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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대체 전화는 언제 받나요?

상담 전화 기다리다 지치다.

by Mollie 몰리 Jan 14. 2025

미국에서의 일상생활 중에 가장 놀란 점이 있다. 바로 상담 전화를 해야 할 때이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도 걱정이지만 그에 앞서, 전화를 걸었을 때 상담원과의 통화로 연결되기까지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다리다 못해 목이 빠지고, 나중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목이 아프고 같은 안내 메시지와 음악으로 인해서 지쳐버린다. 그래서 결국 택한 방법은 전화를 걸면 바로 스피커 폰으로 바꾸어서 테이블에 전화를 놓고 다른 일을 한다. 그러다가 상담사가 전화를 받으면 그때서야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 "오, 헬로?"하고 전화를 받으며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왜 전화를 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가끔은 안내 메시지의 목소리가 상담사인지 알고 놀래서 달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집계약을 한 후 집보험은 인터넷이나 어플로 가입이 가능해서 전화통화가 불필요하지만, 꼭 필요한 2가지의 전화통화가 있었다. 전기회사와 가스전화. 전기회사에 전화해서 이사 온 우리의 정보를 등록하고 전기 신청을 해야 하는데, 처음 미국에 와서 하는 상담 전화라 너무 긴장되었다. 한국을 생각하고 곧바로 전화 연결음이 울리면 사람이 받을 걸 예상하며 앞에 종이와 펜을 두고 연습해 둔 문장을 되뇌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결음은 끝이 나지 않았고, 받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5분, 10분, 15분,,,, 35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사람이 받은 것 같다. 너무 오랜 연결음과 안내 방송을 들었더니 정말 사람 상담사인지 안내 멘트인지 조차 헷갈렸다.

아, 사람이 맞다.

주소, 이름, 여권번호, 이사 날짜, 이메일 등의 정보를 주고 가스 신청을 하는데 쉽다고 생각했던 숫자 영어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20(Twenty)을 자꾸 10(Ten)으로 알아듣자, 식은땀이 났다. 한껏 올라간 내 목소리 톤은 누가 봐도 긴장한 외국인 그 자체였다. 성공적으로 첫 전기를 신청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 이메일로 계정 등록이 오고 나서야 해냈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런 별거 아닌 상황도 매 순간이 챌린지인 본격적인 미국 생활 시작이다.


할 일이 많은데 전화 한 통화로 시간을 너무 많이 쓰자,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이동을 해야 할 일과 겹치자 가스 신청은 오후에 하기로 했다. 조용한 집에서도 미국인과의 전화영어는 난제였기에 달리는 차에서 전화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후에 다시 두 번째 챌린지에 들어갔다, 가스 신청 전화 역시 30분의 기다림은 기본이었다. 40분이 되어서야 상담사와 전화 연결이 되었고, 전기와 마찬가지로 개인 정보 등록과 이사 정보를 입력 후에 가까스로 가스 신청을 완료했다.



그런데 이사 날짜를 계약날짜로 잘못 신청했다는 걸 알고 패닉에 빠졌다. 어차피 빈집이라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리얼터 역시 날짜를 맞출 수 있으면 맞추는 게 좋다고 했다. 하루 중 1시간 이상을 초집중한 상태에서 전기와 가스 신청에 소비했는데, 수정해야 할 사항이 생기자 앞이 깜깜했다. 또 이 과정을 거쳐 긴긴 시간을 전화에 매달려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이동 중에 전화를 해야만 했다. 겨우 연결된 전화 통화로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사 날짜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방금 전에 가스 등록을 했는데요. 이사 날짜를 잘못 이야기해서 바꾸려고요.

네, 본인 확인부터 할게요.


울리는 상대의 목소리, 언어는 영어, 속도는 정말 빠름,,, 안 그래도 차 안이라 들리지 않자, 다른 쪽 귀를 막고 통화를 이어갔지만 내 예상과 다른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나오자 스피커폰으로 바꾸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영어 듣기 평가를 했다. 내가 Yes / No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질문 내용의 긴 처음 듣는 영어 단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본인 확인을 한다는 것도 내 머릿속에는 없었어서 상대의 질문이 더더욱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못 알아들음에도 굴하지 않은 상담사는 아주 천천히 같은 질문을 3-4번은 했던 것 같다.


전화가 끊고 나서야 아까 우리가 못 알아듣는 질문은, 우리의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 무작위의 주소와 정보를 물어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예상이긴 하다.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처음 듣는 영어의 주소는 이게 주소인지, 어떤 단어인지 알 수 없었다.



이외에도 병원이나 공공 기관에 전화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특히 병원에 예약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전화 연결이 잘 안 되어서 보이스 메일로 남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전화를 받으면 늘 들려오는 소리는 "잠시 전화를 좀 기다려줄 수 있나요?"하고 대기모드로 들어가는데, 그 대기모드가 기본 10분일 때가 많다. 10분 동안 병원 스케줄을 위해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늘 1 seccond(1초)라고 이야기를 하니 1초가 그 1초가 아니라고는 알지만, 한국식으로 왠지 1초라는 굉장히 단시간 동안만 기다리면 연결될 것 같은 마법의 힘을 믿고 기다린다. 1 seccond는 늘 10 minutes를 넘길 때가 허다하다.


일반 동네 병원 예약이 기본 1주일에서 10일 이상인 것도 당황스럽지만 한 번의 예약 전화를 위해서 마음 잡고 전화를 하는 상황은 미국 생활의 기본 베이스인 것 같다. 이제는 그래도 처음보다 그러려니 하지만 여전히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늘 펜과 종이, 달력을 준비하고 전화를 건 후 스피커폰으로 돌려서 바닥에 놓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살면 살수록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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