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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May 03. 2024

국제학교에서 사교육을 끊어보았다.

불안은 줄어들고, 아이의 몫이 되는 공부

한국에서는 과목별 학습지와 영어, 논술, 예체능 등 방과 후에 늘 학원 스케줄에 치여사는 삶을 살다가 국제학교에 오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즐겨했던 아이라서 그런지 자라면서도 뼛속까지 문과 성향이 도드라진 반면, 반복해도 늘지 않는 단순 계산과 서술형을 암기하듯이 써 내려가야 하는 수학을 가장 싫어하는 아이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제학교에 오면서 우리의 교육 방식과 사교육은 한국에서의 방향과 다르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막 국제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당장 필요했던 것은 한국과 전혀 다른 커리큘럼으로 수업하는 학교 수업에 적응하는 것이었고, 학교 생활을 하루하루 보내며 '공부'가 학교 생활의 전부가 아닌 교육 방식을 접하며, 나 역시 한국에서의 긴장감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한국 교육 과정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아이와 따로 시간을 빼서 문제집을 풀리겠노라며 당찬 포부를 안고 문제집을 2년 치나 사 왔지만, 막상 학교에서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스포츠와 ASA(After School Activities)까지 마치고 피곤에 쪄들어 돌아오는 아이한테 문제집을 들이대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원래도 잠이 많은 스타일이라서 일찌감치 탑승해야 하는 스쿨버스를 타려면, 8시 30분에서 9시면 곯아떨어지는 아이를 앉혀놓고 내 마음대로 계획표를 아이의 무언의 동의하에 세워서 나의 만족감을 채우고자 국어와 수학 문제집을 풀려도 봤지만, 점점 사이만 나빠질 뿐, 현재 아이의 학교 생활과 정반대의 학습을 병행하는 이 모습이 과연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엄마의 필수 역할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커져오고, 여러 상황으로 내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나는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손을 떼고 진짜 내려놓게 되었다. 새 문제집들은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고, 풀다 만 문제집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어차피 집에 둬봐야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아이는 나와 한국 문제집을 풀지만 않으면 참으로 행복했다. 대신 책을 좋아했으니 한국에서 사 온 종류별 한국책을 읽고 또 읽고 반복했다. 아이의 여가 시간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던 그의 취미인 독서는, 한국책이 귀한 이곳 특성상 같은 책을 정말 무한반복해서 보는 걸로 우리는 만족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점점 영어책에 더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중국이란 곳에서 한국책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어 원서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아이는 스스로 웹사이트를 찾아서 ebook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학교 생활도 재미있게 하고, 학교에서 내주는 간단한 숙제들과 관련 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상담을 가보면 내향적인 적극성을 보이며 국제학교에서의 교육 방식에 제대로 흡수되고 있었다. 학교에서 리서치와 패드가 기본인 생활에 몇 년 접어들자, 어느새 아이의 아이패드의 언어 설정은 영어가 되어있었고, 생각하는 방식과 검색하는 루트조차 우리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어릴 때는 감성적이 뛰어났던 반면 점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이 도드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암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한국에서의 주입식 공부를 많이 힘들어했고, 나는 그 모습조차 답답해하며 아이를 쪼이기만 했는데, 이곳의 교육방식은 내가 특별히 아이한테 해주는 게 없었지만 아이 스스로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이가 분명하고, 지켜야 할 절대 규칙이 있으며, 자육로움 속에 엄한 모습이 공존해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아이는 한국에서의 학업 스트레스가 점점 사라지고, 어린 시절이라 스펀지처럼 환경을 빨아들이며 국제학교에서 배운 방식대로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첫 담임으로 만난 선생님을 통해서 쉬는 시간에 영어 뉴스를 보는 게 습관이 되자, 지금도 틈만 나면 영어 뉴스와 스포츠 소식을 보는 게 아이의 일상이 되었고, 이외에도 집에 와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의 관심사를 뻗어나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식 탐구를 해나갔다. 나도 중국어 학원을 다니다가 관둔 경력이 있는 엄마였어서 아이한테 두 가지 공부를 강요할 수도 없었고, 억지로 시킨다고 하지 않는다는 자기 생각이 강한 아이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해외 국제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할 걱정을 동시에 해야 하니, 한국 공부를 마냥 손 놓고만은 있을 수 없는 현실이긴 하다. 또,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개인 과외를 하기도 하고, 또 입시가 코앞인 학생들은 특례를 위해서 주말도 마다하고 학원을 많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2가지 공부를 동시에 해내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알아보지도, 방문해보지도 않은 중국에서의 사교육 시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주재원 와이프 초기 시절 엄마들 모임을 통해서 옆에서 주워들은 정보가 다일뿐, 그것도 내 일이 아니니 그 자리에서 듣고 한 귀로 흘러나가 버렸다.


오히려 아이가 궁금해하며, "엄마, 여기가 뭐야? 애들이 뭐 여기를 많이 다니는지, 다들 숙제 이야기하면서 늦게 끝나고 그런 얘기하더라."라며 집에 와서 해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곳에서조차 학원의 인기는 시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국제학교 학비에 우리가 내야 할 상당 금액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미 고가의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상 추가로 비용을 들여 기타 사교육을 시킬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렇게 신줏단지 모시듯 과목별로 구입해 온 문제집들을 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공부를 해야 할 목표가 우리에게 뚜렷하게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주재원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해외생활을 한 아이들의 '특례'는 더군다나 먼 나라이야기였고, 특례라는 것도 처음 들어보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귀국 후 학교 상담을 하던 중 교육청과의 상담 전화를 통해서 우리 아이는 어차피 특례 케이스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에 마음을 비우기도 했고, 해외 생활의 마음고생들 속에서 나 살고자, 아이에 대해서 아무런 욕심이 없이 아이 자체를 바라보니, 그렇게 답답했던 아이의 모습 대신 이곳에서 사교육 하나 없이 학교 생활을 잘 따라가는 아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되었다.


내가 여태껏 해왔던 엄마의 역할 중에서 '공부시키기'와 '숙제 봐주기'는 점점 주어진 일에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동적인 아이만 만들 뿐, '공부'라는 게 자신의 것임을 알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일을 방해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집중하고, 부모를 따라서 갑자기 오게 된 아이의 입장과 아이의 판단을 믿고 존중해주고 싶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이니만큼 중국인 튜터에게 초기에 중국어 수업을 조금 하다가 아이가 중국어는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도 학교 생활에 따라갈 정도만 하다가 그만두었기에 주재원으로 머무는 기간 내내 아이는 정말 학교 생활에만 충실하고, 중학생이 되어도 9시에 잠을 자는 새 나라의 어린이 생활을 계속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원을 뺑뺑이 돌던 아이는 중국에 오게 되면서 초등학생보다 더한 느슨한 학교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좋은 기회를 많이 얻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학년이 높아지고, 머리가 커지자 아들은 더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걱정하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교육을 안 했기에 학교 수업에 더 집중을 하고, 자신의 노력에 비해서 성적이 안 나오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늘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질문을 하고 자신의 성적에 대해서 굉장히 진심이다. 가장 취약한 과목인 수학 역시 믿을 곳이라고는 학교 선생님뿐이라서, 아이는 유독 선생님 근처를 맴돌며 수시로 선생님을 찾고 문제 푸는 방법을 묻는다는 이야기를 상담을 통해서 들었다.


어느 계기 이후로 '공부해라, 숙제해라' 소리를 안 듣고, 엄마가 자신의 학업을 챙겨주기는커녕 성적표도 보는 둥 마는 둥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자, 자신이 더 애가 닳아서 어필하기 시작했다. 시험 일정, 성적, 몇 년 동안 성적표의 퍼센트 동향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지금은 자신이 그래도 '대학'이란 곳에 가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자신의 선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경쟁적으로 살지 않아서 그런지 크게 어디 무리에 끼어 놀아야 한다는 것도 없고, 그냥 새로 친구들이 오면 적당한 거리에서 도와주는 조용하면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남자애들은 철들면 알아서 공부를 한다는 게 우리 집에서 현실이 되었다. 아직도 물론 밤새 노래를 불러대는 통에 귀가 따갑고, 얼굴 가득 장난기에 까불까불 대는 철없는 남자아이이다.


그랬다. 학원을 보내지 않았을 때 불안한 건 엄마인 나 자신이었고,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내 각본에 아이를 끼워 맞췄을 뿐, 주어진 환경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아이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또 다른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어떠한 인생을 살든지 부모로서 최선의 길을 마련하며 응원을 해주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고 싶다. 물론 지금처럼 정보는 없지만, 천천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방향을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최근에 아이는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 그래도 수학은 좀 시키지 그랬어."라며 수도 없이 시키려고 노력했던 수학 사교육에 대한 후회가 본인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며, 이제 아이가 스스로 원하고 필요성을 찾으니 이럴 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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