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생활 청산, 귀국 한 달 만에 또 해외 이사
한 달 만에 초스피드로 이민 준비를 하다.
주재원 시절에 해외 이주를 준비할 시간이 5개월 밖에 없다며 투덜댔던 과거가 생각났다. 회사에서 정해준 몇 개의 해외 이사업체에서 견적을 받고 고르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것마저 촉박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집을 알아보지 않아도 회사에서 소개해준 현지 부동산 관계자가 보내준 집 리스트에서 고르면 끝, 회사 관련 비자는 회사에서 처리해 주고, 항공권 예약까지 도와주던 세상 편하던 그 시절은 이제 없다.
막막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 달이다. 한국에 입국한 다음 날부터 미련하게 미리 사버린 새 가전과 가구, 또 중국에서 수많은 중고 거래 끝에 살아남은 물건들을 모두 당근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당근 계정도 없어서 계정을 만들고, 매일 물건들 사진 찍고, 올리고, 만나서 전달하고, 동시에 여러 이민 준비들을 진행하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당근 거래는 일주일에 올릴 수 있는 최대한도가 70개라는 것도 알았다. 71개의 물건을 올리려는 찰나에, "1주일에 거래 가능한 물건은 70개로 제한되어 있다."라는 알림이 당근 측에서 왔기 때문이다.
새 전자레인지, 냉장고, 세탁기와 소파, 옷장, 침대를 포함한 가구를 반값에 사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만족하며 이사 가시냐고, 물건이 많이 올라온다며 나중에는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이 나오면 연락 달라며 주문을 하기도 했다. 먼저 한국에서 생활하는 남편이 불편할까 봐 내가 입국하기도 전에 사놓았던 나의 구매 계획은 결국 남 좋은 일만 만들었고, 디자인과 브랜드가 크게 바뀌지 않는 구매자로, 결국 미국에서도 반값에 내놓은 같은 제품들과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을 새 가격으로 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주재원이 아니라서요.
왜 이렇게 물건을 다 내다 팔았을까? 주재원으로 갈 때는 해외 이사 비용이 회사 지원이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챙겨가려는 마음으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온갖 마트를 다 털어가며 몇 년치 생필품을 마련했지만, 독립이민은 모두 내가 비용을 지불하니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책, 옷가지, 주방 살림살이와 자질구레한 창고 짐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하고 우체국 선박이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와 나는 집 근처의 우체국에 가서 우체국 5호 박스를 시간마다 사 와서 집에 있는 짐을 하나씩 싸기 시작했다. 봉투에 제습제를 잔뜩 넣어서 고이고이 포장을 해서 박스를 하나씩 완성했지만, 박스 사이즈는 생각보다 작았고, 우리의 목표였던 20박스가 다 되기도 전에, 12박스가 되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무릎도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듯, 싸도 싸도 줄어들지 않는 짐, 버리려고 해도 뭔가 추억이 있고, 더 입을 것 같고, 왠지 필요할 것 같고, 박스가 25박스가 늘어나면 오히려 해외 선박이사가 더 저렴할 것 같았다. 결국 몇 군데 견적을 받고, 가격에 또 놀라고, 적당한 업체를 찾아서 계약을 했다. 이 시간에 다른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도 재발급받고, 운전면허증을 재발급하며 영문/국문이 모두 병기된 카드로 교체하고 국제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아야 했다. 아이 예방접종도 확인하고, 아이 학교를 위한 건강검진 및 서류 준비, 안경도 새로 맞추고, 각종 병원에 다니며 처방약도 받으러 다녔다. 이 스케줄을 위해 아이랑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에 2-3개 볼일을 보면 저녁이 되고, 중간중간에 당근 연락 및 거래를 위해 집에 들어오면 또 물건을 들고나가고, 점점 나의 열정을 받쳐주지 못하는 체력으로 인해서 급체를 하기도 하고, 기력이 쇠해져 갔다.
준비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건 나와 아이도 역시 남편처럼 한국 음식이었다. 그동안 그리웠던 한국 음식들, 또 앞으로 그리울 그 음식들을 한 달간 점심과 주말에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외식 짬이 나면 원 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급하게 이민을 준비하는 바람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얼굴이라도 보고 떠나야 할 친구들 조차 만나지 못했다.
생필품과 비상식량은 중국 생활을 한번 해봐서 남는 약이 많을 거라는 것도 알고, 먹거리도 우리가 호텔에서 머물 거라고 예상한 1달 동안 해먹을 정도만 사갔다. 이 음식들을 우리가 모두 들고 가야 했어서 크게 욕심부리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퇴사 결정으로 남편도 회사에서 분주했고, 이제 막 업무 분담을 받고 일을 시작하려던 차에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해서 이삿짐에 관련된 일들과 서류 준비 등은 내가 거의 맡고, 남편은 미국에서 지낼 호텔, 렌터카, 당장 미국에서 사용할 유심 등을 알아보았다.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매번 서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질문과 답변이 필요했어서, 들으면 잊고, 전화할 상황이 아닌 각자의 일상 속에서 나중에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해 거의 톡으로 남기며 서로의 일처리를 확인했다.
달러 환전도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며칠에 나누어 가져갈 액수를 채우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으니 집도 보여줘야 하고, 주말에 시간을 맞추어 양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어이없는 건 중국 생활 마치고 입국했다고 인사하는 동시에, 다시 해외로 떠난다는 이별 인사를 해야 했다. 이제 막 한국에 입국한 애들이 또 미국을 나간다는 소식에 양가 가족들도 서운함을 내비치고, 우리가 나이가 든 만큼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과 얼굴 맞댈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막판에 가장 힘들었던 건 냉장고와 세탁기를 일찌감치 정리하는 바람에, 폭염 속에 에어컨도 없어 하루에 샤워를 기본 3번은 해가며 시원한 물을 먹지 못해서 수돗물에 두유를 담가서 먹기도 하고, 집 앞 마트에서 작은 물 500ml를 사서 나눠 먹으며, 더우면 또 사러 나가다 보니 땀띠가 나고, 빨래도 몇 주를 빨랫감을 아이와 들고 이고 코인 세탁을 하다가 동생한테 아기세탁기를 빌려온 후로는 건조기만 하러 코인세탁방을 갔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코미디인 삶으로 불가능할 듯해 보였던 급작스러운 한 달 만의 이민준비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대문 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