가치를 버리고 외적 가치와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간다면 빨리 간다고 해도 순간들이 소모되고, 사람이 상해 간다.

사랑하는 것도 없이, 그리운 것도 없이 빨리 가는 시간은 아름답게 기억되거나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할 시간도 없다. 공자(孔子)를 사람들이 ‘안 될 줄 알면서도 가는 사람(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달할 수 없다고 해도 그 길을 가는 사람, 가야 할 곳을 아는 사람은 아름답고 성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적으로 좋아하는 예술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그에 따른 물질적, 현실적 결과물이나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처럼, 내적 가치의 동기에서 시작된 욕망도 외적 가치의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외적 가치와 동기들은 때론 이생에서 이룰 수 없는 일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내적 가치마저 포기하고 살게 된다. 

어차피 내적 동기에 의한 추구들은 이룬다고 할 수 없는 무한한 것들이다. 나에게 이룰 수 없어 보여 절망하게 되었던 것은 외적 동기에 의한 세계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불가능해 보여서 그만두었던 것들, 도 닦기, 그림그리기, 진리를 탐구하기,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세계 등을 추구하기로 했다. 결과물은 ‘다음 생’에 이룬다는 마음으로 내가 그리워하는 길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삶의 순간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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