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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부쿠마 Jan 03. 2024

13. 케케묵은 꿈

가슴속에 담아놓은 나의 예술

내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외조부를 따라 노래방을 자주 갔었고 나 역시도 노래 부르는 걸 상당히 좋아했었다. 하지만 가정사가 영 좋지 못하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노래를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고 공부만 요구하던 부모님의 밑에서 다른 목표를 찾지는 않았었다.


어릴 때는 한창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그 유명했던 게임들에 푹 빠져 학업에 소홀하였고 그런 김에 인생의 목표를 바꾸어 당시 집안의 생계가 영 좋지 않았으므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사회전선에 빨리 뛰어들고자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가수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유인즉 실업계 고등학교였지만 1학년의 학업 커리큘럼은 타 인문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의 학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지침이 당시에 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도 그에 따라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이후 접한 적이 없는 음악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갑작스레 음악수업을 수행해야만 했던 학교 입장에서는 해본 적 없는 수업을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으리라. 타 학교는 어떠한지 나는 지금도 모르지만 음악실기 시험으로 대중가요를 부르게 되었는데 당시 매우 유명했던 '휘성'의 '안 되나요'를 실기시험으로 불렀더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음악선생님이 즐겨 듣던 노래로 추정된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것이라 하면 어릴 적 외조부를 따라 노래방에서 가족들과 불러본 게 세상의 전부였던 당시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내게 그 무대는 처형장소와 같게 느껴졌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꼭 붙잡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당시 친구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었는데 다들 너무 잘한다며 칭찬일색이었고 선생님마저도 후한 점수를 주었으며 당시 가수를 하겠다며 노래 연습을 하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었다.


'나도 혹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가수가 된다면 지금의 집안 사정이 많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에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고 제일 중요한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던 내가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졌다는 마음가짐이 너무 좋았었다.


우리에게는 선생님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다들 노래연습을 함께 하며 새로운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외우고 음악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모든 건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아무런 정보 없이 오디션을 검색하여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하였다.


만약 그때 당시의 내게 누군가 제대로 된 기획사를 알려주었더라면 그곳으로 오디션을 보러 열심히 다녀보았겠지만 그런 정보가 없던 나에게 포털사이트를 통한 검색으로 알아낸 오디션은 대부분 보컬 아카데미에서 미끼식으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오디션뿐이었다. 이건 훗날 내가 조금 더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인지하게 되었지만 저 이후에는 오디션에 합격하였지만 연습생 기간을 거쳐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은 좋지 않았고 그런 큰돈을 들이기에는 가계에 부담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철없이 아버지께 가수가 되고 싶다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아버지께서는 내 노래를 들어볼 생각도 없이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셨기에 혼자 어떻게든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있으면 가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식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 실업계 고3 학생들은 2학기에 그다지 학업을 하지 않았다. 바로 취업을 하여 떠났거나 수시로 대학교에 합격한 아이들만 있었다. 나 역시 수도권 전문대학교에 합격한 상태였고 그렇기에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지금이야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지만 당시에는 신문에서 일을 찾는 게 수월했었다. 마침 밤에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마침 함께 가수의 꿈을 키우던 친구와 목을 단련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하게 된 일이 흔히 겨울철 들려오던 찹쌀떡을 파는 일이었다.


난 지금도 그때를 후회한다. 내 선택에 후회를 두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때를 후회하며 살고 있다. 아무리 무지했더라도 뭔가 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서 배움을 가진 후 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령 없이 무작정 내가 가진 소리 하나만으로 그 추운 겨울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메밀묵과 찹쌀떡을 팔았던 나는 불과 이틀 만에 목소리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미성이라며 다들 좋아하던 그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병원을 가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성대결절이 심하게 와서 구조가 바뀌어 버린 탓일 것이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다시 취미 삼아 코인노래방을 간다거나 회식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게 전부지만 말이다.


간혹 우연히라도 가수가 될 수 있다면 아니 적어도 무대에 한 번만이라도 서볼 수 있다면 이렇게 상상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괜찮다.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의 결혼식 축가는 내가 부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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