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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Dec 17. 2024

미국 행정,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험난한 소셜 시큐리티카드 발급 과정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밤에 자꾸 눈이 떠졌고, 그때도 기분은 얼떨떨했다. 아직 직접적으로 미국을 부딪쳐보지 않아서 그냥 한국에 있는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TV를 트니 미국 방송이 나오고, 아날로그틱한 전등스위치, 카펫 바닥, 배수구 없는 화장실,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텅 빈 거리 등에서 조금씩 이곳이 미국이구나를 실감했다. 장거리 비행으로 남편과 나는 고질적인 일자목과 디스크 증상이 와서 매일같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에 탈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호텔 조식에는 다행히 밥, 된장국, 김이 있어서 식빵, 베이글, 와플, 토스트, 각종 머핀들과 스크램블 에그 등의 아메리칸 스타일 조식과 더불어 배불리 먹었지만 호텔 생활이 오래될수록 같은 메뉴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 Mollie


일단 호텔 예약은 1주일을 했고, 상황에 따라서 연장을 하기로 했다. 호텔에 머물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을 최대한 끝마쳐야 해서 2일 차부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정 절차들을 해결해야 해다. 다행히 핸드폰 유심은 2주 정도 사용할 유심을 해와서 당분간 임시번호로 핸드폰 사용에는 무리가 없었고, 가장 급한 건 신분 해결, 은행 계좌, 자동차 구입, 집 계약 등이었다. 렌터카도 1주일 단위로 연장하며 차 없이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이 광활한 대륙에서 3주간은 종일 차만 타고 멀미가 날 정도로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렌터카도 우리가 예약한 차량과 늘 다른 차였고, 미국인들 체형에 맞는 차가 하필 우리에게 오게 되었고 바꿀 시간적 여력이 없어서 남편은 그 뻑뻑한 차를 끌고 운전하느라 고생을 했다. 허기가져도 밥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조식 후에는 늘 호텔 커피와 빵을 챙겨나와서 차에서 우걱우걱 먹고 다니거나 늘 눈에보이는 햄버거를 먹었다.

© J 제이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Office 방문하기

신분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소셜 시큐리티 카드였다. 영주권 신청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소셜 시큐리티카드가 발급이 되게 신청을 했고, 랜딩과 동시에 영주권과 이 카드 발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2일 차에 마음이 급해서 진행상태를 확인하러 다짜고짜 호텔 주변에 위치한 Social Secutiry Administration, SSA 사무실을 찾아갔다. 번호표 발급을 위해 화면 터치를 하고, 대기 의자에 앉아있으면 저 멀리 직원이 큰 소리로 번호를 부른다. 혹여나 번호를 못 들을까 봐 긴장하고, 절차를 알 수 없는 맨땅에 헤딩이라, 무턱대고 부딪치는 용감함이 통할까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이런 업무로 영어를 해보지 않아서 얼굴 근육이 다 경직되었다.

© Mollie


원래 우리의 목적은 카드 발급이 진행되는 동안 은행 계좌를 오픈할 수 있도록 Social Security Number를 받거나, 임시카드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었고, 일반적인 절차를 알고 싶었다. 처음 만난 직원은 일반적으로 4주 정도 걸리고, 그 안에 카드가 도착하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고, 우리가 너무 빨리 왔으나 카드는 진행 중이고, 신청한 주소로 간다는 답변뿐이었다.


은행 계좌 오픈을 위해서 여러 은행을 무작위로 다 가보았지만, 은행마다 다른 기준 잣대와 심지어 같은 은행이어도 지점마다 필요 서류가 다른 것에 상당히 당황하며, 일단 소셜 시큐리티 카드 발급 진행이 제대로 되는 일이 급선무였다. 거기에 영주권은 자동적으로 신청이 되었다지만, 그것 또한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를 끼고 온 게 아니니, 집을 구하려면, 은행 계좌가 있어야 하고, 반대로 계좌를 만들려면 주소가 있어야 하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그냥 순환 구조의 한 곳에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냥 지인을 통해서 우편이 도착하는지 기다릴 뿐이었다.



몇 번 미국 공공기관들을 방문하며 지점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행정을 겪고, 한 곳만 바라보지 않고 주변에 갈 수 있는 몇 군데의 SSA 오피스를 방문했다. 그러다가 지인 주소의 관할 지역 SSA에서 우리 케이스를 처리하니 그쪽으로 가보라고 알려줘서 가보았는데 그곳에서조차 각각 다른 답변들을 듣게 되었다. 현재 진행 중이니 2주 안에 도착할 거라고 기다리라고 했다가, 어디서는 임시 번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다시 찾아가니, 이번에는 또 다른 직원이 갑자기 Pending 되어 있다고 이유는 모른다고 하고, 답답함을 풀지 못해 속 터지는 상황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은행 계좌도 못 열어, 집을 봐도 집 계약도 못해, 우리의 일은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매일같이 에너지와 기름만 소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주일 뒤에 지인으로부터 아들의 소셜 시큐리티 카드가 도착했다고 1-2일 뒤에 나와 남편 거도 올 것 같다고 원래 각자 따로 온다며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1주일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다. 미국은 아들만 웰컴인가보다.


2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 계속 쌓이는 호텔 비용, 렌터카 비용이 이미 몇 백만 원을 넘어가고, 다시 관할 지역의 SSA 오피스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언제 미국에 들어왔고, 계속 업데이트를 했으나 이야기가 틀리고, 아들의 카드는 받았는데 어른들의 카드가 없다. 현재 어떤 상태인가?


상당히 차갑고, 웃음조차 없는 마른나무토막 같은 풍채 좋은 백인 여자 직원은

"너희들의 정보는 없다. 나는 모르겠고. 30일 뒤에도 안 오면 다시 방문해서 재신청해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리는 소리에 정이 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우리의 이전 상황을 이야기해도, 약간 "내가 어쩌라고?"의 뉘앙스인 표정과 말투로 "I don't know." 만 반복할 뿐. 그냥 서로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2주간 우리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었고, 4주를 기다릴 자신이 없는 우리는 중복 신청이 되든 말든, 다시 SSN 온라인 신청 링크를 검색 끝에 찾아서 재신청을 했고, 기간이 만료된 가는 선불 유심도 아슬아슬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통신사 가입을 위해서도 SSN은 필수였다. 온라인으로 카드를 신청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증빙 서류를 오피스에 제출해야 해서 여권을 가지고 또 SSA 오피스를 방문하고, 우리가 느끼기에는 의미 없는 방문을 무한정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이때는 하루에 몇 개의 기관들을, 심지어 모여있지도 않아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곳을 계속 방문하며 집투어를 병행하고 있을 때였다.



이번 담당자는 나이스하고 쿨한 젊은 흑인 청년이다. 이전에 신청했는지 여부를 묻길래, 우리의 상황을 더듬더듬 이야기하니 깐깐하지 않게 서류를 접수했고, 카드는 2주 안에 배송이 될 거고, 계좌 오픈을 위해서 임시 번호를 미리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흔쾌히, "2일 뒤에 번호를 확인하러 오라."라고 답변을 들었다.

© J 제이


과연 우리는 2일 뒤에 임시 번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당연히 아니오다.


이번에는 라라랜드의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노래를 듣는 젊은 남미 계열 여자 직원에게 호출되었다. 2일 전에 받은 영수증 서류를 가지고 기분 좋게 임시 번호를 당당히 요청했는데, 또 황당하다.

"아, 그건 안 돼 줄 수 없어. 나도 예전에는 줬는데, Federl 어쩌고 이야기하며 이제는 줄 수 없다고. 너희 번호는 나왔는데 알려 줄 수는 없어."


이제 질세라, 너희 직원이 된다고 해서 온 거고, 우리의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니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럼 그 직원에게 시도해 보라는 말뿐. 우리가 그 직원의 스케줄을 아는 것도 아니고, 같은 곳에서 이렇게 막무가내 행정이 이뤄지는 점에서 많이 지쳐갔다. 미국 랜딩 3주 차에 우리가 한건 점점 늘어가는 호텔비, 렌트비를 쓴 것 밖에 없다.



몇 번의 SSA 방문인가. 이 정도면 일처리를 몇 건도 더 했을 시간인데, 점점 미국 생활의 만만치 않음을 느꼈고 한국 생각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며 문을 나오며 남편에게,

분명 지난번에 저 창구에 직원이 된다고 했잖아. 그렇지? 어?? 그 직원 출근했다. 잠시만!

나는 한국인 아줌마의 근성으로 그 흑인 청년이 있는 창구에서 기웃거리며 앞사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뭐라도 하소연이라도 해야겠고, 반갑기도 하고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앞 민원인의 일처리가 끝나자, 번개처럼 직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나 기억하지? 2일 뒤에 임시 번호를 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다른 직원이 안 된대. 혹시 줄 수 있니?"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받은 영수증을 들이밀었다.


그 사람은 당황했다가 사정을 알고 우리의 요구를 들어준다며 컴퓨터로 정보를 조회하더니 그 영수증 위에 귀여운 글씨로 나와 남편의 소셜 번호를 써주었다.

"오! 너무너무 고마워. 정말 친절해."


그때의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무조건 안 된다, 돌아가라, 기다려라만 듣다가 우리의 실수도 아니고 본인들의 알 수 없는 시스템 문제로 우리의 신청서가 사라졌고, 그 일로 우리의 손해는 점점 커져갔기에 당시에는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 따윈 없었다.

임시번호가 쓰인 서류는 우리에게 거의 신줏단지나 다름없었다.


본인은 못하겠다고, 절대 안 통할 거라던 남편과 그 창구를 향해 직진 돌격하는 엄마의 팔을 잡으며 말리던 아들도 깜짝 놀라며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대단하다, 그걸 해주네, 그게 통해?"


정말 알면 알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신기한 나라다. 그렇게 플라스틱도 아닌 이 종이쪽지 소셜 시큐리티 카드를 우여곡절 끝에 발급받게 되었다.

© J 제이

대문사진 출처 : Mol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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