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교육 문화 충격, 받아들이기 나름?
중국에서 처음 사교육을 접게 되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학원을 다녔지만, 중국에서는 한국 대비 높은 가격에 한정된 환경이라 원래도 사교육을 시킬 마음이 없었으나, 그래도 중국에 왔으니 중국어와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음악을 좋아했던 아이도 흔쾌히 악기 수업에 동의했다.
이제부터 문제는 레슨이 가능한 선생님을 구하는 엄마의 몫, 즉 가장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인터넷과 지인들의 귀동냥을 통해서 몇몇 선생님을 추천받았지만, 생각보다 선생님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동네를 돌기에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없었고, 한국 선생님, 중국 선생님, 또는 한국인이 가능한 조선족 선생님이나 한족선생님이 전부였다.
학교에서도 개인 레슨을 할 수는 있었지만, 짧은 시간의 잠깐 레슨을 위해서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충분한 시간과 효율성을 위해서는 집에서 하는 개인레슨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도저도 고민할 것도 없이 누군가가 추천해 주고, 이 시간이 빈다고 하면 그 시간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은 악기를 관두었지만 몇 년간 여러 레슨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국적별로 다 만나보았기에 나도 내 나름대로 스토리와 경험이 쌓였는데, 말이 통하는 한국 선생님을 찾기란 코로나 시기에 가뭄에 콩 나듯이 힘들었고, 코로나 시기에 중국의 통제로 인해서, 그 단지를 들어갈 수 없어서 레슨이 안 되거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나가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며 선생님의 집 컨디션에 대해서 묻는 이야기가 불편하다는 분도 만나보았다. 참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해외살이를 하다 보면 그냥 뭔가 사정이 있겠지라고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여러 상황으로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게 되자, 아이의 수업은 쉴 새 없이 흔들렸고, 선생님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서 책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또 새로운 책을 끼웠다가, 그 책은 불필요하다고 빠졌다가,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자기가 악착같이 악기에 대한 끈기와 관심이 없으면 괜한 돈낭비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아이한테는 추억이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다.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포스가 강렬했다. 가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과 누군가 우리 집으로 와서 아이를 교육해 줄 수 있다는 거에도 감사했다. 하지만, 강렬한 아우라와 경직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로 인한 문화 충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몇 번을 지켜보다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중국에서의 사교육을 생각하면 가장 떠오르는 수업이다. 중국 국제학교를 준비를 한다며, 짧게 한국에서 레슨을 받아본 아이는 어느 정도 기본기는 가지고 있었으나, 보는 선생님마다 약간의 악기를 잡는 방식과 어디에 강약을 줘야 하는지,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는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선생님은 아이를 보더니, 잘 알고는 있지만, 몇 가지 지켜야 할 상황과 아이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숙제가 없었다. 그냥 레슨 후에 연습을 하지 말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자신이 가르쳐준 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이상했다. 한국에서는 동그라미 표에 연습을 시켜서, 많이 연주하는 만큼 실력이 늘고 실수를 다잡아간다고 배웠고, 열심히 영상을 찍어서 교정도 해주는 등 열성이었는데, 정반대였으니. 아이는 뭐 숙제할 필요가 없으니 좋아하긴 했지만 수업이 몇 차례 진행되며, 어린아이의 입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생님이 뭔가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리를 다른 의자 위에 올리고 엉덩이를 쭉 빼고 누워서 핸드폰을 많이 한다는 둥, 자꾸 짜증을 내며, 세게 잡는다는 등 한국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캐릭터의 선생님이었지만, 나 역시 아이와 선생님의 일정 기간의 적응기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상은 오래 빗나가지 못하고, 나 역시 신뢰감이 떨어지고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닥치게 되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며, 늘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잠깐 그날의 수업에 대해서 짧은 브리핑을 해주곤 하셨다. 물론, 분명 한국말이었지만 가끔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말이 섞여 있었지만 대충 느낌으로 이해했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손가락이 아직 힘이 없는지 악기를 잘 잡지 못해서, 본인이 손가락을 꽉 잡고, 그곳에 힘을 주게 꾹 누르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내 생애 처음 듣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아이 손가락이 X신이에요. 눌러도 자꾸 앞으로 오고 손이 펴지고." 당황한 기색을 감출새도 없이, "네???" 하고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그 앞에서, "지금 욕하신 거예요?"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이게 그분 입장에서는 욕이 아닐 수도 있는, 무슨 방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그다음에 몇 번 더 수업을 했으나, 계속되는 강한 단어와 센 억양은 음악 수업을 한다고 하기에 나는 거부감이 계속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가지 내가 들은 단어는 쉽게 한국에서 듣지 못하던 단어들로 인해서, 무섭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불만족스러웠던 수업과 나와는 맞지 않는 가치관의 코드로 인해서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고, 좋게 마무리하고 잠시잠깐의 '최고로 충격적인 사교육 현장'으로 기억되는 순간으로 장식되었다. 그렇다고 수업을 그만두는 사유를 정확히 말할 수도 없는 이 불편한 현실이, 해외에서 점점 사교육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원래도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나의 생각이 점점 더 굳어지게 되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중요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 가치관을 두는지는 가정마다 다른 것 같다. 좀 거칠지만 충분한 메리트와 재능을 크게 보고, 그게 부모와 아이의 가치관과 잘 맞으면 해외에서 구하기 힘든 사교육 선생님을 대체하기에 충분하기도 했겠지만, 나는 아무리 가격이 좋고, 선생님이 없다고 해도 계속 머릿속에 떠도는 그 한마디가 앞으로 또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는 당시의 상황이 웃프다.
대문사진 출처 : Unsplash의 Tim Mossho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