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이름 띄어쓰기의 문제점
험난했던 소셜 시큐리티 카드 발급에 이어 운전면허증 교환신청도 순탄하지 않았다. SOS(Secretary of State)에 방문하여 한국의 운전면허증을 해당 주 면허증으로 교체할 수 있었지만, 예약이 또 필수였다. 그 단순한 과정조차 알리 없는 우리는 문턱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내일 다시 정해진 시간에 오라는 예약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 1 달이면 지인 집으로 온다고 하던 영주권이 오지 않아서 여권이 신분증 역할을 대신했기에 운전면허증 발급이 시급했다.
다음 날 소셜 시큐리티 카드와 함께 다시 SOS를 찾았고, 간단한 정보 작성 후에 대기를 하니 곧 이름이 불려졌다. 물론, 한국 이름이라 우리를 부르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다른 미국 사람을 부르는데 내 이름의 한 글 자 중 하나인지 알고 뛰쳐나갔다가 Sorry를 연발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창구에서 서류 작성 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간단한 Vision Test를 하는데 불빛이 깜빡이는 Blinking이 보이냐는데 안경을 쓰니 초점이 맞지 않아서 안경을 벗으라고 권유를 받았다. 안경 없이는 눈 뜬 장님이었지만, 맨 눈으로 쳐다보니 무언가 반짝이길래 떨리는 Vision Test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문제는 발생하고야 말았다. 내 여권의 이름(First name)은 띄어쓰기가 있다.
- 내 여권 : 한 국 김
- 남편 여권 : 한국 김
남편의 여권은 이름(First name)에 띄어쓰기가 없이 붙어 있어서 문제없이 바로 이름을 찾았는데, 직원은 내 여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더니, 갑자기 "I can't find your name."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매 순간이 어쩜 이렇게 장애물과 부딪칠 수 있는지 난감했다. 당시 교육 중인 신입 직원이라 일도 더뎠지만, 다행히도 남의 일을 도와주기 좋아하는 밝고 친절한 남자 직원이 굉장히 젠틀하게 내 성(Last name)으로 검색, 이름 전체로 검색, 이름의 앞자로 검색, 마지막으로 뒷자로만 검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검색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이민국에 요청할 거니, 최소 1주일은 기다려야 답변이 온다고 해서 남편만 신청을 하고 나는 기다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서 그날도 운전면허증 프로젝트를 완수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1일 뒤인 다음 날, 지인에게서 우리 가족 3명의 영주권이 동시에 도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저녁에 지인 집에 들러서 영주권을 확인하며, 미국 신분 확인에 가장 중요했던 마지막 카드가 드디어 우리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한시름을 놓으며, 전날 있었던 운전면허증 이야기를 쏟아내며, 내일 당장 영주권을 들고 오늘 만들지 못한 운전면허증 발급을 해야겠다며 밤늦도록 회포를 풀고 집에 돌아왔다.
헛,,,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영주권이 이상하다. 나는 또 한 번 현실의 벽 앞에서 땅이 푹 꺼져라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 영주권에는 문제가 없네?"라며 들떠있었던 그 기분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내 이름의 띄어쓰기로 인해서 여권 앞면에 "김한국"인 내 이름은 한 K가 되어 있었다. 마치 마지막의 '국'이 Middle name처럼 인식되어 있었다.
Surname(성) : Kim
Given Name : Han K
여권의 이름에 띄어쓰기가 없는 남편과 아이는 문제없이 Full name이 영주권 앞면에 떡하니 박혀있는 반면 내 이름은 반토막이 되어 있었다. 이를 어쩌지? 이게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닌지 판단할 수도 없었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하지만 영주권 자체가 미국 주거를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미국 입국 시에 이름으로 인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어디서든 느려터진 행정 절차와 서류의 정확성에 이미 데일대로 데어본 상황이라 뭔가 찝찝하고 껄끄러웠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입국 시에 여권과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갈게 예상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신용과 신분이 중요한 미국, 또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고 서로 답도 없는 미국 행정을 겪은 나로서는 잘못 걸리면 난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겁을 먹어서 영주권 카드를 재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인 집에서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였고, 어디서부터, 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는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주권 재신청에 들어갔다.
미국이민국 사이트에서 Green Card를 클릭한 후, Replace your green card를 누르니 우리가 궁금했던 언제, 어떻게, 또 진행 상태 확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왔지만 번역기로 돌려가며 계속 더블 체크하고, 눈은 빠질 듯 아프고, 잠은 쏟아지고, 내 실수가 아닌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다. 또 영주권 정정 기간에는 미국 밖으로 출입국이 안된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서 그럼 나는 내년에 한국에 못 들어가나?라는 생각에 또 겁에 질렸다. 뭔가 미국에 이유 없이 상황도 모른 채 매인 기분이 들었다.
오밤중에 관련 서류 제출인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여권 사본, 그리고 정정 사유를 적는데 짐정리도 안 된 캐리어에서 서류 파일 찾고, 컴퓨터에 분명히 저장해 둔 것 같은 서류가 없자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민국의 실수라서 내가 내야 할 비용은 $0이었고, 웬일일지 하루 만에 지문을 찍으러 오라는 Biometrics 스케줄이 잡힌 내용의 이메일과 집 우편으로 ASC Appointment Notice가 도착했다.
예약 시간에 해당하는 인원만 안에 들어갔고, 줄을 서있던 전 대기자들과 달리 우리 시간대는 여러 인종의 이민자들이 줄도 없이 문에 붙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참 질서 없는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그중에 갑자기 멕시칸인지 좀 무서워 보이는 남자 둘이 다가와서 내 예약 시간을 물으며 뭔가 물어보는데 무서워서 문을 가리키며 직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때 어슬렁 거리던 사람을 발견한 문 앞에 있던 내부 직원은 Where's your appointment papaer?라고 물었고, 그들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어머나 못 볼걸 보고야 말았다.
바로 한 남자의 발에 있던 전자발찌,,, 불법이민자 인가보다. 이민국 직원은 이곳은 스케줄이 된 사람들만 올 수 있고, 들어오려면 예약을 하고 종이를 가지고 오라는데, 그 남자는 갑자기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양말 안 발목의 무언가를 보여주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민국 직원의 단호한 "No!" 소리에 또 난 바짝 긴장했다. 난 순간 양말 속에 서류를 넣어 온 줄 알았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실에서 호명되어 방에 들어가서 새로 지문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말을 조금 하던 흑인 직원이라 "안냐세요? 천만에요." 소리에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 예상에도 없던 사진 촬영 이야기에, 거울을 받고 머리 정리 후 사진을 찍었다. 미국에 온 뒤 그 몇 주 사이에 더 훅 늙어버린 느낌이라 다시 찍어보겠다고 두 번을 찍었지만 그냥 내 모습이다. 여기에서 더 좌절인건 영주권 교체 시기에 대한 다음 노티스 메일이었다. 길어야 1-2달을 예상했는데 메일에는 다음 Decision까지 16개월이 걸린다고 통보를 받았다. 예민하고 걱정 많은 나는 이때부터 몇 주간 무슨 일이 생겨도 한국에 갈 수 없는 건지, 한국에 가려면 어떤 경로를 또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이민국에 전화를 해도 Representative를 바꿔주지 않는 놀리는 듯한 전화에 그냥 마음이 불안했다.
집계약도 1년인데, 16개월이면 또 배송 착오가 생기지 않을지, 언제 주소 변경을 해야 할지, 아니면 영주권 변경을 괜히 한 건지, 내 이름 여권 띄어쓰기를 수정하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 후회가 되었다. 미국살이 만만치 않다.
대문사진 : CDC,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