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예민함이 도움이 된 순간
바로 전의 글에 개코라서 냄새에 예민한 나의 불편 사항과 애로 사항을 적으며, 냄새에 유독 예민한 이 개코는 어디에 쓸 곳이 있을까라며 늘 생각했고, 그 해답을 지난주에 찾게 된 일이 있었다. 바로 며칠 뒤에 옆 집에 불이 나는 무서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화재는 나의 예민한 개코로 인해서 바로 감지되었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바로 관리소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푸르른 나무를 보며 청소하고, 집안 정리를 하던 중, 어디선가 갑자기 매캐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자극했다. "어! 이거 화재 냄새인데? 누가 뭘 태웠나?" 몇 년 전에도 이웃집 할머니가 냄비에 음식을 올려놓고 주방을 비우고 냄비가 다 타버리는 바람에 온 건물과 주변 집들이 희고 검은 연기와 화학 물질이 타고 남은 유독 가스에 노출되어 고생했던 적이 있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여권과 핸드폰, 지갑을 들고 산책 겸 돌아다니다가 카페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들어갔다.
그때 당황스러웠던 점은 주범자인 할머니도 밖에서 자신이 주변 이웃들에게 끼친 피해가 있다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 보였다는 것이다. 뭐가 그리 신나고 들떴는지 밝은 웃음으로 작업자들과 수다를 떠는 모습을 지나치며, 속으로 "지금 웃음이 나오시나..." 라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독하고 역겨운 가스 냄새는 처음이었다.
그날 내가 맡았던 연기 냄새도 누군가 무엇을 태웠거나, 아니면 정말 화재가 났거나 알 수 없었고, 순간 당황스러워서 또 여권과 핸드폰, 충전기, 지갑만 챙겨서 현관문도 열어보고 주변 창문을 두리번대며 상황을 살피는데, 내 눈앞에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냄새의 원인을 찾으며 전화를 하던 중이라서, "저거 불난 거야? 누가 뭐 태우는 거야?"라며 사진을 찍는데 그 순간, 불길이 더 거세지며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불이다! 불이 났다!!" 무서운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오르고 뒷마당의 마른풀들이 무섭게 불어대는 강풍과 함께 검게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마당에서 누가 쓰레기를 태우나 싶어 둘러봤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불이 나면 119인데, 이곳은 뭐지? 중국 전화에 한국 전화, 총 2개의 전화기를 쓰고 있기에 얼른 중국 전화기를 찾기에 급급했다. "어딨 지??" 고민할 새도 없이 내 손은 이미 핸드폰의 관리실 단톡방에 관리자를 찾아 위챗을 보내고 있었다.
불이 났어요!! 얼른 와주세요! 담당자는 바로 답이 왔고, 몇 분 뒤에 방화복을 입은 듯한 멀끔한 젊은 관리자가 다급하게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소화기를 들고 바로 불을 끌 태세로, 어디냐고 묻길래, 우리 집이 아니라 바로 옆집 뒷마당 쪽이라며 빨리 그쪽으로 가라고 얘기해 준 후, 나 역시 아직 갈아입지도 않은 잠옷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뒤따라 나갔다.
생각보다 면적이 컸고, 관리실 직원들과 일꾼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6-7명 정도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소화기를 난사하고, 갑작스러운 흰 연기가 바람과 함께 불어와서 놀래서 뒷걸음질 치며, 내가 본 큰 불을 설명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옆에서 상황을 주시하며 중국말 못 하는 동양인 여자가 핸드폰 번역기를 켜서 보여줄 수 있는 말을 최대한으로 전달했다. 소화기에 이어 물호스가 등장하여 위를 또 뿌리고, 담배꽁초를 버린듯한 위치를 계속 물색하며 사진을 찍고 이들에게도 비상 상황이어 보였다.
이 날 처음으로 나의 예민한 개코에 감사했다. 바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없었다면 불길은 더 번졌을 테고, 집주인조차 자기 집 앞이 불이 나는데도 모르고 있는 상황에, 그 불길이 우리 집까지 넘어와서 어떻게 됐을 수도 있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 직접 화재 상황을 목격한 그 순간의 공포가 아직도 아찔하다. 남편은 한국에 있었고, 나와 아이만 남아있는 상황이라 더욱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은 꺼졌고, 시커멓게 남은 재밭을 보고 있는데, 관리소 담당자는 이제 다음 작업은 공사 인부가 타고난 흔적들을 정리할 거라고 알려주었다. 갑작스러운 불은 담배꽁초를 생각 없이 버린 것이 원인이라고 추측하고, 관리실에게도 이 부분에 대한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 역시 순찰을 더 강화할 것이고, 내게도 빨리 발견해서 신고하고 피드백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답을 했다.
이 모든 게 나의 개코 덕분이다. 물론 큰 재산피해나 인명피해까지 안 가서 너무나도 다행이고, 이 일을 겪은 이상 또 언젠가 다시 불길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때 또 내 개코를 출동시켜야겠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현관 앞에 생존 가방을 챙기고 있다.
다급한 하루를 보낸 그날 저녁, 이제 괜찮겠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수시로 화재가 난 곳에 눈길이 갔다. 저녁을 먹고 치우는데, 또 내 귀에 들린 '파바박'하는 소리가 들려 감각이 예민한 나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뒤를 돌아다보았다. 또 문제의 그 장소다. 이번에는 전기선 사이로 스파크가 보이는 게 아닌가. 잠시 불꽃 스파크가 터지고 꺼지는 걸 목격한 나는 또다시 관리소에 연락을 했다.
하루에 2번이나 사건을 목격하니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관리소에 연락하여 전기 작업자 아저씨들이 복귀하면 어떤 원인이었는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이유는 가로등의 전선이 어떠한 이유로 합선이 되어서 불꽃 스파크를 냈었나 보다. 어두컴컴함 속에서 한 명은 플래시를 비치고, 다른 작업자는 수리 보수를 하는 듯하고 그날 저녁의 해프닝들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이어지는 화재 현장의 잡초 제거 및 전선 쪽에도 복구 작업을 하는 듯해 보였는데, 먼저 관리소 측으로부터 위챗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작업자들이 화재 현장의 잡초를 제거하는 모습, 정리가 끝나서 불룩한 쓰레기 봉지들 사진, 그리고 전선을 아예 떼어버리는 제거 작업들의 현정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안전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추가 정리 중이고, 의사소통이 필요하면 즉시 연락하라고 말이다.
안 그래도 아이와 중국에 단둘이 남아서 걱정될 때가 많은데 나의 예민한 감각들로 인해서 동네 셰퍼드 역할을 하고, 또 발 빠른 관리소의 대처 덕에 큰 일을 당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어디에 신고했냐고 놀래서 물었는데, 나는 태연하게, "음, 한국말로 했지. 위챗이 좋네. 관리소에 얼른 사진 찍어서 보냈지. 아저씨들이 막 달려왔어." 아이는 중국에서 한국말로 신고를 한 사실에 웃기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엄마의 예민감이 때론 도움이 된다며 대단하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 예민함도 쓸만하네.
이틀 뒤, 잡초 제거를 다 하고 새카맣게 타버린 돌만 남은 흔적들이다.
대문사진 : Photo by Mol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