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위기 사춘기, 부모의 올바른 역할
아들이 사춘기가 오면, 집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하고, 집 밖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줄 알았다. 하지만, 해외살이 특성상, 친구들이 늘 주변에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아들의 사춘기 시절에 우리는 코로나 통제의 최강이었던 중국에 있었다.
중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가 되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 몇 달째 이어졌고, 예민한 집순이 엄마와 학교를 가지 않는 아들은 한 집에서 몇 달, 아니, 몇 년을 함께 지지고 볶았다.
잠시잠깐 지나갔던 사춘기였지만, 그에게도 짧은 반항기와 소심한 사춘기가 있었다. 또 40대가 넘어가는 나 역시 갱년기인지 모를 여러 심리적, 신체적 증상들로 우리 둘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시기를 보냈다.
아들이 아직 엄마 아빠랑 친하네요?
아들이 집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요즘 애들이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바깥 생활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주변의 몇 안 되는 엄마들을 만나면 꼭 듣는 말들이 있다. 바로 아들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여린 성향인 이 아이도 남자라는 걸 커가면서 느낄 때가 많았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관계 같다. 나도 급한 성격에 내 머릿속의 일들을 실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성이 있다. 그 강박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아들과 씨름했던 1년의 시간들이 있었다.
아들도 사춘기가 살짝 오려고 했던 초기에, 내가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아들의 반항의 불씨가 커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나의 목소리로 한 방에 제압되었는데, 이제는 본인도 답답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발을 구르고, 내 말에 대들기 시작했다. 나도 한 때 끝까지 아이와 싸움을 했었다.
결국 갱년기는 사춘기를 이기지 못했다.
아이와 힘들었던 사춘기 초기 시절
엄마가 내려놓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아들이 사춘기가 올 무렵, 나는 갱년기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들은 한 동안, 친구들과의 게임에 빠져서 집에 오면 전화를 켠 채, 게임 삼매경이 방과 후의 시작이었다. 국제학교의 특성상 모든 수업과 과제를 하려면 컴퓨터가 필수이다. 즉 학교에서 제공하는 컴퓨터는 학생들에게 재산과 마찬가지였고, 늘 책상에서 컴퓨터로 과제를 하는 모습은 너무 당연했다.
그래서 숙제를 한다며 당당하게 컴퓨터를 켜놓고, 애들과 그룹톡을 하며 게임을 즐겨했다. 정말 아이패드와 컴퓨터에 한 동안 반 미쳐있었다. 그렇다고 게임 수준이 높다거나, 문을 닫는다거나, 일반적인 사춘기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방을 지나가다 보면, 딴짓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숙제 끝내고 놀아라 vs. 애들은 지금 게임 중이라서 안된다며,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영 못 마땅했다. 아이는 게임을 잘하는 성향도 아니면서, 그냥 껴서 놀고 싶고, 늘 지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팔팔한 건강 상태였고,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려고 애쓰는 엄마였다. 아들이 알아서 하게 여유를 주는 엄마가 아니라, 반찬은 뭘 더 먹어라, 배즙 끓였으니 먹으라고 갖다 바치고, 너무 챙겨주는 열혈 엄마였다. 당시에 남편은 퇴근하고 나면 거의 매일 저녁 아들과 나의 싸움에 껴서 중재하느라, 스트레스를 꽤 받았고, 아들 편 들랴, 아내 편 들랴, 퇴근 후 여유롭게 집에서 쉬는 날 좀 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기 일쑤였다. 코로나로 중국 상황은 최악 그 자체였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되돌아보면, 그때 당시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코로나로 인해 함께 찾아온 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을 아프게 했고, 결국 내가 아들한테 두 손 두 발을 다 든 게 현재 아들이 심적으로 여유롭게 크는데 한몫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를 방치했다는 게 아니라, 전에는 내 방식을 강요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이의 삶과 내 삶을 구분 짓지 못해서, 간섭하고 참견하는 일이 잦았고, 아들이 내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그게 나 자신한테 스트레스가 됐었다.
아프고 나서는 내 몸도 안 움직이는데, 아들한테 이래라저래라 말할 기력도 없었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자, 자연스럽게 아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들의 인생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아들이 필요한 환경만 만들어주고, 많이 사랑해주려고 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빠,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
부모 중에 악역을 자처하고 있는 나는 아들과 실랑이가 생기면, 남편이 중재 역할을 깔끔하게 해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사이가 좋아야 하는 이유는 사춘기 때 더 드러났다.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엄마, 나 게임 아이템 사도 돼? 내 캐릭터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데, 애들은 막 무기도 있고, 멋진 옷을 입고 있어."
"엄마는 게임 몰라, 아빠한테 물어봐."
나도 보수적이지만, 우리 집 남자도 마찬가지라, 아들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야, 무슨 게임 캐릭터야. 아빠도 게임 그렇게 좋아해도 아직 그런 거 사본 적 없어.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거지, 구입하고, 캐릭터 키우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근데 무슨 게임이야?? 그리고 게임을 하려면 핸드폰으로 하지 마, 눈 나빠져.(잔소리로 마무리함)"
아들이 아빠의 말에 크게 대들지 않고, 고맙게도 이야기를 들어준 건, 우리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아들의 생각을 많이 존중하려고 노력했던 마음을 아들이 알고 있어서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아빠와 아들은 주말마다 FIFA와 여러 플스 게임을 하고, 이제는 부전자전으로 아빠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인 프리미엄리그 EPL(English Premier League)로 하나가 된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이제는 아빠와 FIFA 하는 게 주말의 가장 큰 낙이다. 아들의 마음을 잘 아는 아빠는 축구 유니폼을 검색해서 짠하고 생일 선물로 사주기도 하고, 아빠한테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아빠가 어떤 상황에서 안 된다고 설명을 해도 곧 잘 듣는 편이다.
더 이상 자신을 들들 볶지 않는 엄마와 아들을 늘 응원해 주는 지지자인 아빠가 있어서 아들은 더 깊은 사춘기로 빠지지 않고, 지금은 예전의 까불이 모습이 가득한 행복한 청소년 생활을 잘 보내고 있다.
부모의 태도에 따라서 사춘기도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아이를 보면서 느꼈다. 아이가 담아두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주는 게 사춘기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를 굳이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보다 말 수를 줄이고, 아이의 감정과 기분에 공감해 주는, 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부모의 말조차 이기지 못하면, 앞으로 험난한 사회를 살아가기도 힘들 것 같다.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를 아이들은 바란다.
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