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의 기준, 기다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글씨 역시 겉모양새를 잘 꾸밀 필요성도 있다. 글씨는 선 긋기, 모양 따라 그리기, 자기 이름 쓰기, 숫자 쓰기, 한글 쓰기 등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된다. 선천적으로 꼼꼼하고, 반듯반듯한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본인의 글씨에 대해서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고, 조금이라도 삐뚤면 지우고 다시 쓰고, 정성을 들인다. 글씨체가 예쁘거나 깔끔하면 하나의 작품이 될 정도로 글씨체는 중요한 아이의 지표가 된다.
하지만, 성격 급하고 휘갈기기 좋아하는 아이, 즉 글씨를 왜 이쁘게 써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또 이해할 생각 자체가 없는 남자아이들한테는 글씨를 예쁘게 쓰라고 하는 게 매 순간 고문 수준인 것 같다.
'손에 힘만 조금 주면 될 것 같은데….'
'연필을 조금만 바르게 잡으면 잘 쓸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엄마의 바람이 마치 큰 욕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들의 글씨는 공중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작은 실수가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수학에서 0, 6이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하고, 알파벳에서는 n과 h과 똑같고, u와 y가 또 비슷하니, 일일이 잔소리를 하게 된다.
글씨에 대한 주제로 제목을 잡기는 했지만, 사실 '완벽함의 기준'에 따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가 숙제를 다했다고 했을 때, 엄마는 숙제 검사를 시작한다. 줄이 삐뚤거나, 칸에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글씨가 이쁘지 않은 경우에, "다시 해!"를 이야기하며, 아이 입장에서 어떻게라도 하기 싫은 숙제를 끝낸 걸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다. 아이는 점점 몸을 베베 꼬며, 안 그래도 하기 싫었던 끝낸 숙제를 다시 하기 시작한다. 점점 숙제라는 게 재미없어지는 순간이다.
얼마나 제대로? 얼마나 깔끔하게? 의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국제학교에서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종종 보고 듣게 되었다. 물론, 글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다. 또, 수학에서 정답과 오답이 판가름 나고, 1,2점이 중요한 경우라면 숫자는 제대로 써야 한다.
한국에서, 유치원에서도 상담 갈 때마다 내내 들었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글씨를 알아볼 수 있게 쓸 필요가 있어요."
점점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 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상담만 다녀오면, 아이한테 탓을 하기 시작했다. 글씨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칭찬이나 아이가 잘하는 부분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상담 때 글씨 이야기를 듣지 않았지만, 서술형 시험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아이의 휘갈김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10년을 이야기해도 고치지 못했다. 서점에서 내가 늘 관심 있게 보던 코너는 늘 '글씨 연습' 코너였다. '대체 우리 아이는 왜 이런 거야. 자기 글씨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보는데, 왜 그걸 못 고치는 거야!'
국제학교에 온 후로도 상담을 가면 마치 유치원생 아이처럼, 글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국제학교는 저학년 때 아이들에게 필기체를 가르치는데, 잘 배운 아이들의 글씨체는 정말 예쁘다.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서를 받거나, 서명 등을 보게 되면, 마치 깃털 달린 펜으로 쓴 듯한 아주 멋진 글씨체에 감탄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상담 후에, 인터넷에서 글씨체를 연습하는 자료를 인쇄해서 시켜보기도 하고, 중국 쇼핑앱인 타오바오에서 '필기체'를 연습하는 책을 사서 써보게도 시켰지만, 매번 앞에 한 두 장 풀다가 말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정말 무섭기로 악명 높은 분이 담임 선생님인 적이 있었다. 엄마들 말로 그 반에 걸리면, 아이들은 한 해 동안 나름 스파르타 교육을 받아서, 공부 습관도 좋아지고, 특히 글씨체가 확 바뀐다며 귀띔을 해주었다.
'이번에는 바뀔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갑자기 글씨체가 바뀔 리가 없다.
코로나로, 절반은 온라인 수업을 해서 그런지, 의욕이 없어서 그런 건지, 고집이 어마어마하게 센가 보다 생각했다. 선생님은 필기체로 쓰기를 요구하셨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게 이 모양이었다. 이 글씨를 보고도 나는 칭찬을 해줘야 하는 현실이 암담했다. 선생님이 지적할수록 아이의 숨통은 조여져만 갔다.
작년 상담에서 첫 상담이 아이의 수학 과목이었고, 역시나 중학생의 나이에도 또 어렵게 입을 떼셨다.
"이건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글씨를 못 알아보는 것도 있지만, 채점을 하고 싶은데, 식을 여기저기에 써놔서, 점수를 주려고 해도 채점을 할 수가 없어요." 라며, 잘 쓴 아이의 시험지를 보여주셨다.
아들의 머릿속은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못 말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나는 10년째 상담에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음 과목의 상담에서 이미 나는 기가 죽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들의 글씨체를 못 알아보시겠죠? 이야기해도 잘 안 고쳐지네요."라고.
선생님은 의외로, "저는 알아보는데 문제가 없는데요? 글씨는 그냥 남이 알아볼 정도로만 쓰면 되고, 요새는 컴퓨터로 작업하기도 하고, 저도 글씨 못 써요. 제가 느끼는 불편함은 없어요. 글씨보다 중요한 건, 이 아이가 얼마나 이 과목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써 내려가는지가 더 중요해요."
듣고 보니, 나는 오랫동안 이어진 글씨 지적에 아이에 대해서 겉모습만 판단하고 있었다. 비록 글씨는 삐뚤빼뚤이지만, 최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가고, 표현하고 있다는 거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들마다 글씨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른 걸 경험하게 되었다. 아이가 얼마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는지는 글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거다. 아이의 노력은 뒤로한 채, 아이가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칭찬해 주는 대신에, 겉보기인 글씨만을 가지고 잘했다, 못했다를 판단하고 있었다.
또, 아이가 그렇게 수년간 선생님들한테 글씨 지적을 받았지만, 그걸 고치지 못하는 건 내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문제이고, 그걸 받아들일 때가 되면 필요에 의해서 고친다는 걸, 아이가 커가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다시 아이는 정체 모를 필기체에서 벗어나서, 요새는 좀 정자에 가깝게 쓰고 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며 아이한테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는 상황 따라, 글씨를 좀 신경 써야 되는 상황이면, 알아서 더 노력하고, 아닌 상황이면 여전히 휘갈겨 쓴다.
글씨를 정자로 잘 쓰려고 하는 친구들은 주어진 일을 꼼꼼하게 제대로 처리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고, 우리 아들처럼 휘갈김체를 즐겨하는 스타일의 친구들은 창의적이고, 아이디어를 내는 쪽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이가 커보니, 글씨를 가지고 잔소리했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나의 노력들이 너무 허무했음을 느낀다. 나도 중국에 오고 나서는 글씨에 대해 많이 내려놨어서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의 인생을 길고 넓게 보니, 그때 보이지 않았던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말이다.
기다려 주면, 때가 되면 크는 아이들이란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아이의 친한 외국 친구 중에도 학습적으로 뛰어난 친구가 있는데, 글씨가 손떨림체다. 오죽하면, 그룹 수업을 할 때 "너의 글씨는 못 알아보겠어."라고 이야기를 듣는데, 정작 그 친구의 엄마는 전혀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에 너무 놀랬다. 이게 문화차이인 건지.
글씨를 비록 못 쓰고, 성격도 급하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몇 년 전에 반에서 열정 많은 선생님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한 출판사의 ebook에 아이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봐도, 내가 너무 아이의 겉보기에만 급급했고, 아이의 내면과, 아이가 잘하는 것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신경을 썼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를 글씨로 평가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엄마는 조금씩 변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봐주면 된다. 지금 당장 바뀌지 않을지라도, 아이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아이가 가진 각자의 성향은 다르고, 그 변화성은 무궁무진하다. 글씨로 한 때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았던 엄마로서, 아이가 커보니,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작은 것에만 집착하고, 넓은 숲을 보지 못했던 엄마였던 것 같다. 글씨를 잘 쓰면, 물론 내용이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잘 쓴 것처럼 보이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서, 너무 아이 탓을 하면 아이의 훌륭한 장점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때가 되어 철이 들고, 아이가 스스로 납득되는 상황이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치는 걸 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학습 습관, 무거운 엉덩이, 글씨, 자세 등 아이한테 충분히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부모가 만들지 않는 게 아이와 엄마가 행복할 수 있는 비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