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품격, 건강한 가치관, 취향
내가 생각하는 명품은, 가격이 비싸고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나의 가치관, 언어 습관, 그리고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판단과 용기가 진정한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결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등으로부터 오는 가치관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 사람의 행동과 언어, 성품, 선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가치관은 갑자기 어느 순간에 형성되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 자라온 환경인 선천적인 배경과, 후천적으로 본인이 살아가는 경험과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이가 크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아들의 가치관에 따라서 아들이 선택을 하고, 친구 관계를 맺고, 자신의 관심 분야로까지 확장되는 걸 보면서, 어린 시절의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걸 더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결정될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역할 요소와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언어와 취향, 문화생활
아이가 어릴 적에 나는 TV 보는 것을 크게 제한두지는 않았다. 시골에서 TV는 외동아들을 육아하는 나에게도, 집안일에 바쁜 엄마를 가진 아이에게도 큰 휴식처였다. 대신 선택적으로 TV를 시청하게 했다. 그런데 내가 많이 보수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간혹 EBS에서 역할극을 하는 도중에 나오는 말투들이 내 귀에 거슬릴 때가 간혹 있었다. 짧지만 다소 강한 추임새라던가, 징징대는 듯한 짜증, 약간의 질투 어린 멘트 등이 끌리지 않았다. 동화 속에 빠져서 책에 몰입된 아이가 책을 통해 바라보던 세상과 미디어에서의 일상대화는 많이 달랐다. 물론 책처럼 대화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예쁜 말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또, TV의 문제점이 한 시리즈를 보게 되면, 끝이 없이 보게 돼서 제한이 어렵고, EBS에서 나오는 광고로 인한 장난감에 빠져서, 마트나 문구점에 갈 때마다 원하는 걸 사줄 때까지 운다거나, 아니면 캐릭터에 집착하는 그런 아이로 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차피 시청할 거라면, 말투도 이쁘고 한 편의 동화같기도 한 대중적인 뽀로로나 꼬마버스 타요 등의 애니메이션을 골라서 한글로도 보여주고, 동시에 영어로도 함께 보여주고, 육아의 신이었던 호비 시리즈와 동요 및 영어 학습 등의 DVD 위주로 보여주었다. 어릴 적부터 TV는 원 없이 봤지만, 선택적 시청으로 미디어로 인한 부작용은 겪지 않았고, 더빙 없이 영어로 영화를 보는 거에 익숙해서 영어유치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원작은 원작대로 보는 게 매력이 있었고, 더빙으로 했을 경우에는, 원작의 느낌과 좀 다른 감정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넌 그것도 모르냐?" "답답하긴." 등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아이한테 쓰지 않는 말투를 굳이 방송을 통해서 볼 필요는 없었다. 이런 식의 더빙이나 영상물을 계속 보다 보면,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판단력이 미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대사를 일상생활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친구들과 하게 된다.
EB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교육적인 내용들은 동네 문화센터에서 어린이 연극이나 어린이 뮤지컬, 마술 등의 프로그램에서 여러 주제로 많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아이랑 함께 티켓을 예매하고, 그 표를 애지중지해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일방적인 시청이 아니라, 함께 무대 위의 배우들과 호흡하곤 했다.
영화도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굵직굵직한 영화를 보다 보니, 아이는 또봇 시리즈가 한참 유행했을 때도, 굳이 저걸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마트를 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역할놀이나, 본인이 좋아했던 구슬꿰기나, 레고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것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행복한 아이가 되는데 도움을 준다. 음악 공연, 미술관, 박물관 등을 다니며, 문화생활에서 오는 힐링이 참 컸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동 뮤지컬과 공연을 보다가 초등학교 전후로는 뮤지컬 내한 공연과 음악회를 즐겼다. 나도 음악을 잘 모르지만, 아이랑 함께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랑 함께 갖게 된 취미이다.
아이랑 늘 어떤 뮤지컬을 볼지 고민하고, 뮤지컬이 끝나면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노래에 푹 빠져서 살았던 시절이 있다. 남편이 출장이 잦았어서, 아들과 둘이 지하철을 타고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야외 디즈니 피크닉 콘서트에 돗자리를 깔고, 디즈니 음악을 들으면서 가을 하늘을 즐겼던 것도 기억이 난다. 어릴 때는 아이가 그냥 따라다니고, 졸기도 하고, 관심 없어 보이는 순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뮤지컬과 음악에 빠져서 지내는 걸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요즘도 새삼 놀라는 바다.
아이가 크면, 언어 습관과 취향 같은 가치관이 아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학교에 갔다가, 한 한국 친구가 외국 친구한테 '심한 욕'을 하고 나한테 걸려서, 도망갔던 적이 있다. 물론, 그 외국 친구는 비속어의 뜻을 모르지만, 장난 삼아서 욕을 가르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변에서 건전하지 못한 문화나 행동, 환경, 사람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아이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커서도 스스로 그런 환경을 멀리하고,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바른 언어 습관과 더불어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무리를 만들고, 거기서 누군가는 소외되고, 이런 분위기는 누군가는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가치관은 단시간에 생기는 게 아닌 오랜 시간에 걸친 양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영양분과 거름으로 차곡차곡 채워주면, 아이 스스로 자신만의 올바른 가치관을 만들어갈 수 있다.
미디어, SNS, 잘못된 판단
어릴 때 식당에서 아이들한테 핸드폰을 쥐어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즉각적인 효과는 있지만, 한번 보여주기 시작하면 비슷한 상황에 무조건 그 영상을 틀어달라고 하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의 관심사를 더 끌어줄 수 있는 내용이나 교육적인 영상 짧은 거 1-2개가 적당한 것 같다. 우리 아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말없는 레고 피겨들의 영상을 주로 봤다. 그걸 보고 나서 집에 가서 생각나면 레고를 또 만들고, 창작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레고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한국에 갔을 때, 아들이 너무 소중하게 사온건 1년 내내 트리를 볼 수 있다며 고른 레고 크리스마스트리와 본인이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추억의 레고 피겨 1,000 pcs 퍼즐이다.
게임 중독에 이어서 유튜브, 쇼츠 등 요즘 아이들한테는 중독될 소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점점 아이들 키우기에 힘겨운 세상이 돼 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주로 보는 관심사들로 꾸며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개미지옥 같은 영상들을 알고리즘은 계속 추천을 해준다. 유튜브와 쇼츠는 나의 할 일조차 잊게 만들어주는 끊기 힘든 중독 같다.
아이도 한두 번 무의식적으로 쇼츠를 보면서 시간 때우는 걸 발견하고, 아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쇼츠는 그 특성상 짧은 시간에 조회수를 올려야 하고, 본인 채널을 홍보해야 하니, 굉장히 자극적이다. 영상을 보면서 생각할 필요도 없고, 즉흥적이고, 또 알고리즘에 의해서, 계속 영상이 추천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영상을 막연히 시청하는 대신에,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 영상을 찾아서 도움 되는 걸 골라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한국 초등학교 시절, 아이 반에 한 친구가 친구의 목소리를 자기 핸드폰에 녹음해서 틀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그 일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엄청 크게 혼내셨던 기억이 난다. 수업이 중단되고, 수업 시간 내내 그 일에 대한 위험성을 경각시키셨다. 당시에는 어린애가 멋모르고 한 행동일 텐데, 좀 심한 거 아니냐가 엄마들의 생각이었지만, 지금 아이가 커보니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때와 비슷한 일을 몇 년 전에 목격하게 되었다. 아이가 한 친구의 모멘트를 보여줘서 보게 되었다. 그 친구의 계정에는 자신의 SNS 계정인데 자신의 사진은 없다. 마치 다른 친구들의 프로필 모음과 같은 목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올라간 상대들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갖 외국 친구들 또 한국 친구 몇몇의 사진, 이름, 특징, 취미 등의 게시글과 몇 개의 얼굴 없는 배경 사진들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또 음란성의 대화를 공개적인 댓글에 쓰는 걸 보고 또 한 번 기겁했다.
왜 이런 걸 올렸을까? 어떤 생각일까? 상대한테 동의를 구하고 한 건지, 잘못되었다는 걸 알까?
SNS는 자신을 표현하거나, 자신이 관심 있는 내용을 담는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이다. 그런데 가치관과 판단이 간혹 잘못 형성된 경우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남을 도구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얼굴은 숨긴 채 투명인간과 같은 활동을 하곤 한다. 아이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당시에 말씀하셨던 당시 어린아이의 행동이 나중에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상대의 동의 없이, 상대의 사진을 게시글에 올리고, 정보를 유출한 것.
인스타그램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또는 취미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보여주기식 혹은 불필요한 비교, 자랑으로 둘러싸인 가상공간으로 사용하는 건 건전하지 못한 것 같다.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무리들의 모임, 일방적인 은근한 따돌림, 크고 작은 학교 폭력들이 모두 아이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문제인 것 같다. 불의를 보고 나서지는 못할지언정, 가담하지 않을 용기, 아니라고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무심코 봤던 영상들, 안일하게 생각했던 일들, 그냥 흘려들었던 말들이 점점 아이의 내면에는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다가, 그게 어느 순간 '내 아이'가 되어서, '이게 내 아이 맞아?'하고 놀래게 된다. 특히 또래 관계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점점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이게 되고, 친구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나이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건전하지 않은 상황들이 몸과 마음에서 이미 '불편함'을 느끼고 다가가지 않게 된다. 이 '불편함'이 결국은 아이를 스스로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