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꽃샘바람은 그 칠 줄 모릅니다.
이 글은 [한페이지 단편소설] 사이트에서 활동할 때에 썼던 글로, 당선작으로 뽑혀 책으로 엮은 '한페이지단편소설999'에 수록된 저의 글입니다.
2014년에 썼던 글이고 10년이나 지나 조금 쑥스럽지만 브런치에 발행합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 이야기를 주워들은 건 나흘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들고 가던 막내 아기씨 조반상을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벌로 하루 종일 찬 물에서 빨래하는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습니다. 도련님의 혼례에 대하여 들었던 그날부터, 언감생심, 분수도 모르는 듯이 내 가슴에 매서운 꽃샘바람이 불어댔습니다.
- 그래서, 상견례는 하였답니까?
- 두 어른께서 성균관 시절부터 지기 셨다니 그런 겉치레야 필요치 않았던 모양이다. 날 풀리고 여름이 오기 전에 길일을 잡는다 하시는구나. 그 댁 아가씨가 그리도 참하고 고우시다던데, 우리 도련님 얼굴이 훤해지시겠네.
칡을 씹은 것도 아닌데 입 안에 쓴 맛이 났습니다. 야밤에 어딜 나가느냐는 어머니에게 대꾸도 않고 방문을 나섰습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데 담장 곁 막 개화 한 목련만이 고요히 어둔 밤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려는지 달빛마저 흐릿하건만, 동쪽 도련님 계신 곳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앞엔 돌부리들도 숨어드는 가 봅니다.
날이 밝고, 이불장 깊숙이 숨겨 놓은 보따리를 꺼내었습니다. 그 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시집갈 때 신으라고 맞춤해 주신 비단신이 들어있습니다. 종년 처지에 무슨 비단신이냐며 한사코 말렸지만, 몇 달을 산속을 헤매며 약초를 캐다 팔아 마련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포목점에서 비단 몇 조각과 명주실로 바 꾸었습니다.
고단한 하루가 저물고 어머니가 잠들고 나면, 몰래 도련님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조금 멀리서 도련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호롱불이 꺼질 때까지 나는 아무 데서나 쪼그리고 앉아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한 땀 한 땀, 달빛이 구름에 가려 바늘이 손을 찌르기도 했지만 가슴속 칼날같이 불어대는 꽃샘바람 덕에 아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 얘, 그 아가씨가 마님을 뵈러 오셨더라. 보았니?
동무 순덕이가 한껏 들떠 말했습니다. 나도 그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씀 따라 정말 곱고 지천에 핀 벚꽃나무처럼 화사한 분이셨습니다. 나는 저고리 안에 넣어 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습니다.
- 혼례를 하시면 처가를 따라 한양으로 가신다던데..
순덕이의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다시는 못 보게 될 도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주머니 만드는 것이라니,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그 초라한 것을 감히 전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멍든 것처럼 아파옵니다.
벚꽃나무는 밤이면 더욱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불꽃놀이 같이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꽃잎이 흩날렸습니다. 그 화려함에 이끌려 나도 모르 게 동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호롱불이 꺼져있습니다. 한양 아가씨가 묵고 계신 별채로 가신 걸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 거기서 뭘 하는 거니?
화들짝, 등 뒤로부터 들리는 도련님의 목소리에 놀라 돌아섰습니다. 물빛 도포를 걸친 훤칠한 도련님의 모습에 내 가슴은, 무명옷 매질하는 다듬이 소리처럼 빠르게 쿵쿵거립니다.
- 저, 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천치같이 버벅 거렸습니다. 꼭 발가벗은 것처럼 부끄러워 숨고 싶었지만, 온통 흐드러진 벚꽃 때문에 주변이 대낮만큼이나 밝았습니다. 도련님은 성큼성큼 걸어와 코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 그것, 날 주려 만든 것이냐?
나도 모르는 사이 손에 주머니가 들려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느새 은애 하는 분의 손에 내 서투른 솜씨의 주머니가 소옥 들어앉았습니다.
- 이제는 어둔 데서 바느질은 말거라, 손이 다 상했구나.
은애 하는 분의 눈이, 나를 바라봅니다.
오는 봄을, 아니, 이미 와 버린 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가슴속 꽃샘바람은 그 칠 줄 모릅니다. 차라리 주머니를 전하지 못했더라면 나을 뻔했습니다. 이미 전해 져 버린 내 마음은 되돌아올 길 없을 테니, 아파 몸살을 앓겠지요.
그저 나는, 한없이 아쉬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울고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