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 온 거 맞지?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그날이다. 우리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날.
10시간이 넘는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 끝에 한국을 떠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잠을 자려고 눈을 붙여봐도 긴장한 탓에 잠도 오지 않고, 뜬눈으로 실시간 비행 루트 화면만 이리저리 만져가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움직이고는 있는데 생각은 멈춰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이 큰일이 비행기에서조차 믿기지 않았다.
착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미국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착륙 바퀴와 달리 우리 가족은 설렘과 동시에 상기된 얼굴로 드디어 우리는 미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곳.
아무것도 모르고, 멋모르고 이민을 떠나왔다.
우리에게는 미국 이민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했던 입국심사의 벽이 남아있었다. 입국 심사 때 노란 봉투를 제출하고 입국 허가를 마치는 랜딩 과정을 거치면 서류상의 미국 이민 과정의 종지부를 찍는다.(물론 이날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입국 심사관은 우리의 서류를 오픈하더니, 누군가를 불렀고 그는 우리를 구석의 어느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핸드폰을 제출한 채 미국 입국 날짜와 그동안의 여행 기록에 대해서 심문하듯이 질문 세례를 받고 대답 중인 승객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겁이 났고, 꽤 딱딱한 분위기였지만, 다행히 짧은 시간 안에 개인 정보와 임시 지인 주소만 확인한 후, "You three, all set."이라는 말과 여권에 임시 영주권 역할을 하는 1년짜리 스탬프를 받았다. "휴, 이제 끝났구나."
이제부터 생존 시작이다. 지금부터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영어를 해야 하는데 어쩌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데 길 잃은 아이들처럼 헤매기 시작하고, 오로지 우리가 믿는 건 구글맵과 사인이었다. "여기가 Avis 렌터카 버스 정류장인가요?" 이 말을 영어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뭔가 나와 많이 다른 외국인에게 말을 걸기가 무서웠다. Excuse me. 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 몇 번을 다가갔다가 옆으로 지나가고, 뒤로 돌아가고 혼자 심장은 왜 그리 쿵쾅대던지. 결국 그 문장은 나의 상상으로만 끝나고 눈치껏 버스를 발견하고 줄을 섰다.
짐과의 전쟁도 피할 수 없다. 이민 가방 2개, 캐리어 4개, 기내용 가방 2개와 각자 백팩 1개씩을 서로 나누어 옮겼다. 렌터카로 이동하는 버스가 도착하자, 줄 서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로 탑승하는데, 우리의 모습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었다. 실어도 실어도 끝이 없는 집 떠난 사람들의 가방, 하필 가분수가 되어버린 이민가방은 계속 쓰러지길 반복하고, 버스에 사람이 많자 가방을 싣는 중에 뒷문이 닫히는 등, 백인들 속에 유일한 검은 머리 아시안이었던 우리는 괜히 그 시선들 속에서 나 자신이 작아지며 없어 보이는 출발이 시작되었다.
그날따라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렌터카 정류장도 잘못 내려서 나랑 아이는 사무실에 양해를 구하고 가방들을 지붕 아래로 옮기고, 실내에서 기다렸다. 남편은 혼자 비를 맞으며 한 정거장을 걸어가서 렌터카를 찾아왔는데, 또 우리가 예약한 차량이 아니다. 렌터카를 빌리면서 한결같았던 건 차를 찾으러 갈 때마다 우리가 예약한 차량은 늘 없고, 비슷한 급의 차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짐을 싣고 호텔로 출발하는 렌터카에서 드디어 우리의 새 여정은 시작되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주차장을 나서는데 이때부터 우리가 미국에 도착을 했다는 게 몸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량의 흔들림에 맞추어 나의 마음도 떨리기 시작했다. 호텔을 향해가는 길에서 느껴지는 미국의 시골은 달려도 달려도 느껴지는 황량함, 줄지어 보이는 낮은 건물들, 그로 인한 파란 하늘의 넓은 시야, 띄엄띄엄 있는 상점들, 여기저기 보이는 펄럭이는 큰 성조기들이었다.
이제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 정착하는 거야?
이런 설렘과 동시에 임의로 정한 주, 정착을 꿈꾼 곳은 아닌 도시라서 그런지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애써 억지로 반기는 내 모습도 느껴졌다. 남편도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 탓에 무료해 보이고 심심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곳에 온 게 맞는지를 질문하는 모습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잘 온 거 맞지?
중국에 이어 또 시작된 장기호텔 생활이다. 기빠진 상태로 호텔 체크인을 하고 또다시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 남편은 차에서 호텔 로비로 짐을 옮기고, 나와 아이는 로비에서 방으로 짐들을 옮겼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민가방은 카펫에서 끌리지도 않고 멱살 잡듯 끌고 가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미국 가족이 지나가다가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Do you guys need help?" 하는데 순간 멈칫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별로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하나 빤히 쳐다보다가
"No, thank you."라고 교과서적인 답을 해버렸다.
그 아빠는 다시 한번, "Are you sure?"이라고 묻고 괜찮다는 대답에 알겠다고 갈 길을 갔다.
사실 그날 아침, 한국의 집에서 공항 가려고 '타다' 차량을 예약했는데 어떤 주민이 본인이 부른 택시가 우리의 차량에 막혀서 들어올 수 없다며, 수많은 가방들을 옮기고 있는 기사님을 향해서 화가 잔뜩 나서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때의 생각이 났다. 몇 미터를 좀 더 걷는 게 아침에 불편했을 수도 있지만, 기사님한테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모습이 조금 불편했다. 꾹 참고 묵묵히 가방을 옮기시던 나이 많은 기사님.
벽 한쪽에 각자의 구역을 만들어서 캐리어 정리를 하고 생필품을 정리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짐을 옮겼더니 삭신이 쑤셔서 바로 눕고 싶었지만, 당장 오늘 먹을 저녁부터가 걱정이었다. 긴 여정 끝에 오는 고단함을 뒤로한 채 근처 한인마트를 검색해서 장을 보러 갔다. 제일 먼저 사야 할 품목은 밥솥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거의 500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70만 원에 육박하는 럭셔리 밥솥에 미국의 물가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라도 간단히 먹고 싶은데 팽이버섯은 3.99달러다. 중국돈 3.99위안에 익숙해져서, 내 눈에는 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3.99달러면 거의 6,000원이 되는 돈이다. 거기에 세금까지 붙으니 가격이 또 오른다.
이민가방과 캐리어에 가득 채워온 된장, 고추장, 건나물 등의 한식 재료들이 금덩이처럼 느껴졌다. 장바구니에 달러의 숫자가 작은 아이들 위주로 담아가며, 집밥에 필수인 쌀, 햇반, 김치, 두부, 아시안 야채 등 식재료를 구입했다. 또, 월마트에 들려 수세미, 주방세제, 샴푸와 바디위시, 로션 및 계란과 현지 야채, 고기 등을 구입했다. 일단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집에서 챙겨 온 샤오미 헤어드라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모터라서 전압이 맞지 않아 작동이 안 되었나 보다. 대충 수건으로 말리고, 또 급하게 헤어 드라이기를 사러 마트, 전자제품 매장 등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이동 시간, 구매시간 너무 지치기 시작했다.
마트나 매장 내부도 너무 크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샴푸 하나 사는데도 위치 찾는데 10분 이상,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멍 때리며 물건 고르는데 10분 이상, 머문 시간 대비 장바구니의 소득은 터무니없이 작다. 무엇보다 여러 인종들 속에 말 못 하는 외국인,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아시아였던 중국이었던 해외생활에서는 우리가 튀어 보이지 않았고, 중국에서도 외국인들이 많은 단지에서 살았어도 주민의 대부분은 아시아였기에 이질감이 덜했지만, 여기서는 절대적인 소수일 수밖에 없는 검은 머리 아시안이었다. 마트에서도 중국 외국인 마트에서 늘 보던 제품을 발견하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미국 첫날, 특별한 결과물은 없는데 그냥 지치고 힘들고, 평화롭다 못해 금방이라도 지겨워질 듯한 이 분위기에 과연 이곳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는지, 이게 기뻐할 일이었는지, 잘한 게 맞는지... 생각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밤이었다. 그냥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은연중에 들고 뭔가 마음이 복잡했다. 여행으로 왔던 미국, 출장으로 왔던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민자로 온 미국 생활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문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