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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할 말 많은 미국 첫 집 렌트하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기분

by Mollie 몰리 Jan 08. 2025

하루에 20만 원이 넘는 호텔비 감당이 힘들어지고, 아이의 학교 시작인 Back to School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집 계약을 미룰 수는 없었다. 남은 집들 중 그나마 현실적으로 부담이 덜 되고, 빨리 계약할 수 있는 집을 선택했다. 처음에 보류했던 집에 계약 의사를 밝힌 후라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계약 과정에서 AI 시대에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는 게 아니라, 과거로 돌아간 듯한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 한국에서 없던 문화라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미국에서 집을 렌트하면 바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전자 서명 후 드디어 계약서(Lease agreement)가 생긴다.

-은행에서 캐쉬어 체크 (Cashier's Check) 끊기 

-집 보험을 든다.(집주인이 요청함)

-전기, 가스를 이사 날짜에 맞추어 이름 등록 후 개통을 예약한다.

-동네 담당 교육청(School District)에 드디어 집계약서로 공립학교 등록이 가능하다.


리얼터를 통해 도큐먼트라는 파일 이름으로 온라인 계약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미국에서의 많은 업무들은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만나는 게 아니니 오히려 편리할 수 있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는 순간 한국에서의 기본적으로 집에 대한 설명과 제2조, 제3조 등 어느 계약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과 약간의 지켜져야 할 특약사항이 아닌, 리스트로 보이는 문장들이 가득한 몇 장의 문서였다. 미국은 정해진 계약서 양식이 없어서 집주인 마음대로 계약서를 쓸 수 있다는 게 리얼터의 말이었다. 온전히 집주인이 갑인 느낌의 주의사항 등이 포함된 40여 개의 조항들이 쓰여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계약 내용과 알 수 없는 부동산 용어들은 번역을 해도 번역기조차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인식할 수 없었기에 한 줄 한 줄 해석하는 게 해독 수준이었다.


연체료도 있어서 임대료가 최대 10일까지 입금되지 않으면, 임차인은 $50의 연체료를 지불하기로 동의한다 외에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많이 쓰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상식적인 내용들까지 구체적으로 깐깐하게 적혀있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Cleaning Fee라는 명목으로 현재 집안에 깔린 카펫을 청소하는 비용 $300의 선결제가 있었고, 이번에 내지 않아도 집을 나올 때 어차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비용도 집마다 달라서 집주인이 정하는 가격이 있었다. 카펫을 새로 깔거나 공사 후에는 Professionally cleaned를 해주는 집주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카펫 청소비를 청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청소 후에 알게 된 점은 전문 업체를 사용한 게 아닌, 가족이 카펫 전용 청소기도 아닌 일반 청소기로 밀고 그 비용을 요구했던 것. 계약한다고 말을 한 상태에서 이게 맞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도어록이 아닌 열쇠 꾸러미 중 열쇠 1개는 집주인이 보관을 한다는 점도 이상했고, 항목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말이 되는 소리야?"라며 집주인의 시간에 맞추어 계약서를 밤중에 받은 우리는 밤 11시가 넘도록 계약 내용을 확인하며 사인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머리가 아팠다. 집에 들어가고 1주일 정도는 집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주인에게 주고, 그때 발견한 하자는 집주인이 처리해 주지만, 살면서 집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비는 향후에는 회당 $100씩 우리가 결제를 해야 하는 것도, 이걸 계약서에 넣는 것도 통상적이라고 리얼터에게 들은 이상 믿고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가장 어이없다고 느끼는 건, 식기세척기 문제이다. 가격에 집을 맞추다 보니 전자 제품이 노후된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전자레인지는 시간 타이머가 보이는 모니터의 액정이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냥 쓰라는 주인의 말에 알겠다고 했고, 다른 제품들이야 그런대로 쓸만하지만 식기세척기는 얼마나 오래 사용을 안 했는지 그릇 거치대가 부식되어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사용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서 슬쩍 교체를 문의했는데, 리얼터의 제안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고 못 미덥게 만들었다. 마치 주인이 선심 써주듯, 렌트비를 올리면 식기세척기를 새로 교체해 주고, 그러면 우리도 새 식기세척기를 쓰고 좋지 않냐는 우리 입장에서 다소 의아한 제안에 잠깐 머리가 하얘졌다가 렌트 가격을 올리고 싶지는 않다고 거절했다. 렌트 가격을 올리는 만큼 그 돈으로 식기 세척기를 구매해서 교체한다는 뜻이고, 결국 우리는 1년간 새 식기세척기를 집주인에게 선물하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 희한한 제안. 이런 저러한 이유로 계약서 내용을 수정하고 내용이 타당한 건지 물으며 파일을 주고받으며 키를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받게 되었다. 



집 키를 받고 계약을 마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매달 우리 돈으로 집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불편했지만, 가장 난감했던 건 Cashier's Check를 은행에 가서 끊어오는 일이었다. 은행계좌에 바로 실시간 이체하는 한국 시스템과 달리, 현금을 들고 직접 은행에 방문하여 종이 수표와 같은 체크를 끊어야 했다. 한 마디로 상대의 이름이 적힌 종이돈을 주고, 당사자가 그 종이돈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돈으로 바꿔주는 물물교환 같은 느낌이었다.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 당시 제대로 된 은행 계좌가 없던 우리는 차를 타고 왕복 1시간을 넘게 달려서 캐쉬어 체크를 끊으러 은행에 갔다. 


특이하게도 세입자 커미션은 집주인이 냈지만, 비용을 정산하다 보니 그게 그 금액이라 우리는 리얼터 앞으로 1장, 그리고 집주인 앞으로 1장, 이렇게 총 2장의 캐쉬어 체크를 끊게 되었다. 300달러에 달하는 청소기 한 번 밀어주고 그 돈을 받아가는 게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청소를 했다고 하기에는 주방 싱크대나 난간 등에 쌓인 먼지를 보며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가방에 보부상처럼 달러 현금을 가득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우리를 친절하게 도와준 직원 덕분에 어리바리한 채로 캐쉬어 체크를 끊었는데 왔다 갔다 이동하는데 쓴 거리와 시간 지체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 Mollie© Mollie


하지만, 더 이상 호텔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매일 똑같은 향기가 나는 매일 같은 메뉴의 호텔 아침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집이 있다는 게 이렇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지 중국에서도 약 1달간 호텔 생활을 하며 느꼈는데 이곳 미국 정착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문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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