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대상 없던 자유로운 백수
지방에서의 독박 육아, 2년의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던 도시 여자는 지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정착을 걱정했던 결혼 전과 달리, 결혼과 동시에 통금 시간 해방과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다가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과의 2년 간의 지방 생활에서도 우리는 총 3번의 이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출산을 했기에, 그 흔한 친정 찬스도 없었고, 출산과 육아를 모두 나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답답함을 못 버티고 10일 만에 퇴소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부터 서서히 집안일을 시작했던 자연분만의 힘, 그 힘과 열정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설레고 떨리는 첫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난감했다.
아는 게 없으니 육아책을 사들이고, 책에 의지하며,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이를 데리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서울에 가고 싶은 날이면 돌도 안 된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아기 가방을 한 짐 메고, 고속버스행에 올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내가 상당히 독립적인 사람이었구나.
지방이라 교육 시스템은 많이 갖추어지지 않았었고, 마트 체험 수업을 한 번 가봤다가 이 정도 가격이면, 내가 집에서 놀아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등록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조차 외제차를 타고 멋지게 꾸미고 온 엄마들이 교육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아기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엄마들도 친목 관계를 맺느라고 분주했다.
반면, 출산 후 아직도 출산 전과 다르지 않은 퍼진 모습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이가 가만히 앉아있지를 않아서 기운이 다 빠졌던 나는 결국 '동네 마실'을 선택했다. 그냥 집-동네-놀이터를 매일 돌아다녔다. 놀이터라고 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 녹슨 낡은 그네와 시소가 전부인 곳이었다.
일어나서 밥 먹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개미와 길가 나뭇잎 관찰을 시작으로, 지나가는 할머니들, 어르신들과 인사도 하고, 마트 가서 장을 보았다. 해산물 코너에서는 각종 생선들과 꽃게, 전복 등을 관찰하며 살아있는 자연학습을 하고, 농산물 코너에서는 배추, 오이, 당근 등의 야채도 구경하며, 일명 백수 생활을 즐겼다.
비 오면 우비 입히고 장화를 신겨서, 비가 고인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놀게 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눈 가지고 놀다가 집으로 눈을 한 양동이 퍼서 들어오고, 어느 날은 봉지랑 집게를 들고나가서 쓰레기 줍기를 놀이 삼아했다. 내가 요리할 때는 옆에서 놀 수 있게 밀가루를 준비해 주거나 야채나 과일 등을 주고 직접 만지며 놀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 씻을 때는 욕조에서 놀며 타일에 페인팅하고, 보트에 바람을 넣어서 좁은 베란다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낚시감을 던져주고, 나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주방 찬장을 뒤집어놓는 게 일상이었고, 나의 모든 살림살이가 아이한테는 살아있는 교육 도구였고, 장난감이었다. 뒷정리는 나의 몫이었다가 점점 아이와 같이 정리하는 것도 놀이로 만들어서 아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게 맞는 건지, 물어볼 곳도, 비교대상도 없었다.
이때 아이의 창의성과 자유분방함이 확립되는 계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하는 엄마표 육아도 꽤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방에서 혼자 애를 키워도 문제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교육 장난감과 책이었다. 아들은 남자아이치고는 말이 많고, 언어 감각이 있다고 느껴서, 지방에 산다고 내가 교육을 못하겠어? 라며 뽀로로를 한글과 영어로 보여주기 시작했고, 영어 동요, 노부영 시리즈 CD와 당시에 아이가 너무 좋아했던 Maisy라고 꼬마 생쥐가 나오는 DVD를 무한 시청했다.
지금 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하고,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에 있는 책의 양을 늘려야 해요.
우리 집을 방문하는 유일한 사람은 책 전집을 파는 영사였다. 우리 수준에는 책값이 너무 비싸서, 다른 회사의 저렴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전집을 사고, 언어를 좋아하니 소리가 나오는 영어 사운드북과 터치펜으로 아이가 놀이하듯 가지고 놀 수 있는 책과 한글 낱말 카드 등을 사서 엄마표로 놀아주고, 집안일을 해야 할 때는 아이 혼자 놀기도 하고, 약간의 방치도 많이 하긴 했다.
덕분에 아이는 외동아이치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아직도 잘 즐기는 편이다. 책을 뒤집고, 엎고, 돌리기도 하고, 책장에 넣어 놓으면 꺼내고, 또 블록처럼 쌓고, 그러면서 점점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남편 회사 동료의 아내를 만나러 그 집에 가끔 수다 떨러 놀러 가는 게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던 시골살이, 나의 가족도, 친구도 없이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 고생은 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을 즐길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지금 아들은 서류를 떼면 본적이 지방으로 나오니 불만이다.
엄마, 왜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어?
그 자유로운 시골 생활 덕분에 너의 유년 시절이 행복했을 걸.
2년 간의 지방에서의 독립적인 육아 경험과 아이의 성장과정이 현재 우리 일상의 기반이 되었다. 옆집 엄마가 없었기에, 비교대상이나 조바심 없이 마음 편한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우리에게는 그 점이 행복한 시골 육아에서의 장점이었다. 책을 읽고 책에서 본 내용을 직접 해본다거나, 최대한 자연 속에서 많이 보고, 느끼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며,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었다.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강하게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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