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llie 몰리 Apr 26. 2024

국제학교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

애쓰지 않고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우다.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아이가 필요 이상으로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어떤 무리에 끼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아도 되고, 친구를 사귀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또 학업적인 부분에서도 앞서나간 과도한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은 나의 경험과 학교 생활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다.


국제학교는 이름 그대로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문화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한다. 부모의 국적이 서로 다른 친구들도 많고, 입양이 된 친구들도 있다. 국제학교 생활을 오래 해도 여전히 한국 친구들과 노는 게 편한 아이들은 한국 친구들끼리 노는 경향이 많고, 한국 친구들과는 또 다른 외국 친구들과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국적에 상관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한국 친구들이 한국인끼리 모여서 노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같은 국적의 머리수가 많으면 언어의 편리성으로 인해서 같은 나라 친구들끼리 주로 어울리는 친구들도 많다.  그룹을 지어 노는 친구들, 또 소규모로 노는 친구들 등 다양성 속에서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이 존중된다는 느낌도 받았고, 한국에서는 단점으로 내비쳐졌던 성향이 이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거나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모두 다 같은 나이대가 한 학년을 구성했다면, 이곳 국제학교의 사정은 다르다. 9월 학기에 학년을 시작하는 국제학교는, 같은 학년에 2개의 한국 나이대의 아이들이 섞여 있다. 보통은 나이에 상관없이 학년이 같으면 대부분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보다 한 학년 위지만, 한국 나이로는 동갑이라 아이와는 친구로 지내는 반면, 같은 학년의 1살 어린 동생은 자기 친구를 형이라고 부르는 우스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의 나이는 이곳에서 쓰이지 않지만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내향적인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은 역시 내향적 성향이다. 우리 가족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지루한 틀에 박힌 생활은 싫어해서, 하루에 한 번은 집 밖에 산책이라도 나가는 편이라 조용한 스타일은 또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도 친구에게 먼저 잘 다가가지는 않지만, 자기와 결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활달하게 어울리고, 명랑하다.


한국에서는 소위 입김이 세거나 행동대장을 하는 친구들 위주로 그룹이 생겼고, 덩치가 작거나 목소리가 작은 친구들은 자기 의견을 제시했을 때 무시받거나 끼워주지 않는 경우가 내 눈에도 보일 때가 많아서, 아이가 늘 그 주위를 배회하는 느낌일 때가 많았다. 눈치가 빠르고 약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분위기에 속에서 철없이 해맑은 아이는 자기의 의견이 늘 묵살되거나 배제되어도, 뭔가 뭔지도 모르고 자기의 친구들이라고 챙기는 모습에 엄마로서는 속상할 때가 많았다.


친한 엄마들과 정보가 많은 엄마들 위주로 모이게 되고, 학원을 보내고, 좀 더 잘난 친구들의 무리에 자신의 아이를 끼우고 싶어 하는 모습, 엄마들 사이에서 박쥐처럼 이간질하는 엄마들, 또 그러한 그룹에 끼기 위해서 지난날의 추억은 금세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일도 겪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점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이 국제학교에서는 장점으로 다가왔던 점이, 굳이 한국 친구들과의 관계를 위해서 엄마인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없었고, 점점 아이와 나를 분리하여 아이는 자신 스스로 자신의 친구 관계를 만들어가고 나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모범생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또래보다 어린듯한 얼굴과 체구지만, 또 낭랑하게 할 말을 하는 모습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쟤 뭐래, 왜 저래."라는 느낌으로 유치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서 늘 내심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했었고, 늘 주변엔 아웃사이더와 같은 아이를 챙겨주는 조용한 친구 1~2명이 있었다. 그렇게 늘 자신의 밝은 색깔을 유지했지만, 무리 속에서 그림자처럼 가려져있던 아들의 모습은 중국에 오고 난 뒤 국제학교 생활을 하며 많이 변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영어 의사소통은 가능했던 아이는 오히려 국제학교에서의 친구들 관계를 조금 더 편해했고,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첫날부터 동양인, 백인, 흑인 할 거 없이 외국인 친구들과 말도 한 두 마디씩 해보더니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잠깐의 한 두 마디였겠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다.


한 반의 정원이 한국 보다 적기도 했고, 그 안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원어민 포함), 영어가 제2외국어인 친구들, 영어가 서투른 친구들이 다 섞여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선입견 없이 자신이 맞는 친구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를 사귀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또 국적이 서로 다르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많고, 순수하고 따뜻한 친구들도 많아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무난하게 국제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적당한 바운더리 안에서 말하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당시 아들의 때 묻지 않은 밝은 성격은 국제학교의 적응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꼭 한국 친구들끼리만 놀아야 한다는 편견이 없기도 했고, 언어만 다를 뿐 똑같은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같이 하는 재미있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일뿐이었다. 아이 역시 남의 사생활에 관심 없는 나를 닮아서 자기 갈 길을 잘 헤쳐나가는 편이었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지식 탐구와 토론을 좋아했고, 언어를 좋아해서 국제 학교 생활에도 곧잘 적응했고, 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한국보다 늘어나서 노느라 바쁜 날이 많았고,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가진 아이의 인생은 이때를 터닝포인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제학교의 분위기는 아들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도와주었다.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질문하고, 쑥스럼은 내재되어 있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많아서 해보고 싶은 활동도 참 다양했다. 아는 게 있으면 대답도 잘하는 편이어서, 숨겨왔던 내면의 활달함으로 아들은 점점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엄격한 룰 안에서 아이들에게도 또 선생님들끼리도 화기애애하고 오픈된 마인드로 인해 아들은 한 때 꿈이 "국제학교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이다운 발상인, 쉬는 시간(break time)마다 쿠키를 나누어 먹는 선생님들의 친밀감을 보고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놀이터에서 잠깐 놀다가 학원을 가고, 집에 와서는 숙제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그날 할당량의 문제집을 푸는 등 여느 한국 학생의 일상을 보내다가, 중국에 온 후로는 학교 수업 외에, 중국어와 처음 배우는 악기만 사교육을 잠깐 하게 되었지만, 이것도 잠시, 코로나가 터지면서는 그나마 근근이 이어가던 사교육마저 다 끊고 학교 생활만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는 건 시간이라, 한국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친구 집에서 놀고 오는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슬립오버(Sleep over)를 참 많이 했다. 생일파티는 물론이고, 방학 전에 학교가 끝나면 또 파티, 핼러윈, 친구 동생 생일 파티에도 껴서 노는 등 내향적이라 먼저 초대는 잘 못했지만 초대받은 모임들은 열심히 참여했다.


남자친구들의 주된 관심사는 역시 국적에 상관없이 게임이다. 처음 국제학교에 온 친구들은 한국에서 하던 습관이 이어져서 이곳에서조차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게임을 삼삼오오 모여서 하고, 수업 시간에도 끊기 힘든 경우도 종종 본다. 이는 외국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적이고 겁 많은 이 아이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켜고 게임을 한다는 건 이 아이의 사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시간들보다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운동을 못하면 그저 그런 비슷한 친구들과 자기들끼리만의 공놀이를 하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게 더 재미있는 아이였다. 운동화가 6개월이면 밑창이 부러지거나 해져서 새로 구매를 해야 했다. 뭘 하고 다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러 국적의 부모들의 초대에 응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려오는 등의 소통을 상대 부모와 하며, 그들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아이를 통해서 친구들과의 놀이 방식과 대화 내용을 엿들으며 나 역시 아이 이상으로 많이 배우고, 느끼고, 닮고 싶은 점도 많았고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통한 또 다른 새로운 사회생활을 통해서 내가 그들에게 받은 것도 많고, 좀 더 넓게 사람들을 대하는 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외국 아이들 특성상 학업에 지친 친구들이 많지 않고, 학교 숙제 이외에(숙제도 거의 없었던) 거의 친구들과 놀거나 개인 시간을 많이 보내며 자라서 그런지, 머리로 득과 실을 따지는 계산이 필요 없는 순수하고 편견이 없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노는 시간. 정말 많고 잘 논다. 외국 친구들의 집은 주택인 경우가 많아서 놀거리가 참 풍부하고 부모님이 참여해서 놀아주는 경우도 많다. 별거 아닌 일상으로도 몇 시간을 놀고 온다. 아이가 친구 집에 가면 늘 단지를 돌며 노는데, 박스에 너프건 총알을 가득 담아서 동네 탐험도 하고, 그 친구의 동생, 또 그 동네 친구들까지 모여서 영화 보기, 보드게임, 스포츠, 자전거, 드론, 요리, 외식 등 아쉬울 틈 없이 노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늘 "그래, 이게 진짜 공부지. 국제학교에 왔으면 이 정도는 놀고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에서는 걱정했던 사회성 부분에 대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엄마들 역시 비교는 당연하고 아이를 소유하지 않으려는 마음, 아이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아이의 양육은 하되, 아이의 학교 생활의 내면까지 간섭하지는 않았다. 다른 집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없다는 점도 나랑 비슷해서, 언어 소통의 불통을 포함해서 적당한 거리가 편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스케줄을 짠 후, 부부는 나가서 시간을 즐기고, 파티에 참여하며 건강한 부부 생활을 하는 모습에서도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건강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아이의 나이에 상관없이 훌쩍 큰 아들과 딸에게도 사랑 표현과 감정 표현을 많이 하기도 하고, 늘 식탁에서도 끊이지 않는 대화(물론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는 나로 하여금 내가 살아온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들이 되었다.


국제학교 특성상, 찐부자, 명예가 있는 직업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보면 돈자랑을 하거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있는 척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소하고 순수하고 마음이 이쁜 친구들이나 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의 친구 중의 하나는 아빠가 미술관과 그 주변 도로까지 소유한 중국 부잣집 아들이다. 아들과 위챗으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너 참 미술 좋아하면, 우리 아빠 미술관에 놀러 올래?"라고 초대의 의향을 밝혔고, "응, 부모님한테 물어볼게. 날짜가 정해진 거야?" "아니, 이건 VIP 티켓이라서 날짜는 없어. 대신 영어 가이드 있는 날짜는 알아봐 줄게."라며 초대를 해주기도 하는데,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거 보면 그 -척이라는 게 없다. 그냥 찾아가기 쉽게 위치와 사진 몇 장을 줄 뿐이다.


매일 아들이 점심에 함께 밥을 먹는 고정 멤버들 중에서도 나라의 대표와 관련된 집안의 아이, 심지어 아빠가 학교의 가장 중책을 맡는 아이 역시도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다. 같이 좋아하는 학교 팀스포츠에 들어가고, 또 원하는 게 다르면 각자의 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아이가 축구 양말을 구매하는 걸 몰라서 잊어버리면, 자신은 오늘 아파서 뛸 수 없다고 자신의 양말을 선뜻 빌려주고, 그냥 좋아하는 취향에 맞춰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현재 이 나이가 겪어야 할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멋진 친구들이다. 이곳에서는 내 색깔을 숨기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학창 시절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런 환상적인 친구들만 있는 건 아니다. 엄마들 사이에도, 아이들 사이에서도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고 보이고 우리도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패를 통해서 삶의 새로운 길도 개척할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또 가려야 할 친구들을 몸소 배우며 진짜 자신과 맞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에 있어서는 학업적인 부분보다 내게는 더 중요해 보였다.


물론, 해외생활을 하면 또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만나고 친해질 때쯤이면 헤어져야 하는 이별을 수도 없이 겪어서 늘 마음 한편에 '아쉬움, 이별'이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점점 한국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는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다 보니 소원해지기도 하고, 돌아가게 될 경우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초, 중, 고까지 이어지는 진짜 오래된 친구들 틈에 끼기 힘들 수도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게 당연한 인생사라서 우리가 중국에서 있었던 동안에는 한국에서 겪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많이 경험하고 돌아감에 있어서 좋은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한다. 또 잦은 환경 변화 탓에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힘든 시절을 겪고 숱한 경험을 했듯이, 아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겪기도 하면서, 또 평생 문득 기억될 만한 추억을 만들면서 많아 단단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고 독립적인 아이로 변해갔다.


사진 출처 :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