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생을 설계해 준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은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부모가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통해서 배워가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고, 그게 삶으로 이어지면서 취미, 삶의 방향, 가치관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걸 아이를 통해서 많이 느낀다. 비싸고 좋은 책을 사서 전시만 해놓는 것보다, 눈으로 읽고, 소리로 듣는 것에 더하여 책과 함께 한 몸이 되는 오감 활동을 통한 체험 학습으로 이어지면, 엄마가 아이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고력 교육이자 건전한 취미로 이어질 수 있다. 한 가지 주제를 좋아하다 보면, 거기서 파생되는 책의 가짓수가 무한대로 늘어난다. 아이가 크면 자연스레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이미 어디서 주워들은 배경지식이 탄탄히 자리 잡게 된다.
최근에 조카의 선물을 구매하면서, 돌도 안 된 아기들한테 선물해 줄 수 있는 책들의 종류를 둘러보게 되었다. 오래전, 아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화려하고 귀여운 디자인과 색감을 가진 촉감북, 동물 울음소리책, 유모차에 달 수 있는 책, 입으로 빨아도 괜찮은 책 등 내가 더 신기해서 장바구니에 마구 담았던 기억이 난다. 아들이 어릴 때의 첫 책은 하드커버 보드북에 동요가 나오는 '우리 아이 첫 동요책'과 영어 동요가 나오는 '우리 아이 첫 영어 동요책'이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보드북 세트 전집, 보드북과 양장본이 섞인 전집 등 나이에 맞게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또 읽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책을 구매했다. 아이는 2년 동안 시골에서 자랐기에 주변에 서점이 있다거나, 책을 보고 살 수 없는 환경이라 인터넷으로 대충 내용을 보고 주문을 했었다.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시간에는 혼자 책장 근처에서 그야말로 책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꽤 많이 보냈다. 도시로 온 후에는 아동서적할인매장에서 직접 책을 보고 구매하거나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여러 폭넓은 종류의 책을 구매해서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틈만 나면 읽어주고, 자기 전에도 목이 쉴 정도로 책을 읽어줬던 기억이 난다. 즉흥적이고 활동적인 아이였지만, 그런 환경 덕분인지 책을 읽을 때는 굉장히 집중했고, 늘 옆에는 책을 끼고 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이의 취향에 상관없이 그 나이에 읽으면 도움 될 수 있는 책들은 거의 구매를 하는 편이었는데, 편독을 조금 하는 편이라서, 아들 손에 선택되지 않은 책들은 내가 읽어주거나, 읽지 않아도 괜히 바닥에 한 번이라도 쳐다보게 두었고, 집은 늘 책으로 난장판이었다.
남자아이들이 거의 좋아한다는 자연관찰에는 오히려 관심이 적었고, 한참 공룡에 빠져있다가, 창작책을 시작으로 사회, 과학 동화를 좋아하고 경제 만화동화, Why 책 등 정말 다양한 책을 접했다. 책을 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에 나온 내용을 체험으로 이어가는 활동을 주말에 많이 해줬던 것 같다. 아이가 좋아했던 책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과학관, 박물관, 동물원 등 꼭 책과 연계시키는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책의 내용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늘 하나를 보면 다른 걸 연결해서 생각하고, 거기서 이어지는 확장 사고를 하는 기반이 서서히 잡혔다.
도서관에서 집에 없는 책들을 보기도 하고, 서점에서 한글책, 한자책 등 본인이 고른 책들을 사 오면, 집에 와서 은물이나 수수깡으로 기역, 니은, 디귿 등의 글씨를 만들거나, 한자를 보면서 신기한 모양의 글씨라고 스케치북에 쓰면서 자신만의 사고를 키워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꼭 아동 코너에서만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보는 과학 잡지에서 자기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보면 그 책을 사달라고 해서 끼고 살고, 취향이 좀 독특했던 게, 5세 때 어두운 심해를 영상으로는 무서워해서 보지도 못하면서도 '심해에 사는 물고기'한테 굉장히 빠져있었고, 그림을 그려도 심해 물고기들을 그리고, 고고학자가 꿈이었을 정도로 '화석 마니아'였다. 신종플루에 걸려서 아파도 눈만 뜰 수 있으면 책을 보고, 하루종일 책에 파묻혀 지내는 등 책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책은 아이가 스스로 탐구하고 세상을 배워나갈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어느 날은 자기가 마치 도서관 사서라도 된 것처럼 책장에 책을 빌려가라고 써놓고, 서점 흉내를 내면서, 나보고 책을 빌려가라고 해서 아이랑 같이 도서관 놀이도 했다. 이때 잘 자리 잡힌 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초등학교에 와서도 역사 사랑으로 이어졌고, 방과 후 역사수업에 또 푹 빠지게 되었다. 또, 학교에서 듣고 와서, 한국사 자격증을 따야겠다며 스스로 독학을 해서 자격증을 땄었다.
중국에 올 때도 가장 걱정했던 게 책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향후 몇 년 치를 사 왔어도 해외살이로 책을 한국에서처럼은 구하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한국책들을 읽고 또 읽다가 교민방에 팔았지만, 새 책을 구할 때가 없었고, 한국의 서점이 많이 그립기도 했다. 한인타운에 도서관이 1곳 있기는 했지만, 한국처럼 발걸음이 쉽지는 않은 현실이었다.
아이는 점점 한국책을 잊어가고, 그 좋아하던 한국 역사는 많이 잊어버렸다. 한동안 영어 만화책에 빠져있다가, 해리포터,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 지금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어원서와 Sci-Fi, 픽션, 그리고 스스로 ebook이 있는 사이트를 찾아서 패드로 보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은 아직도 몸에 배어있지만 이제는 내가 책을 골라주고 사주는 게 아니라, 본인의 취향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패드로 책을 보는 것보다 종이책을 넘기는 아날로그식을 좋아해서, 도서관이 없는 중국살이에서 많이 아쉬운 점이다.
국제학교에 와서도 꾸준히 사교육 없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흥미를 가지는 것도 일종의 책을 좋아하는 독서 습관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하는 방식을 보면, 에세이를 쓰는 게 대부분이고,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오픈북 형태로 시험을 보는데, 아이는 그런 스타일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걸 보면서, 어려서부터 축적된 독서 습관이 한 몫하는 것 같다.
아이 학교 상담에서도 교실 입구에 놓인 책을 보고 책이 습관화되어 있는 이들의 교육 방식과 삶에 나도 동화되었다. 물론 책 수준은 외국인인 내가 읽기에 너무 어려워 보였지만, 그냥 그 문화가 참 좋아 보였다.
독서는 내가 지금까지 아이에게 주었던 그 어떤 육아 가치보다 훌륭한 것 같다. 물론 커서는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책을 읽지만, 어렸을 때는 부모가 쥐어주는 책 한 권, 들려주는 이야기, 데리고 가는 장소 하나하나가 아이한테는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값비싼 사교육보다 책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아이한테 주는 게 멀리 보는 교육 관점에서도 꼭 만들어줄 만한 좋은 습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