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공부, 투자를 다 잡았다.

서울로 이사하다

by Mollie 몰리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가 어릴 적에 집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을 따라 하는 것을 보고,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맹자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세 번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경험'이 최고라고 믿었고, 아이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걸 크면서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 환경의 차이로 인한 아이의 변화는 한국에서 또, 지금 중국에서도 잦은 이동으로 인해서 겪다 보니, 맹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은 '환경'과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틀에 박힌 교육보다,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늘 분주하게 뭔가 만들고, 실험하고, 뭘 보고 나면, 그게 머릿속에 있다가 무언가의 형태로 나오곤 했다.

무한한 창작 세계, 초간단 지폐, Photo by Mollie

드디어 7세에 취학 통지서가 나오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영유는 동네가 아니었기에 그곳의 친구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동네의 학교로 갔고, 근처에 산다고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점점 '엄마들 모임'이 생기면서, 내 아이를 그 틈에 끼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듯했다. 입학 전날까지도 아이랑 친했던 친구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고 소원해지면서, 어릴 적 친구는 별 볼 일 없구나, 역시 엄마가 엮어준 친구들 관계의 얄팍함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 독립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굳이 어떤 엄마들 모임에 껴야 안심이 되고, 그런 성향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친했던 친구나 엄마들이 떠나가는 모습들은 안타까웠다.


그전까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의해서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뭔가 불편함 모임도 많고, 일명 하교 후 놀이터 모임은 나에겐 참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내 성격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던 시절이라, 아이도 놀고 싶어 하고, 엄마들도 모이는 부류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끼어서 놀게 되고, 그 모임이 집으로 이어지고, 저녁까지 먹고, 특히 레고 천국이었던 우리 집에서 노는 날들이 많게 되었다.


늘 아이의 행복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당시에 아이가 친구들과 즐거운 개인 시간을 가지는 건 나 역시 엄마로서 즐거운 일이었고, 엄마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집의 숟가락 개수도 알 정도로 친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한국적인 엄마였던 시절이었다. 행복했던 추억들도 많았지만, 또 다른 환경들의 변화로 인해서 지속되지는 못했던 걸 보면, 나 역시 사람에 얽매여서 살아야 했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Photo by Mollie

점점 놀이터 놀이에 끼고 싶지 않고, 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건, 아이들의 놀이 방식이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따른 덩치와 목소리, 센 입담에 따라서 편을 나누고, 엄마들 사이에서 생기는 묘한 기류 불편해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느낌을 줬을 수도 있고, 그냥 같은 학교,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모이지만, 그 안에 또 다른 소모임이 존재하고, 서로 달리 살아온 엄마들의 가치관에서 오는 피로도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봉사하는 '녹색 어머니'나 '사서' 이외의 반모임이나 총회 한 번 참가 안 하던 엄마였고, 점점 내 색깔을 버리고 다수에 의해 선택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점이 맞지 않았다.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면, 작은 아이들은 늘 경찰을 맡으라고 시킨다. 자전거를 타고 도망 다니는 도둑들을 조무래기 경찰들은 잡을 수 없고, 결국 잡지도 못하고 의미 없는 뜀박질만 하다가 힘들고 지쳐서 울고, 싸우는 놀이의 끝을 보며,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는 게 아니니, 점점 관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놀이식 수학 학원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도, 공부 잘하는 엄마들끼리만의 리그가 있고, 나처럼 그냥 경험으로 재미있게 하는 아이들은 뭔가 존재감 없는 들러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목적이 달랐으니까, 그들은 경시를 준비해야 하고, 영재반을 가야 하고, 뭔가 좋은 정보들을 나누는 듯했다.


학교는 아이가 다니는 건데, 엄마들이 나서고, 엄마들이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엄마들이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는 상황들이 불편했다. 또, 주변 학교들의 도토리 키재기 식의 은근한 경쟁도 불편했고, 한 번 환경을 바꿔주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어유치원의 비용은 절반 이상이 줄었지만, 그 외에 여느 아이들처럼 태권도, 피아노, 학습지 등을 하고 있는, 아이 인생에서 최고의 사교육을 하던 시기가 바로 초등학교 1-2학년이었다. 멋모르던 엄마의 화려한 과거였다.


외벌이인 남편과 우리의 최대 고민 중의 하나는 집 문제와 교육비 문제였다. 앞으로 한국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려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엄청난 교육 비용들이 부담되는 현실을 느꼈다. 아이의 교육비 지출이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닌데, 이러다가 우리의 노후는 어쩌지? 고민하며, 2-3년 전부터 틈틈이 청약을 넣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주말에 어디를 놀러 가면 그 동네 근처의 집구경을 하는 등 우리의 주거지 찾아 삼만리 계획은 몇 년이 진행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 데리고 모델하우스 구경도 많이 다녔다.


교육비로 대출을 받는다는 주변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교육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꼈던 터라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대신에, 환경이 차분하고 학습 환경이 잘 조성된 곳에서 올망졸망한 친구들과 아이가 편하게 학교를 다니길 바랐다.


서울로 가자!

남편은 많이 가정적인 사람이다. 늘 여러 가지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해 주고, 그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하게 해 준다. 덕분에 마지막 2군데를 계약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내가 원하는 곳에 집을 매매했다. 새로운 동네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으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아이는 좋은 환경에 넣어놓고, 할 놈은 알아서 하는 거지.


그렇게, 아이는 첫 전학을 경험했다.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역사 쪽 수업에 더 몰입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도 있었고, 역사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또 대화가 잘 통했다. 내향적이지만 활동적이고, 또 의외로 지식 탐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말을 맞출 젠틀한 친구들이 좀 있었다. 아이는 느리지만, 자신의 페이스대로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을 만나서 새 초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해 본 반모임도 겸손하게 밥만 먹고 오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어 오면, 아이들이 놀기 위해서 엄마들을 알았을 뿐, 교육 정보를 위한 모임이라던가, 이사를 한 후에는 처음 학교처럼 개인적인 엄마 모임을 만들지 않았다. 우연히 길에서 혹은 버스에서, 아이들끼리 인사하다 만나는 정도의 교류라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편한 시기였다. 그런 모임이 부질없다는 걸 한 번 경험하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게 하는 일에만 신경 썼다.



미래를 걱정하는 남편의 만족도도 상당히 컸던 게, 우리가 집을 구입했을 당시에, 우리는 서울에 집을 구입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이의 학교를 쭉 보내고 졸업시키자는 생각으로, 대출을 끌어모아서 집값이 꽤 오른 상태로 구매를 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도 이게 잘하는 건지, 간이 콩알만 해지고 조마조마했었다. 다달이 나갈 이자를 생각하면,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확실히 아이가 뒤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우리가 원한 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마음 편한 환경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아이는 주말에는 무조건 가족들과 놀러 다니고, 서울로 오고 나서는 주변에 널린 문화생활을 전보다 더 즐기고, 우리는 그런 생활이 그냥 행복했다.

틈만 나면 체험하러 돌아다녔던 시절들, Photo by Mollie

아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시선을 많이 신경 쓰지 않고 주말에는 무조건 놀러 다녔다. 나중에는 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가 우리가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 걸 보고, 자신의 아이도 함께 다녀도 되냐고 부탁해서, 아이의 친구도 함께 데리고 뮤지컬, 박물관, 체험관 등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엄마 아빠가 주는 환경과 습관은 아이한테는 우주나 다름없는 전부인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의 환경으로 인해서 아이가 보고 듣고 배우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가고, 또 주변의 긍정적인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서, 무난하게 잘 성장해 나간다. 아이의 모습은 결국은 부모가 자신이 제공해 준 환경과 습관으로 만들어진 결과의 산물인걸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갈 쯤에,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같다. 비록 이사 간 동네에서 1년밖에 살 수 없었고, 갑자스러운 발령으로, 수년을 알아보고 고민해 왔던 우리의 계획과는 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나는 아직도, 여전히 '환경'과 '습관'이 아이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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