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외톨이 vs. 문화센터 죽돌이

정보 넘치는 도시 육아

by Mollie 몰리

2년 만에 우리는 시골을 벗어나 경기도로 이사하게 되었다. 여름휴가 5일 동안 지방-경기도로 이동하며 아파트를 계약했고, 시골 백수 아들이 친구도 사귀고, 문화생활도 즐길 도시 생활을 꿈꾸며 상경에 성공했다. 드디어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당시 만 24개월이 다 되어가던 시점, 아침 먹고 놀이터로 직행했다. ‘분명히 큰 아파트 단지니까 애들이 많겠지?’ 했는데 놀이터가 휑하다.


시골에서 보던 모래 놀이터도 아니었고, 녹이 다 슬어서 페인트칠이 까진 오래된 놀이 기구들 대신, 바닥은 폭신폭신, 알록달록 예쁘게도 칠해진 아이들의 천국 놀이터였다.

‘이상하다, 왜 없지? 다들 어디 갔지?’


며칠 상황을 주시한 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전업주부 엄마인 경우에도 집안일을 할 동안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 오후 3-4시가 되어야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국 아들은 단지 놀이터를 돌며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붕붕이를 미끄럼틀에 끌고 올라가서 내려 보내고, 휴대용 유모차를 뒤집어서 끌고 다니고, 혼자만의 키즈카페였다.

뭐야, 시골생활이랑 똑같잖아? 우리는 일찍 노는 게 좋은데, 그럼 나도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아이를 2년을 끼고 산 게 몸에 배어 있었고,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데 굳이 어린이집에 추가로 돈을 내며 아이를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가정어린이집은 정말 필요한 워킹맘들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겨야 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전업주부여도 나라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보내는데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고, 남은 금액만 가정에서 부담하고 보낸다고 들었다. 우리 소득은 턱걸이로 어차피 지원도 되지 않았고, 같은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을 다른 사람들은 절반의 비용으로 보내는데, 나는 같은 기관을 제 돈 주고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더 데리고 있자, 엄마랑 더 놀자.

그렇게 나는 3살짜리 아들과 함께 도시 생활을 시작했고, 우리한테는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1살 어린 동생과 친해져서 그 집과 동네 탐방, 영화관, 과학관, 전쟁기념관, 서울대공원, 과천 서울랜드, 과천 경마장 공원 같은 곳을 정말 많이 놀러 다녔다. 집에서 둘이 쿠키도 만들고, 요리도 하고, 케이크도 만들고, 크리스마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카드를 써서 직접 우체통에 넣어서 보내 보기도 하고, 은행도 따라다니며 그냥 나의 생활 속에 아이가 끼어져 있었다. 내 친구들 집이나 약속에도 다 따라다니고, 한동안 보석에 빠져서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이의 해맑은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첫 문화센터는 시골살이하던 우리한테는 천국이었다. 문화센터 가는 길에 햄스터, 물고기, 파충류, 새 등 매일 봐도 신기한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지하철을 타는 재미도 꽤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애 잡으랴 진땀도 빼고, 쇼핑 천지에 눈이 돌아갔다.


시골살이 2년 만에 촌스러움의 극치를 벗고, 도시의 사교육에 물들기 시작했다.

활동성 많고 호기심 가득한 아들에게 자연을 체험하는 문화센터 수업과 미술 수업은 그동안의 아들이 만들어온 창작성을 불태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잘 놀아주시는 선생님과 사진도 이쁘게 찍어서 인화해 주시는 센스도 감동이었다. 시골의 자유분방한 아들은 자연을 체험하는 수업에서도 뭔가 활동을 할 때나, 무언가를 보여줄 때만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얌전히 앉아서 잘 듣는 아이들과는 달리, 교실을 배회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들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아이를 잡으러 다니며, 당시에 '얘가 왜 이러지?' 하면서 걱정하고 엄마의 불안이 시작되기도 했었다.


숲체험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 산에 가서 체험하고 오는 활동도 경험했다. 아이랑 문화센터 사회생활을 하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비를 지불할 바에, 내가 좀 더 아이랑 시간을 보내고, 아이랑 오고 가면서 맛있는 간식도 사 먹고, 분수대에서 물장난도 좀 하고, 옷이 젖으면 근처에서 사입히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아이랑 함께하는 일상이 추억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골에서 만난 영사분의 영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시로 오니, 길거리에 영사분이 늘 계신다. 학습지는 또 어떤지, 맨날 풍선과 선물을 주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누가 막 다가온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며 영업하는 게 좀 무서웠다. 동네 엄마들 무리가 생겨서 영사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동네 엄마가 갑자기 영사로 취업을 해서 다가오기도 했다. 옆집이 책을 사면 같은 책을 따라 사기도 하고, 전집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놀라웠다.


이 나이 때는 이거 읽어야 해요. 우리 아이의 뇌가 말랑말랑한 거 아시죠?

전집 풀세트와 가베까지 세트로 구비해서 집에 장식해 놓은 걸 동네 엄마가 보여주면, 그걸 또 부러워하는 엄마들. '도시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애들을 키웠구나'라고 느끼며 문화 충격을 겪었다. 창작, 자연관찰, 생활습관 동화 등 나이에 따라 읽혀야 하는 전집 필수 리스트가 있고, 마치 이 책을 안 사거나 안 읽히면 뒤처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무언의 긴장감과 압박도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앞집 엄마가 사면, 옆집 엄마가 사고, 나도 수도 없이 고민하다가, 남편이 화면이 너무 작다고 해서 구입하진 않았다. 영사들의 영업 실력은 대단했다. 나 역시 유혹에 넘어가서, 가베 시리즈를 구입해서 선생님을 집에 모시고 홈스쿨링도 해봤다. 창의성에 좋은 수업 임은 분명해 보였지만, 가격의 압박과 끝이 보이지 않는 수업으로 부담이 좀 있어서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대신에 아이가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책은 많이 사주었다.


영유아 전문의 비싼 브랜드 책을 사기보다는 브랜드는 유명하지 않아도 비슷한 종류의 책이 잘 나와있으면 그걸로 대체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시선에 정말 잘 만든 출판사 책이 있으면 가격이 있어도 구매를 해서 책값은 별로 아끼지 않았다. 외동 아이였어서 구매하고 여러 번 읽다가, 책을 갈아줘야 할 시기에는 책을 중고로 팔고, 또 책을 사고를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개똥이네도 이용을 많이 했다. 어릴 때의 독서 습관 하나는 잘 잡혔지만 한글 떼는 것은 독서량과는 별개였다.


인생은 찰나, 순간의 선택이다.

유치원을 안 다니니, 나의 역할이 더 커져만 갔다. 아이가 언어를 좋아해서, 영어 노래도 곧잘 따라 하고, 영어책도 잘 보는 편이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대체할 영어 수업이나 교재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영어유치원에서 아이랑 엄마랑 함께 영어 수업을 한다는 정보를 찾고 방문하게 되었다. 엄마들과 애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원어민 선생님과 놀며 영어 환경을 체험해 보는 그런 수업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이야기를 했다.


"나 이 나이 아이를 가르치는 반 담임인데, 아이 한 번 보내보지 그래요? 오면 적응 잘할 것 같은데요."


귀가 팔랑거리는 순간이었다. 시골에서 해맑게 자라던 아들은 원어민이 뭔지, 여기가 어딘지, 그냥 어디든 낯가림 없이 잘 가는 성격이었다. 유치원을 보낸다고?


그때도 내가 유치원을 보내지 않는 게 문제일 정도로, 만나는 엄마들마다 "왜 유치원을 아직도 안 보내요?" 이게 인사였다. '원래 유치원이 5살 이상 때 가는 거 아닌가? 내가 이상한가? 내가 전업주부인데 아이를 돌보는 게 잘못된 건가?'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아이한테 물어보면, 아이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자기만의 루틴대로 하루를 알차게 놀며 유년시절을 불태웠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이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냥 여기 가고 싶다고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입 벌어질 원비를 남편한테 통보했다.

나 여기 보내야겠어.

아들은 지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강하게 추억한다. 아직도 가끔은 '나는 다시 애기로 돌아가고 싶다.'라며, 고맙게도 유년 시절을 긍정적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키는 나보다 훨씬 더 크고, 수염도 거뭇거뭇한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이가 저런 말을 해줄 때는, 나 역시 아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한다. 아이는 어린 시절의 감정을 잊어버리고 기억 못 할 것 같지만, 몸과 가슴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와 함께 했던 행복한 유년 시절의 선택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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