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은 엄마의 욕심
지금보다 바빴던 아이의 어린 시절
아이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잘 키우고 싶은 '욕심'으로 포장된 엄마의 마음이, 아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만들고, 아이의 삶을 나의 스케줄로 착각하고 산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는 중국어 수업도 접고, 학교 생활만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정보통 엄마이거나, 엄마들과의 모임에 나간다거나, 사교육 루트에 능통한 발 빠른 엄마가 아니기도 하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 분야에 대해서 확실한 강점이 있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훌쩍 커보니 이제야 깨닫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치원을 다닌 후에는, 영유만 다녀와도 아이에게는 충분한 활동이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고 집에 와서는 방전되는 편이었고, 집에서 아이가 즐겨했던 행동들은 책 읽기, 만화 그리기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정적인 놀이였다.
초보 엄마는 눈치채지 못하고, 좋은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으로 음악, 미술, 체육, 요리 등의 여러 수업에 데리고 다니곤 했었다. 아이는 피곤하고, 엄마도 지치고, 나중에는 아무리 비용이 저렴하더라도, 장소까지 가야 하는 소요 시간,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해서 수업을 줄이게 되었다. "집중을 하니, 안 하니, 색칠을 이쁘게 해라." 등의 괜한 아이와의 실랑이 대신, 어느 순간부터는 비슷한 수업의 내용들을 집에서 나와 함께 했다.
그러한 체험 수업은 기관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활동들이었다. 그날 먹을 저녁 재료를 아이가 손질하고, 돈가스도 만들어보고, 김밥도 싸보고, 스스로 쌀을 씻어서 밥도 해보고, 어느 날은 생각 닿는 대로 색종이를 접어서 구슬 붙인 목걸이도 만들어보고, 색종이를 이어 붙여서 자신만의 책도 만들었다. 내가 주제를 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집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여러 가지 활동을 이어갔다. 거기서 나오는 기발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꽤 많았다. 또, 엄마와의 집에서의 놀이활동을 통해서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시간에 쫓기던 우리는 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교육의 끝은 어디인가?
영어는 기본 언어이고, 제2외국어로 중국어 학습지 또는 아이들끼리 그룹을 만들어서 중국어 과외를 하거나, 아이의 AR 레벨을 높이기 위해서 영어도서관을 추가로 보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도서관'은 또 뭐지?
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교육기관을 옮기지 않는 편인데, 주변에서는 레벨테스트를 보며,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 다른 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아가며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부족한 영역을 과외나 학원으로 채우는 모습도 많이 봤지만, 나한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대신 영어유치원은 한글, 수학, 여러 탐구 수업, 신체활동 등 누리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느끼고, 수학은 흥미 있는 편이 아니라서 유치원 시절에 사고력 수학만 2년 정도 보냈다. 늘 그랬듯이 의도는 좋았지만, 우리는 바빴다. 결국은 이것 역시 하나하나가 다 사교육이었고, 숙제가 따르는 수업이거나, 아이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 채, 학원이나 교육 기관의 스케줄에 맞춰 살아야 했다. 점점 나와 아이의 성향에 맞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학습지를 쓰레기통에서 찾다.
7세에 학습지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피할 수는 없는 한글, 숫자와 연산 등 초등학교 준비를 조금씩 해야 해서 엄마표 학습지를 서점에서 사다가 하루에 1-2장씩 풀었는데, 그 과정을 아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쓰는 행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니, 내 속도 터지고, 아이도 억지로 하다가 둘의 관계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학습적인 것보다 경험하고 노는 수업에만 치중해서 그런가 자책하기도 했다.
"학습지 풀었니?"
"응."
"어딨어?"
"어디다 뒀더라? (찾는 시늉…) 모르겠네?"
다음 날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구겨진 학습지들…
어린 나이에 어지간히 하기 싫었나 보다. 순간 당황스럽고, 아이의 행동이 우습고, 귀엽기도 했지만, 학습지를 버렸다는 것보다, 하기 싫다고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행동, 즉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엄마를 속이는 그 모습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 사건이 나를 다시 돌아보는 큰 계기였다.
왜 그때는 뭐든 그렇게 시키려고 했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이것만 제대로 풀면 연산이 착착 진행되고, 선행이 가능하다는 K학습지를 시작해 봤다. 책을 좋아하니 국어는 좋아했지만, 수학은 점점 아이가 질리기 시작했다. K학습지는 프로그램 자체가 진도가 빠른 편이라서, 몇 번 같은 과정을 복습으로 반복하다 보면, 학년을 앞서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아들은 반복을 해도 늘 새로운 과정을 다시 배우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또, 과목이 추가되면, 아이 입장에서는 하루에 해야 할 학습지의 분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또 어떤가? 엄마들은 전과와 문제집을 과목별로 사 와서 아이가 학교에서 다녀오면, 문제집도 풀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시간이 없어서 간식을 대충 때우고 학원차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학원 숙제가 또 쌓이고, 이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생활이었던 학교 하교 후에, 놀이터를 잠깐 찍고, 학원을 가야 하는 바쁜 아이들의 현실에 지쳐갔다. 아이가 성장 후에 남은 건, 결국 본인이 좋아했던 것뿐이라는 걸 이제 와서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우리 아이처럼 자기 생각과 주관이 강하고, 쓰기 싫어하고, 틀에 박힌 공부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와 꼼꼼하고 계획적인 엄마와의 공부 궁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분명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아이랑 둘이 시간을 보내며 너무 행복한 시간들로 하루를 채웠던 우리인데, 그 시간들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숨 막히는 압박의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어릴 때 엄마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시작한 조기 교육이 하나씩 실패함을 느끼며, 점점 잔가지들이 쳐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험했던 조기교육들이 돈을 낭비하거나,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비용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더 이상 달달 볶지 않고, 여유로운 엄마의 모습에 조금씩 한 발자국씩 다가갔던 것 같다. 현재 아이의 모습을 보면, 어릴 때 내가 주었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크고 있음을 느낀다. 어릴 때의 경험과 습관을 바탕으로 잡식이 많고, 학구적인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당시에 후회하는 게 있다면, 내가 나의 방식과 목표, 틀에 맞추어 놓은 공부 환경을 아이한테 강요함으로써,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못하고, 남들이 정해놓은 나이에 맞춰 놓은 커리큘럼대로 끌고 가려고 했다는 점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시킨 사교육들을 아이는 소화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는 자신을 믿는 마음과 감정적으로 '행복한 아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엉덩이가 가볍고, 학습지를 싫어하고, 문제집을 싫어했던 아이도,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찾고, 걱정하며, 본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애쓴다. 어린 시절에 아이를 위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불안으로 인해서 아이를 다그쳤다는 점이 엄마로서 철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이제 와서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결국은 아이를 상대로 '실험'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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